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6일 (월)
전체메뉴

[경남시론] 술에도 원칙과 해학이 있다- 김영표(경남발전연구원 부원장)

  • 기사입력 : 2013-12-30 11:00:00
  •   



  • 계사년 뱀의 해가 이틀 남았다. 우리 몸에 손과 발이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어도 몸 밖에 있지 않고, 한해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도 서로 분절되어 있지 않듯이 올해를 마무리할 때도 내년 갑오년 말의 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매년 12월은 한 해를 가장 많이 뒤돌아볼 때이고, 술 소비량이 다른 달에 비해 월등히 높은 특징이 있다. 한눈에 보는 OECD 보건지표(Health at a Glance 2013)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알코올 소비량은 8.9ℓ이다.

    이를 국민의 술로 자리매김한 소주로 환산하면, 1병의 용량이 360㎖이고 알코올 농도를 20도라 볼 때 순수 알코올은 72㎖가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은 한 해에 123.6병을 마시고, 3일에 1병을 마시는 셈이 된다. 비록 OECD국가 중 프랑스(12.6ℓ), 독일(11.7ℓ), 영국(10ℓ) 다음 순이지만 술에 관련한 생활적 표현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다양하게 흐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청록파 시인이며 전통적 생활에 깃든 미의식을 노래했던 조지훈의 주도유단(酒道有段)이 아닌가 싶다. 그는 사람이 많이 안다고 해서 교양이 높은 것 아니듯이 술도 많이 마신다고 주격이 높아지지 않기 때문에 술 마시는 목적과 빈도 그리고 태도에 따라 바둑의 급과 단처럼 그 단계가 있다고 한다.

    이 주도유단은 1926년에 창간된 ‘별건곤(별난 세상)’에 실린 차상찬의 ‘주국헌법(酒國憲法)’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술 마시는 나라의 법은 제29조로 되어 있고, 제21조는 가는 해에 무릎 한 번 칠 만한 십불출 내용이다. 생활에 어리석은 사람을 팔불출이라 하듯이 주국에서 ‘술 잘 안 먹고 안주만 먹는 자, 남의 술에 생색내는 자, 술잔을 잡고 잔소리만 하는 자, 술 먹다가 딴 좌석에 가는 자, 술 먹고 따를 줄 모르는 자, 상갓집 술 먹고 노래하는 자, 잔칫집 술 먹고 우는 자, 남의 술만 먹고 제 술은 안 내는 자, 남의 술자리에 친구 데리고 가는 자, 연회 주석에서 축사를 오래 하는 자’들을 십불출이라 한다.

    중국은 좋은 주품과 주량의 단계를 논한 손우곤, 월하독작의 이태백, 장진주의 이백, 음주팔선가의 두보 등 정도고, 서양은 19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가 ‘술의 노래’에서 ‘술은 입으로 흘러들고, 사랑은 눈으로 흘러든다’라고 표현할 정도라 생활에 흐르는 술 언어와 비교 대상이 안 된다.

    술 마시는 유형도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다. 술을 따르고 마시는 법에 따라 자작(自酌), 대작(對酌), 수작 (酬酌)문화로 분류된다. 자작문화는 개인주의가 발달된 서양의 주체적 주법이라면, 잔을 서로 맞대고 건배를 외치며 마시는 대작문화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동구권에서 내려오는 객관적 주법이다.

    갚을 수(酬)자에 따를 작(酌)자로 이뤄진 수작문화는 술을 권커니 잣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즐기는 우리만이 가지는 특유의 주법이다. 우리 생활에 수작문화가 발달된 것은 유교로 생긴 두 개의 나를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의식문화, 합의를 존중하는 농경문화, 결의와 함께 가는 것을 좋아하는 조직문화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고, 마시는 방법도 여럿이 둘러앉아 잔을 돌려가며 마시는 순배(巡杯), 큰 바가지에 술을 가득 채워 돌아가며 마시는 대포(大匏), 서로 팔을 굽혀서 걸고 술을 마시는 러브 샷인 교비주(交臂酒), 최근에는 두 가지 이상의 술을 섞어 마시는 일명 폭탄주인 야합주 (野合酒)도 있다.

    야합이라는 것은 ‘좋지 못한 목적 아래 서로 어울림’으로 널리 쓰이지만 본래 뜻을 살피면 의미가 깊다. ‘사기’에 의하면, 성인인 공자는 야합에 의해 태어났다고 한다. 남자는 생후 8개월에 지나 이가 나고 8세에 이를 가니 8×8●64 즉, 64세까지 남자 구실을 하고, 여자는 생후 7개월에 이가 나고 7세에 이를 가니 49세까지 여자 구실을 한다. 결혼 당사자 어느 한쪽이 이 나이를 넘을 경우를 야합이라 했다. 술을 마시면 알딸딸한 것은 천상의 식품이기 때문이고, 천상은 주역에 의하면 홀수이기 때문에 일삼오칠구로 마시고, 야합에 의해 큰 성인도 태어났으니 폭탄주를 즐겨 마시고 돌리는 것도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김영표 경남발전연구원 부원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