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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버스정류장- 김경애

  • 기사입력 : 2022-01-03 07: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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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골에 오니 딱히 할 일이 없다. 학교를 안 다니고 학원을 안 다니니 시간이 참 많다. 오전 내내 게임만 했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일상이었어도 혼자 있는 시간은 지루했다.

    오전의 햇볕은 따뜻했다.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여기는 두 시간 만에 한 번씩 버스가 다닌다. 열두 시면 우리 집 앞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도착한다. 오늘 그 시간 버스는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다. 그냥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싶었다. 잠바를 입고 집을 나서는데 할머니가 나를 보며 말했다.

    “서울 가니? 나도 같이 가자.”

    집에서 누군가가 나가려고 하면 할머니는 늘 서울 가냐고 물었다.

    “할머니랑 같이 바람 쐬고 와.”

    고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사이에 할머니는 진짜 서울 가는 것처럼 짐을 싸고 있었다.

    “다 되어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는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옷을 찾아서 캐리어에 넣었다. 심지어는 냉장고에서 반찬통을 꺼내서 넣기도 했다.

    “엄마, 짐이 너무 많으면 무거워요. 오늘 간단히 싸고 다음에 또 싸요.”

    할머니는 가지도 못하는 서울이다. 그래도 서울에 간다고 마음이 부풀어 짐을 싸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였다. 아빠는 할머니와 나를 보더니 마치 손님에게 하듯이 ‘안녕하세요!’하고 큰소리로 인사했다.

    나는 할머니와 나란히 앉았다. 그저 창밖만 바라봤다. 시골이라 가게도 없고 큰 건물도 없다. 창밖을 보면 그저 논밭과 비슷하게 생긴 집들 뿐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헷갈렸다. 가다가 버스정류장이 있으면 서고, 버스정류장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 섰다. 시골 버스는 그랬다. 이것이 서울 버스와 다른 점이다. 어느새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다.

    “할머니하고 다음 차 타고 어여 들어가라. 어머니, 추운데 밖에 오래 있지 마세요.”

    아빠가 회사에 들어가며 말했다. 나는 할머니와 읍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쓸데없이 무거운 캐리어가 신경 쓰였다.

    마침 장날이라 사람들이 좀 있었다. 그래도 서울 우리 동네 시장만큼 많지 않았다. 장터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옷가게도 할아버지 할머니 옷만 팔았다. 옷가게 앞에는 잔잔한 꽃무늬가 있고 색깔이 화려한 버선이 한가득 있었다. 버선은 한복 입을 때나 신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런 촌스러운 버선은 과연 누가 신을지 궁금했다. 나는 그런 버선을 신은 할머니들을 본 적이 없다. 시골 사는 우리 할머니도 그런 버선을 신은 것을 못 봤다. 솜이 들어간 버선은 신으면 발은 따뜻해도 답답할 것 같았다. 자꾸 보다 보니 버선인지 장화인지 구분이 안 됐다. 또 버선인지 모자인지 헷갈렸다. 나는 버선을 머리에 썼다. 내 머리는 크고 버선 입구는 작고. 입구가 벌어진 버선은 내 머리를 덮지 못하고 정수리에 가만히 얹혀 있었다. 내 모습을 본 할머니가 웃었다. 이쁘지도 않은 버선을 샀다.

    “할머니, 그걸 왜 사요?”

    “서울 가서 신을 거야.”

    “서울 할머니들은 그런 거 안 신어요.”

    내 말에 할머니와 옷가게 아줌마가 서울 할머니들도 신고 다닌다고 하면서 한참 웃었다.

    장터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도 내가 살만한 것은 없었다. 시골 장터에는 떡볶이 가게도 없었다. 떡볶이는 매워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안 드셔서 그런가 보다 했다. 대신 붕어빵과 어묵 파는 가게는 있었다. 나는 할머니와 붕어빵을 사 먹었다. 붕어빵 굽는 할아버지가 나한테 “너는 학원 안 다니니? 숙제는 다 했니?”하고 물어보셨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나한테 하는 질문이 똑같았다. 서울이나 시골이나 학교보다 학원이 더 중요한 건 마찬가지였다. 학원 피해서 여기까지 온 나한테는 그런 질문이 너무 답답했다.

