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1948~1991)
- 기사입력 : 2007-07-24 0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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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파우스트를 다시 읽으며 밑줄 친 문장이다. 자 우리 방황하자. 좀 더 괴로워보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가자 우리 떠나보자. 고통과 살 맞대어 훌쩍 담을 넘고 국경도 넘어보자. 여기저기서 방학이니 휴가니 외국여행 간다고들 자랑하는데 나는 어쩌나. 김밥 두 줄 사서 지리산으로 갈 거다. 그 깊은 피아골에서 고정희 선생과 오랜만에 담소를. 김이듬(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