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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 몇 편 신춘문예 원고로 보내놓고 십여 일, 조바심에 안달이 난 걸음이 문수산을 향했다. 영하의 기온과 가쁜 숨이 산 중턱을 오를 즈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일시에 가라앉히는 당선소식이 발보다 먼저 정상을 밟았다.
모두가 직립의 삶을 꿈꿀 때 가끔 횡보의 날들을 꿈꾼 적 있다. 혼탁한 정치판만큼이나 시답잖던 내 짧은 사유의 공간에라도 무한 갇히고 싶었던 날들, 그 날들이 시와의 동거였지 싶다.
부지불식간 찾아온 뇌경색, 후유증이 남긴 편마비 그 숭한 짐승과의 양보 없는 드잡이에 지쳐갈 무렵 마치 구원의 손길인 양 두려움과 절망의 시간을 잊게 해준 또 다른 짐승이 詩였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형체도 없고 끝이라는 말 자체도 모르는 짐승과의 싸움 그것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강을 건너는 것이기도 했고 무저갱에 갇힌 순한 짐승의 두려운 울음 같은 거였다.
시의 문외한인 내게 문을 활짝 열어준 ‘김포문예대학’ 그 너른 품에서 수삼년 시구와 부대끼던 날들이 언제인지 싶다. 햇병아리들 몇 모여 시의 숲을 해찰대던 ‘달시’의 김부회 시인과 동인들, 무녀리를 자처 시의 끈을 놓지 말자며 서로 경계하며 이끌어주던 ‘반딧불이’ 동아리 샘들, 당근과 채찍으로 詩라는 과육을 맛깔나고 단단하게 단근질시켜준 문성해 시인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詩밭으로 한 발 더 들어서는 것이 끝없는 미로를 걷는 것이며 기약 없는 약속임을 알기에 기쁨보단 두려움이 앞섭니다. 평생 詩밭을 경작할 것이지만 시를 놓는 것이 여반장(如反掌) 같다는 것도 잘 알기에 나를 더 경계할 것입니다. 이 영광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겸허함을 마음 네 모서리에 친친 두르고 자만이라는 짐승을 가두어 두겠습니다. 사람답게 사람 같은 꼭, 그런 사람으로 살 것입니다. 시와 사랑을 품고…
시 부문 당선자 박위훈 씨
△1964년 출생 △김포문예대학 13-15기 수료 △반딧불이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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