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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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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경남의 현주소 (2) 피해자로 남을 것인가?

경청과 심리적 지지로 ‘내적 회복력’ 깨워 다시 일상으로…

  • 기사입력 : 2014-11-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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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로 전소된 전동차. /경남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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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경우,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중요한 기로에 선다. ‘피해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생존자로 일상에 복귀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의 내적인 회복력에 기대를 건다. 회복력이란 스스로가 이해하는 세계관이다.

    피해자들은 사고의 인과관계, 다친 이유 등을 생각하면서 그 원인에 대해 조심하면 안전하다고 자신을 위로하게 된다. 스스로가 가진 회복력의 원상복귀, 전문가들의 도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10여 년 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길에 올랐던 대구에 사는 A씨. 그녀의 삶은 지난 2003년 2월 18일, 지하철을 타고 난 뒤 송두리째 바뀌었다. A씨는 당시 지하철 화재로 192명이 죽고, 151명이 다친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아수라장에 있었다. 그녀는 긴 호흡이 필수인 합창단 단원이었다. 그러나 사고 이후 A씨는 더 이상 숨을 오래 참기 힘들었다. 합창단 단원이던 그녀에게 이 같은 일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서울의 한 연구소가 그녀의 이 같은 증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상담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서울 내러티브연구소 최남희 교수와 유정 연구원은 A씨가 숨을 참기 힘든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의도적으로 숨을 길게 참아야 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고 조언했다. A씨는 노래연습, 수영, 학교에서의 달리기를 말하다가 잠시 침묵했다. “죽을 것만 같았어요. 저는 숨을 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어요.” 그녀는 지워버리고 싶었던 사고현장의 기억을 어렵게 다시 꺼냈다. A씨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어수선했어요. 평소에 숨을 오래 참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힘들었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사고 후 가족과 귀가하던 중에 기절한 기억도 꺼냈다. “깜깜한 지하철역에서 어디론가 밀려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합창단에서 노래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연구소의 오랜 상담 덕분에 A씨는 노래를 부르는 대신 악기로 봉사활동을 하며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하기로 했다.

    상담은 별다를 것 없이 보이지만 사실은 심리적 지지가 큰 도움이 된다. 일체의 전문적인 진단은 배제한 채 ‘아프냐’고 묻고 편안한 상태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위로를 받는다. ‘내가 아파도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 삶을 전제로 ‘언제까지 아플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고무줄의 탄성한계는 고무줄이 원래대로 복원될 수 있는 힘의 최대치를 말한다. 고무줄이 탄성한계를 넘어서면 복원력을 잃어버리듯 내적 회복력도 마찬가지다. 일정 크기 이상의 정신적 충격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형시킨다. 따라서 이처럼 피해자 내적 회복력이 탄성한계를 넘어서기 전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이들 피해자에 대한 도움이 이제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 내러티브연구소= 내러티브연구소는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엮어 피해자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내러티브’ 방식을 추구한다. 사고는 단순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많은 인과관계가 얽힌 결과다. 이 때문에 서울 내러티브연구소를 구성하는 전문가들도 간호학, 영문학, 문화과학, 영상, 철학, 정신과, 심리학, 컴퓨터과학 등으로 다양하다. 2000년 12월 이들 전문가 10여명이 이사·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주로 사용하는 예방·치료방법은 내러티브 대화의 과정이다. 이는 이야기 만들기(story-telling), 구성하기(exposure and mapping), 검토하기(rieview), 자기상 그리기(self-empowering) 등의 단계를 거친다. 이 방법은 서울 원목초등학교에서 지난 2007년 5월, 소방안전교육 중 소방굴절차 와이어가 끊어지며 학부모 2명이 떨어져 숨진 사고에서 이를 목격한 학생들에 대한 치료에서도 적용됐다. 위기중재 프로그램에는 어린이 43명이 참가했고 3개월간 진행됐다. 아이들은 처음에 “소방서·소방차를 보면 무섭고 화가 난다”고 했고 소방훈련기계에서 처녀귀신이 내려다보고 있다거나 사고 당일 고양이가 등굣길에 죽어 있었다고 답했다. 이 경우, 예컨대 아이들은 고양이가 죽은 것을 보고 사고 장면을 회상하며, 앞으로 고양이 사체를 발견하면 인명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사실이 왜곡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본인만 알고 있던 정보를 종합해 큰 틀에서 사고를 이해하도록 돕고, 공포와 두려움이 사고현장의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도록 도왔다. 그 결과 아이들은 표정이 밝아졌고, 나쁜 꿈은 거의 꾸지 않게 됐다고 한다.

    ◆서울시 재난심리지원센터= 피해자를 돕기 위해 서울시 재난심리지원센터는 정신보건증진센터의 도움을 받고 있다. 특히 이들은 재난사고가 발생하면 위기관리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이 가동된다. 정신보건증진센터 내 자살예방센터 위기관리팀이 대형 재난 피해자에 대한 심리적 지원을 전담하는 형태다. 위기관리팀 인원은 8명에 불과하지만 대형 재난이 발생하면 서울시내 26곳의 재난심리지원센터 내 전문가·간호사·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125명의 재난심리지원전문가가 함께 피해자를 상담한다.

    설립 당시 위촉된 113명의 전문가들은 서울시장이 임명했다.

    고진선 자살예방센터 위기관리팀장은 “113명 중 80%가량이 재난심리지원센터 실무자였다”며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보다 빨리 효과적으로 상담하기 위한 방법이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PTSD로 인한 예측 불가능한 사고를 막기 위해 자살예방센터에서 운영하는 핫라인(☏ 1577-0199)과 심리 상담을 통합해 운영한다.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자치구별 자살예방담당자 등 3명이 돌아가며 전화를 받아 24시간 운영되는 체계다. 아울러 재난관리체계의 신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뮬레이션도 주기적으로 실시한다. 자치구별로 정신보건증진센터의 전담조와 조장을 지정해 전담조의 리더에게 ‘심리적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응답률을 조사하는 방식이다. 정치섭 기자

    sun@knnews.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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