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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배웅- 류미연

  • 기사입력 : 2022-01-03 07:4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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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떡 일어나 앉으니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퍼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다시 누웠다. 곧 새된 울음이 터져 나오겠지만 잠깐이라도 바닥에 등짝을 붙이고 싶었다.

    ‘홰만 치고 울지 마라, 이 놈아’

    그놈의 길쌈만 하면 잠이 쏟아졌다. 길쌈하는 밤은 가는지 오는지도 모르는 깊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새기 전에 눈이라도 붙여야 하는데 베는 더디게만 짜였다. 거기다 시어머니는 삼을 곱게도 삼았다. 고운 실로 만든 북은 보기가 좋았고, 베를 짜놓으면 결이 고와 모시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베 짜는 사람한테는 그런 고역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북을 만들어 자랑할 때마다 보기 좋다며 장단을 맞추는 건 나다. 그건 며느리를 늘 마뜩찮아 하는 시어머니의 비위를 맞춰보고자 하는 심산이었다. 돌아서면 저걸 어떻게 짜나 싶어 한숨을 쉬곤 했다. 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베틀소리에 묻힌 한숨소리가 사이사이 껴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 둘은 베틀 소리가 자장가라도 되는 양 색색거리며 잘도 잤다. 자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공연히 이불을 다독여 덮어주곤 했다.

    어둠 속에서 몇 번 눈을 껌벅거렸을 뿐인데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닭이 울어댔다.

    “아 휴, 저놈의 닭. 목을 확 비틀어버릴까 보다.”

    나는 궁시렁 대며 아이들을 깨웠다.

    “순아, 영아, 일어나. 뱀 쫓으러 가야지.”

    투정부리는 아이들을 깨워 누비저고리를 입혔다. 설빔으로 만든 누비저고리를 아이들은 아껴가며 입었다. 무명목수건까지 감아 놓으니 이만하면 춥진 않겠다 싶다. 나는 준비한 꼬챙이에 새끼줄을 감아 아이들 손에 쥐어 주었다.

    돌담 사이를 쿡쿡 찌르며 두 아이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좀 더 큰 소리로 불러야 뱀이 도망간다며 아이들을 달랬다. 잠을 빨리 달아나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후여, 뱀이여, 여기는 개똥밭이다. 꽃밭에 가거라.

    후여, 후

    후여, 딱딱새야. 윗녘에 사는 새야 아래 녘으로 다가라.

    정,정, 정도령 장가가는데 콩나물대가리 얻어먹으러가거라.

    후여, 후

    삐죽거리는 아이들을 달래며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순이가 내 소리를 흉내 내며 크게 부르자 영이도 곧 따라 불렀다.

    “김 순! 김 영!”

    앞집에 사는 곽연숙이었다. 아이들이 반가움에 겨워 쪼르르 달려갔다.

    “이러면 진짜 뱀 안 나와요?” 영이가 일찍 일어난 것이 못내 억울하다는 듯 물었다. 응석이 잔뜩 묻은 혀 짧은 소리가 곽연숙에겐 통했다.

    “그럼, 영이가 큰 소리로 노래하면 뱀이 무서워서 못 나올 거야.” 곽연숙이 웃으며 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곽연숙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혼인했지만 나는 웃새미에 살았고, 곽연숙은 아랫새미에 살아서 어쩌다 우물에서 만나면 인사 정도 하는 사이였다. 곽연숙이 먼 대처에서 시집왔다는 건 마을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왠지 새침한 것이나 웃을 땐 볼우물이 살짝 생기는 것들이 나와는 달리 보였다. 살던 집을 버리고 곽연숙의 뒷집으로 이사 오며 친해졌는데 곽연숙이 아이들을 유난히 예뻐한 것이 계기였다. 가끔 담 너머로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했고, 담에 붙어 서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했다. 곽연숙은 택호를 쓰지 말고 이름을 부르자 했다. 나도 그러자고 했는데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우린 더 가까워졌다. 출신이 동향인 동무 같아서 어떤 말을 꺼내도 연숙이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친정에서의 이런저런 추억쯤은 물밑처럼 훤해서 말할 필요조차 없는 동무 말이다. 나는 답답할 때면 곽연숙이 거처하는 창에 작은 돌을 던져 신호를 보냈고, 곽연숙은 나의 방 가까운 곳에서 고양이 소리를 흉내 냈다. 고양이 소리보다 더 고양이 같으면 곽연숙이었다.

