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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22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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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좋은 문학작품이 백신이다-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21-06-10 20: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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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5월 29일 하동의 이병주문학관에서는 작가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이병주 소설 릴레이 낭독회’가 있었다. 지역 주민과 지역 문인, 경향의 낭송가들이 모여서 ‘소설·알렉산드리아’를 비롯해서 대표작 ‘지리산’, ‘관부연락선’ 등을 읽었다. 시도 아니고 소설을, 그것도 전문 낭송가와 아마추어 낭송가가 모여서 두서없이 읽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기는 분들이 많겠지만, 문학작품을 다중이 모여서 같이 읽고 감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얼마나 세련되게 읽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양한 층위의 사람들이 다양한 각도에서 그 작품을 바라보고 이해하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문학작품을 읽고 이해하고 감상하고 향유하는 일련의 과정은 개인의 영역이겠지만, 공감하고 확산하고 나아가 그것의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공중(公衆)의 장이 필요하다. 우리의 문학이 급격하게 사적(私的)인 자리로 물러나면서 서사가 실종되는 최근의 경향을 감안한다면 더욱 절실한 것이 문학의 사회적 기능과 가치를 확인하는 공적인 장일 것이다. 이날 행사는 이병주 작가의 고향 주민들,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계승하려는 지역의 문인들과 오랜 독자들이 작품을 나누어 읽으며 작가와 더욱 가까워지고, 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건 이런 의미 있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비단 이번 행사뿐만이 아니다. 문학제도 세미나도 시인학교도 낭송회도 아예 열 수가 없거나, 열어도 비대면이라는 이름의 유령행사거나, 고작해야 방역지침에 따라 무인도처럼 떨어져 앉아있는 적막한 풍경이다. 코로나19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이젠 이 상황에 익숙해져서 매사에 그러려니 여기고 체념할 때도 되었건만 우리는 여전히 고통스럽다.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 몰고 가는 가장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것이 병(病)일진대 병치고 좋은 병이 있을까마는 전염병은 병 중에서도 악질이다. 우리한테서 ‘자유’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방역지침 준수하면서 자유롭게 살면 되지 무슨 엄살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고 싶은 데를 갈 수 없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는 자유를 무슨 자유라 하겠는가.

    이날 낭독한 소설 중 가장 호응이 높았던 작품은 ‘소설·알렉산드리아’였다. 이 작품은 중편소설로 1965년 ‘세대’지에 발표한 이병주 작가의 등단작인데, 사상범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있는 형이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아우에게 수시로 보내온 편지가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형의 편지 중에 옥창(獄窓)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자유를 부러워하는 대목이 나온다. 따닥따닥 부스럼딱지 같은 판자집엘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을 보고 ‘자유’라고 부르는 장면이다. 자유롭게 다니는 그들을 보고 형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자유’라고 부른다. 지나가는 사람이 셋이 보이면 “저기 자유 셋이 지나간다”고 말하는 식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코로나19가 우리로부터 박탈해간 목록 중 가장 소중한 것이 바로 이 ‘자유’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가 사라진, ‘역설적 자유’를 견디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디로 갈 자유가 아니라 가지 않을 자유를, 누굴 만날 자유가 아니라 만나지 않을 자유를. 이런 시절을 두고 어느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백무산 ‘정지의 힘’)고. ‘백신’이란 게 병으로부터 나를 나에게 돌려주는 거라면, 백신은 약물만 있는 게 아니다. 좋은 문학작품도 백신이다. 그러니 영혼이 아플 때는 큰 소리로 시나 소설을 읽어보자!

    김남호(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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