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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대한빙상연맹 비리 ‘구태 정치’ 복사판- 정오복(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4-02-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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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국민들을 보름 이상 기쁘게, 안타깝게, 또 분노케 했던 소치 동계올림픽이 어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 선수단의 성적 부진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가운데, 빅토르 안(안현수)의 러시아 귀화문제로 촉발된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난맥상이 국민 여론을 들끓게 했다. 더욱이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계 행정을 질타하자, 침묵하던 정부·여당까지 가세하면서 마녀 사냥 식으로 이상 과열현상마저 보이기도 했다.

    비록 소는 잃었지만, 앞으로 키울 소를 위해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몇 가지 지적을 해본다.

    먼저 박 대통령의 발언 시기 부적절성을 들고 싶다. 빅토르 안이 선전하면서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졌지만, 당시 경기를 하고 있거나 앞둔 선수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공식석상에서 강한 어조로 비판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비공개로 관계자를 불러 질타하면 될 일을 굳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놓고 혼냈어야 했던가 싶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관료들의 태도를 질책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정부 1년 동안 청와대 참모들이나 장관, 정부 고위직 관료 모두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을 뿐 알아서 일을 처리하려 하지 않고 책임질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문체부도 다를 바 없어서 주도적으로 상황을 파악해 단기 처방과 장기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대통령 공약사항 점점이나 지시사항 받아쓰기에 급급했다.

    지난해 7월 태권도 경기 판정에 낙담한 선수 아버지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박 대통령 지시를 받은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산하 56개 가맹단체를 대상으로 4개월에 걸친 장기 감사를 했다. 불과 한 달 전 감사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때 정작 빙상연맹에 대해선 아무런 지적사항이 없었다.

    그런 문체부가 지난 13일 박 대통령이 “안 선수(빅토르 안)의 문제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한마디하자마자 김종 문체부 제2차관이 “빙상연맹에서 조직 사유화와 성추행 등 스포츠 4대 악과 관련된 의혹이 나오는 만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철저히 조사하겠다. 또 빙상연맹뿐만 아니라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협회는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점검해볼 계획”이라고 뒷북 치는 소리를 해 국민들을 실소케 했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 빙상연맹의 부조리 문제는 썩은 정치의 축소판과 같다. 특정 그룹이 학맥과 사연(私緣)으로 파벌을 형성, 주도권을 틀어쥐면서 짜고치기, 이권챙기기, 승자독식 등 음험한 정치판 논리로 지배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금만 따면 된다는 논리는 권력만 잡으면 과정은 어떻더라도 아무 상관없다는 정치판의 생리를 철저히 빼닮았다.

    이런 가운데 새누리당은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를 갖고 “체육계의 고질적 파벌과 특권, 불공정, 선수평가 부조리는 확실히 뿌리뽑아야 한다. 이번 기회가 체육계 전반에 만연한 비정상의 정상화를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하나마나한 얘기를 했다. 이어 “문체부가 체육계의 부조리한 관행을 타파하는 데 소극적인데, 과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문체부의 책임을 강하게 따졌다. 정치와 체육계의 경계를 확실히 그은 셈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스포츠와 정치의 연결고리는 아주 강하다. 무려 8개 경기단체 수장이 현역 국회의원이고, 전직 위원이 맡은 단체도 2곳이나 된다. 또 새누리당 윤상현·이에리사 의원처럼 협회장에 출마했다 뜻을 이루지 못한 현역 의원이 있는가 하면, 비가맹단체 수장도 상당수 현역 의원이다. 또한 인기 종목은 주로 여당 실세나 중진 몫이고, 규모가 작은 단체나 비인기 종목은 신진, 야당 의원이 맡는다는 공식마저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자신의 정치 기반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 체육단체를 이용하려는 정치인과, 경기단체 회장 선출에 개입하고 나중 대가를 요구하는 대의원 간의 커넥션이 근절되지 않는 한 체육계의 개혁은 요원하다.

    정오복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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