    “서울 언제 가니? 너도 학원에 가고, 숙제도 해야지.”

    장터를 벗어나자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의 눈빛이 기도하는 사람처럼 간절했다.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나는 할머니의 눈물을 처음 봤다. 차마 못 간다고 말하지 못했다. 또, 그랬다가는 할머니가 어찌 될지 몰랐다. 할머니는 유독 ‘싫어요, 안 돼요,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무척 싫어했다. 할머니가 뭔가 하자고 했는데 그게 안 될 때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동안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아무데서나 내려도 그곳이 서울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진짜 서울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와 함께 서울 우리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 갔다. 가면서 고모에게 문자를 보냈다.

    ‘고모 저 시외버스터미널에 왔어요. 할머니랑 진짜 서울 가려고요. 걱정 마세요.’

    서울행 버스는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다.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할머니와 그 주변을 걸었다.

    길 따라 걷다 보니 병원이 나왔다. 종합병원이라 해도 우리 동네 정형외과 병원보다는 작았다. 시골은 뭐든지 다 조그마했다. 병원 옆에는 요양병원이 있었다. 병원보다 요양병원이 더 컸다. 또 그 옆에는 장례식장이 있었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요양병원 앞에도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일단 아무거나 오는 버스를 타려고 했다.

    “어디 가니?”

    “서울에요.”

    “여기서 좀 쉬었다 가자.”

    할머니는 요양병원 버스정류장 나무 의자에 앉아서 병원을 바라봤다. 나도 가만히 할머니 옆에 앉았다.

    하얀 건물에 드문드문 박힌 유리 창문.

    서울에 가도 그런 건물은 많다. 시내든 동네든 하얀 건물이 아니어도 어느 건물이든 네모난 건물은 다 비슷하고 유리 창문이 많다. 학교도 그렇다. 아파트도 그렇고. 요양병원 옆 병원 건물도 그렇다. 다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를 뿐이다. 일하는 사람이 있고,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아픈 사람이 있고, 더 아픈 사람이 있고…… .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는 하얀 요양병원을 한참 바라보았다.

    요양병원 앞 광장에 한 무리의 비둘기 떼들이 자동차 경적소리에 놀라 화들짝 무리 지어 날아올랐다.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저기에 가야 내 친구들이 많을 게야. 그래야 애들이 고생을 안 하지.”

    할머니가 덤덤하게 말했다.

    “네?”

    “겨울이라 해도 금방 지니 어여 집에 가자.”

    “서울 가는 버스 아직 있어요. 할머니 저랑 같이 진짜로 서울 가요. 일단 서울 우리 집에 가요.”

    “서울은 무슨. 다 지난 일이구나.”

    지금 할머니는 온전했다. 나는 할머니가 언제까지나 이 모습 그대로였으면 했다. 시간을 확인하려고 핸드폰을 보니 고모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혼자는 위험해. 거기에 있어. 고모가 갈게.’

    시골에 있는 동안 나는 방학 숙제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숙제 중 미술 숙제를 선택했다. 여행한 곳 그리기. 나는 여기에 여행을 온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학원 다니기 싫어서 도망쳐 온 곳이다. 여기는 할머니 집이다. 아빠가 구조조정으로 퇴직을 하고 할머니 집에 잠시 내려온 것이다. 아빠는 여기서 운 좋게 버스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고모랑 같이 할머니도 돌볼 겸 여기에 있겠다고 했다. 엄마도 회사에 다니고 누나와 나는 학교를 다녀야 해서 우리는 서울에 있게 되었다. 나는 엄마한테 올겨울 방학은 혼자 공부하고, 6학년이 되면 그때부터는 학원에 열심히 다니겠다고 사정사정했다. 엄마는 우리 집이 아무리 어려워도 나랑 누나 학원 보내 돈은 있다며 안된다고 했는데, 나는 방학 숙제든 문제집이든 혼자 다 해서 오겠다고 말해서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나는 시골집에서 읍내까지 가는 길을 그리기로 했다. 스무 개 정도 되는 버스정류장이 다들 비슷비슷해서 기억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 도로 따라 양 옆으로 논을 그리다가 버스정류장 간판 하나 그리고, 도로 따라 양 옆으로 밭을 그리다가 버스정류장 하나 그리다 보니 도화지가 모자랐다. 그래서 스케치북을 두 장 뜯어서 옆으로 이었다. 그런 다음에 버스 회사 옆 장터를 그리고 요양병원도 그리면서 도화지를 채워나갔다. 중간중간에 사람도 그려 넣었다. 사람을 그리니 지도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대부분 친구들은 도화지 한 장에 그림을 그려 올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화지를 이어 붙이면서 숙제를 하고 있다. 내가 제일 긴 그림을 그렸을 것을 생각하니 흐뭇했다. 나는 숙제가 다 완성되면 접지 않고 돌돌 말아서 가져가기로 했다.