    “쌀은 앉혔어?”

    보름밥(오곡밥)은 했냐는 나의 안부였다.

    “응, 팥 조금 삶아 놓았어. 오늘이 여기서 마지막으로 하는 조식이 될 것 같아.”

    “왜? 어디 가?”

    나는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곽연숙을 붙들었다.

    “시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사정하더라. 떠나 달라고.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어.”

    곽연숙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올해가 혼인한지 칠 년째였고, 시아버지의 고집을 남편도 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이나 농담이란 생각이 들만큼 연숙의 말은 태연스러웠다.

    “왜 그리 빤히 보니? 사람 무안하게.”

    나는 거짓말 같아서, 하면서도 거짓말 같았다.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었어. 괜찮아.”

    곽연숙이 연한 웃음을 흘렸지만 눈두덩이 소복한 것이 밤새 운 것 같았다.

    아침 설거지가 끝나면 떠날 거라는 곽연숙의 말을 듣자 마음이 바빴다. 하필 오늘 같은 날 가나 싶다가, 보름이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맨손으로 보낼 수는 없다싶었다. 패랭이 수가 놓인 작은 보자기를 곽연숙이 좋아했지만 너무 낡아 보였다. 보름밥을 하며 급히 솥 한쪽으로 찹쌀을 앉혔다. 묵나물을 볶으며 찰밥을 돌확에 찧었다. 마침 설에 남겨둔 콩고물이 있어 굴려내니 먹을 만해 보였다. 창호지에 떡을 싸고 패랭이꽃이 보이게 보자기를 둘렀다. 그래도 떡을 쌀만한 보자기는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볼 새라 시렁 높은 곳에 올려놓았다.

    보름밥 네 그릇을 고봉으로 담아 상보를 덮었다. 이만하면 해가 지도록 아이들과 시부모가 수시로 먹을 양이었다. 아이들은 종일 할머니 뒤를 따라 다니며 명절놀이를 할 것이고, 오늘만큼은 농사일도 할 게 없으니 한나절은 여유가 있을 것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남천은 겨울 가뭄에 물이 줄어 개울 같았다. 나는 징검돌 앞에서 헤어질 작정이었다. 곽연숙이 첫 돌을 밟아 나갔다. 잘 가라는 말보다 다리가 앞서 나가 곽연숙이 짚었던 돌을 밟았다. 마지막 징검돌을 건너고 곽연숙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곽연숙의 손을 잡았다.

    징검돌을 건너면 생각나는 일이 있어 빙긋 웃고는 했다. 이제는 웃으며 지나던 길목이 그리움의 길이 되겠단 마음이 들었다. 마음 한편이 쓱 베여 나가는 것 같아 곽연숙을 봤다. 곽연숙도 그때 생각을 하는지도 몰랐다.

    읍내만 가면 늦게 오는 남편 때문에 속상해 할 때 곽연숙이 남편을 곯려주자고 했다. 내가 어떻게? 라고 묻자 징검돌 하나를 빼자는 것이었다. 곽연숙이 지겟작대기를 가지고 나와 우리는 함께 냇가로 나왔다. 지겟작대기를 징검돌에 받치고 둘이 힘을 주어 들어 올리자 판판한 돌이 섰다. 곽연숙이 이대로 두자고 했다. 그냥 건너도 바짓가랑이는 다 젖을 것이고, 짚으려면 돌을 밀어야하니 무거운 것이 넘어지면 물벼락을 맞을 것이라 했다. 물론 나는 동의했다. 박수를 치며 좋은 생각이라 했다. 곽연숙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았다. 냇가에서 젖은 다리를 말리며 곽연숙과 나는 한참이나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남편이 물을 흠뻑 뒤집어 쓴 모습을 마음껏 상상했다. 서 있는 돌을 돌아보며 집으로 가는 길은 큰일을 해낸 것 같아 뿌듯하고 후련했다. 곱게도 삼은 시어머니의 북으로 베를 다 짜내려갔을 때보다도 더.

