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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영화 ‘청야’ 소고- 김재수(영화감독·거창 신원면 수동마을 이장)

  • 기사입력 : 2013-12-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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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나라 홍자성이 지은 ‘채근담’에 이런 글귀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물질적인 성공보다는 나의 허물이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성공이라 믿는다.’ 내 나이 지천명을 이미 훌쩍 넘었지만 아직 하늘의 명을 알기는커녕 성공의 의미도 모르고, 남에게 온정을 제대로 베푼 적이 없다. 그 부끄러운 삶의 원인이 아마도 지식과 지혜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삶의 형태에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경계에 놓여 있던 나의 정체성을 허물기 위해 귀농을 결심했다. 그 경계의 저쪽은 지식산업인 영화였지만 다른 한쪽은 그토록 어렵다는 지혜산업인 농사를 택한 것이다.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때 내게 다가온 것이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이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 거창 신원이 그토록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곳임을 알고는 ‘아, 절통!’ 김원일 선생의 ‘겨울골짜기’를 다시 꺼내 읽었다. 선생의 글을 좇아 신원면 골골샅샅을 밟았다.

    나는 스스로 버리고 온 지식산업인 영화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 이것도 운명이라면 귀농의 또 다른 한 자세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귀농 4년차로 터득한 신원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 기억하지 않고 애써 잊으려는 사람들에게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제대로 알려보자.”

    나는 영화를 되도록 쉽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거창으로 귀농해 몇 군데 멘토링를 했었는데 이곳 초·중·고 학생들도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청야’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하나는 전체를 관통하는 드라마, 둘은 거창사건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다큐멘터리. 셋은 거창사건을 모르고 있던 극중 주인공이 스스로 그 사건을 재구성하는 애니메이션적 표현방법을 택했다. 애써 외면 받고 있던 거창사건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이 먼저였기에 초등학생부터 영화를 볼 수 있게 쉬운 영화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영화작업은 순탄치 않았다. 다행히 이홍기 거창군수의 지역 문제의 콘텐츠 개발에 대한 열정이 빛났고, 출향기업인과 지역 기업인들의 십시일반이 돋보였다.

    영화는 지난 26일 개봉했다. 유족들이 이제는 세상 밖으로 진실을 알릴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이 영화를 한 사람이라도 더 보고 다시는 이 땅에서 이런 비참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김재수 영화감독·거창 신원면 수동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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