    밤이 되어 자려고 하는데 아빠가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오셨다. 한 손에는 소주 서너 병이 담긴 터질 듯한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큰 비닐봉지도 막상 쓰려면 없는 것일까. 좀 더 큰 봉지라면 소주병이 삐죽 나오지 않았을 텐데. 다 들어가지 못하고 손잡이 사이로 터질 듯이 머리를 드러낸 소주병이 위태로워 보였다. 슬픈 일은 항상 표시를 낸다.

    아빠와 고모는 안주도 없이 식탁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누나, 우리 어머니 어떡해요. 나 도저히 어머니를 요양원에 못 모시겠어요. 내일 운전, 나 못하겠어요.”

    내일이면 할머니를…….

    아빠는 소주를 병째로 마셨다. 고모는 아빠의 등을 두드렸다. 고모의 토닥이에 아빠는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어른들이 내게 토닥이를 해주면 위로가 되고 힘이 났는데, 지금 내가 본 토닥이는 그렇지 않았다. 슬픈 토닥이였다.

    “이제는 나도 누나도 더 이상 도리가 없어요. 내가 언제까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고, 누나도 이제 휴직 못 하잖아요.”

    아빠는 계속 소주를 마셨다. 나는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라면을 끓여서 아빠에게 드렸다.

    “병원에 가면 그래도 집에 가는 날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요양원은 아니에요. 한 번 들어가면 못 나와요.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눈을 감고 자는데도 눈앞이 희뿌연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쯤이면 거의 대부분 눈앞이 환한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달랐다. 눈을 떠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 오는 날은 온 세상이 하얗지만 흐렸다. 어제의 슬픈 예감 때문에 더 흐린 것 같았다. 나는 고모가 차려 준 아침을 먹었다. 어젯밤 이후로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버스정류장에는 아빠 차가 있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없었다. 오늘 인사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래도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는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어떤 인사가 최선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인사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고모가 운전석에 앉았다. 뒷자리에 아빠와 할머니가 앉았다. 운전석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짧은 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인사도 없이 할머니를 보내드리기에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었다. 냉큼 달려가 문을 열었다.

    “저도 갈래요.”

    나는 누군가 타지마라고 할 것 같아서 얼른 안전벨트를 맸다.

    “그래, 너도 같이 서울 가자. 서울 가서 학원도 다니고 숙제도 해야지.”

    나는 할머니의 말씀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차라리 모두 다 같이 서울 가는 차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곧 출발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차 안에서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한테는 술냄새가 났다. 밤새 울었는지 눈도 빨갰다.

    “이제 갈까?” 고모가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시동 거는 소리가 났다. 차가 스르르 움직였다.

    “잠시만요.”

    나는 어제 그린 그림을 할머니께 드리고 싶었다. 급하게 집으로 뛰어가서 그림을 가지고 나왔다.

    “숙제 다 했어요. 할머니.”

    차에 타서 뒷자리에 계신 할머니께 그림을 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그린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셨다.

    “여기 세 번째 정류장 나무 대문 집이 빠졌구나.”

    “어! 그러네요. 다시 그릴게요.”

    “괜찮아.”

    할머니는 그림만 계속 들여다보셨다. 그림에 난 길은 방학 동안 할머니와 내가 지나왔던 길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할머니와 그 길을 다시 걷기를 바랐다. 아마 할머니도 마음도 그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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