    가끔씩 웃으려고 꺼냈던 그때 일이 오늘은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고갯길로 접어들며 바람이 불었다. 이삭을 모두 날린 억새가 서걱거리고, 마른 풀들이 일어설 듯 흔들렸다. 앞서가는 곽연숙의 남색 치맛자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작은 보퉁이 하나 가슴에 안고 곽연숙이 돌아오지 않을 길을 가고 있었다. 나는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곽연숙을 불렀다.

    “이 고갯길은 어찌 이리 구불구불한지. 시집올 때 가마멀미를 엄청 했어.”

    “그랬구나. 난 걸어왔어. 남편이 나를 데리고 왔지. 그때도 참 멀더라, 여긴.”

    도저히 가마를 탈 수가 없어 가마꾼에게 삯은 줄 테니 걷겠다고 했어, 라고 하자 곽연숙이 웃으며 말했다.

    “그 가마꾼 수지맞았네. 네처럼 자그만 사람이라 좋아 했을 텐데, 거기다 빈가마로 왔으니. 너나 나나 걸어온 건 같네.”

    곽연숙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철 늦은 쑥부쟁이 한 송이가 펴 있었다. 연한 팥죽색 꽃잎이 바람 속에서 추워보였다.

    “이 꽃 나 닮았어.”

    “응, 그러네. 너처럼 이쁘다야.”

    곽연숙은 쑥부쟁이처럼 여렸고 예뻤다.

    “철모르고 핀 꽃 같어. 철이 없긴 저나, 나나 같네.”

    나는 꽃을 꺾어 곽연숙의 앞섶에 꽂아 주었다.

    “예쁘다. 넌 꽃처럼 예뻐.”

    곽연숙은 아주 먼 곳에서 왔다고 했다. 간도라는 곳에서. 아버지의 만류에도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오다 보니 너무 멀었다고 했다. 이 길을 걸을 땐 구둣발로 걸을 수가 없어서 맨발로 걸었는데 가방을 든 남편이 구두까지 들어 주어 고마웠다고 했다. 그때는 다시 돌아 갈 것은 터럭만큼도 생각지 않았다 했다. 나는 간도라는 곳은 어디쯤일까를 생각했다. 곽연숙이 꽃을 빼 보퉁이 속에 살며시 밀어 넣었다.

    “기차 타야 돼?”

    “응, 기차 타야 돼.”

    “그럼 거기로 갈 거야?”

    “응, 일단은 거기로 가려고 해. 아버지가 계셔.”

    움막이 보였다. 먼 길을 가야 하는 곽연숙을 나는 조금 쉬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을 오갈 때 비를 만나거나 힘들면 쉬어 갈 곳을 동네 사람들이 마련해둔 곳이었다.

    움막 안은 너저분했다. 오랫동안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우리가 앉을 자리를 대충 정리했다. 구석에 있는 가마니를 끌어다 곽연숙과 나란히 앉았다.

    “참 속상하다.”

    “뭐가?”

    곽연숙이 뭐가 속상한 일 있냐는 듯 물었지만 시선은 앞만 보고 있었다.

    “간절한 것들은 어쩌면 이렇게 비껴만 가는지 모를 일이야.”

    나는 비껴만 가는 어떤 것들을 떠올렸다. 멈추지 않는 남편의 벌바람을 생각했다. 첫 아들을 낳기를 바랐으며 좋은 시어머니를 만나길 바랐었다. 이루어지길 바랐던 순간들이 비껴갈 때마다 부뚜막에 얹어 놓은 참기름이 굴어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곽연숙과의 인연도 이렇게 비껴가는가 보았다. 곽연숙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이삿짐을 모두 빼낸 옛집이 마음속에서 그대로였다. 나뭇잎이 날아와 쌓여도 누구도 쓸지 않을 마당이 거기 있었다.

    문틀만 남은 입구가 액자 같았다. 액자 속에서 바람이 불자 잎이라곤 없는 나무들이 잔가지를 떨었고, 나무 너머 나무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멀어져갔고, 산의 능성은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겨울하늘을 자잘하게 갈라놓았고, 겨울 새 한 마리가 날아갔고, 능성너머 푸르스름한 골짜기가 깊어 보였고, 연한 재색이 되며 멀어져갔다. 저렇게 이어지는 산들이 간도까지 닿나보았다.

    “그날 말이야.”

    고마웠지. 뭐가 속상해, 하면서도 곽연숙이 머리를 숙였다.

    그날은 붉은 달이 밝았다. 더위 때문인 것 같았다. 유두날도 지난 낮의 더위를 견디며 새로 산 논에서 피를 뽑고, 냇물건너 일군 밭에서 해가 지도록 김을 맸다. 시어머니의 지청구를 들으며 어두워서야 저녁밥을 챙기는 손이 바빠 고단한 줄도 몰랐다. 지친 몸을 자리에 누이고서야 한 숨 돌린다 싶었다. 읍에 나가는 날이면 밤이 이슥해야 돌아오는 남편을 기다렸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몸과 마음이 아득해지며 몇 길인지 모르는 웅덩이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정신을 붙드는 순간순간 아궁이 잔불위에 올려놓은 된장찌개가 식기 전에 와야 할 텐데,라고 생각했다.

    보소, 하는 소리에 놀라 일어나 보니 남편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깜박 잠이 들었나 싶어 머리를 매만졌다. 왔으면 들어오지 뭐 해요,하며 다시 드러누웠다. 남편은 일어나 보라고 했고, 일어나 다시 보니 환한 달빛을 등진 남편의 등 뒤에서 여자가 생긋 웃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저렇게 매끄러운 색시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남편이 작은 방으로 잠자리를 옮기라며 나를 내보냈다.

    섬돌에 발을 내려놓으며 잠이 달아났다. 남편이 문을 탁 닫았다. 나는 나란히 놓인 두 켤레의 고무신을 애써 외면하며 사립문을 나섰다.

    낫을 꺼내 싸리 울타리 아래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었다. 풀 사이에 있던 벌레들이 후두둑 뛰었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곽연숙이었다. 잠이 안 온다며 바람이 좋아 나와 봤다고 했다.

    “순이, 영이, 풀각시 놀이 만들어 주려고. 며칠 전부터 졸랐거든.”

    곽연숙이 풀을 모아 막대에 감아 주었다. 소금물을 바르지 않아도 아침이면 적당히 시들어 잘 땋아질 것 같았다.

    나는 곽연숙의 손을 잡고 끌었다. 벼르고 벼른 일이었다. 달맞이꽃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길이 환했다. 달맞이꽃을 손으로 쓸면 분 냄새가 났다. 결결이 달빛이 흐르는 내를 건너 움막으로 왔다. 나는 곽연숙의 손을 잡고 가슴에 얹었다.

    “내 태기 너 줄게. 너 다가져.”

    나는 곽연숙의 어깨를 안았다. 머쓱해 하던 곽연숙의 팔에도 조금씩 힘이 주어지며 나를 껴안았다.

    나는 진심으로 내게 올 아이가 있다면 곽연숙과 인연이 닿기를 바랐다.

    곽연숙이 아이를 무척 가지고 싶어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늘 속상해했다. 아이를 잘 가지는 내게 이런저런 방침이란 걸 묻기도 했지만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오늘같이 달 밝은 밤, 내가 가진 기운이라도 곽연숙에게 주고 싶었다. 그러면 내게 있을 태기가 전해질것 같았다. 곽연숙이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나는 입을 벌리며 나의 모든 기운들이 곽연숙에게 닿기를 바랐다. 눈을 감으면 짙은 달맞이꽃 향기가 코끝을 맴 돌았다. 이사 오기 전 정지 천장에 엉켜있던 구렁이 두 마리가 떠올랐다. 기절할 만큼 놀랐던 그 장면이 하필 지금 떠오를까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것들처럼 곽연숙을 휘감았다.

    그날은 이슬이 유난히 많았다. 남천을 건너며 축축한 버선을 벗어 털었다. 풀이 쓰겠네, 쓰겠어. 중얼거리며 소꼴을 천천히 먹여야겠다고 생각하자 내년엔 암소 한 마릴 더 사서 송아지라도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송아지 생각을 하자 좋아할 순이, 영이가 떠올랐고 그런 생각들이 나를 집으로 향하게 했다. 골목을 들어섰을 때, 막 삽짝을 돌아가는 색시를 보며 저건 또 무슨 인연일까 싶어 망연했다.

    곽연숙은 장독대에 정안수를 떠놓고 삼신할미에게 태기가 집히길 간절히 빌었고, 사발에 달이 담기면 마셨다.

    “간도는 어떤 곳이야?”

    “여기처럼 마을 앞엔 내가 흐르고, 밤엔 별이 강처럼 흐르는 곳이지.”


    곽연숙의 눈길이 더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쌀은 귀하지만 밭에서 나는 것들은 풍성해서 먹고살 걱정은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져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자신이 다니던 여학교의 안부도, 동무들 소식도 궁금하다고 했다.

    “다시 학교에 다닐 거니?”

    나는 곽연숙이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곽연숙은 아는 것이 많았다. 아이는 낳지 못했지만 키우는 방법은 곽연숙이 더 잘 아는 것 같았고, 농사짓는 요령도 훌륭했다.

    “글쎄,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지.”

    땅이나 파고, 어른들 봉양하고, 아이들이나 키우는 것 외에 아녀자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싶어 곽연숙을 봤다. 반듯한 콧날이 맵시 있어 보였다. 맵시란 말도 곽연숙이 알려준 것이었다. 추석에 빚은 송편을 담장너머 받으며 떡을 맵시도 있게 빚었다며 곽연숙이 눈을 동그랗게 떴었다.

    “기술을 배우려고. 머리 만지는 기술. 아버지하고 의논해서 미국으로 건너갈 거야.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어. 서양에서는 여자들도 머리를 자르고 파마란 걸 한대. 다음에 네 머리도 예쁘게 해 줄게.”

    “파마란 걸 하면 머리카락이 달라지나?”

    “응, 곱슬곱슬하게 되지.”

    “정말 웃기겠다. 머리가 꼬불꼬불해 진다니!”

    나는 웃음을 터뜨렸고, 곽현숙도 크게 웃었다. 우리는 걱정 같은 건 없는 사람처럼 크게 웃어댔다. 곽연숙은 앞으로 그러고 다니는 여자들이 많아질 것이라 했다.

    생각만 해도 우스워 우리는 마주보며 자꾸 웃음을 터뜨렸다.

    곽연숙이 일어나자고 했다. 아이들이 기다릴 것을 걱정 했다. 곽연숙이 부스럭거리더니 종이를 펼쳐 보였다. 오다마(입자가 큰 설탕이 발린 알사탕)였다.

    “너 애기 가지면 이거 먹고 싶다고 했잖아. 지난 번 읍내에 갔을 때 샀어. 자전차점 옆 사쿠라 상회 것이 맛나다고 해서 거기서 산거야.”

    눈물이 핑 돌았다. 태기가 있을 때 마다 입이 써서 단것이 당겼다. 남편이 읍에 갈 때면 부탁했지만 밤이 이슥해야 돌아오는 남편의 손은 번번이 비어있었다. 달거리가 끊어지고 석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패랭이보자기에 싼 떡을 내 놓았다.

    “주걱떡(주걱으로 대충 짓이겨 만든 떡)이야. 먼 길 가려면 시장할 텐데 이거라도 먹어.”

    보자기는 낡았지만 정표로 주는 것이라 했다. 곽연숙이 오래오래 간직하겠다며 패랭이꽃을 가만히 만졌다.

    “예쁘다. 너 닮은 꽃이야. 여름에 피는 꽃. 넌 바위처럼 단단하고 예뻐.”

    짧은 겨울해가 하늘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더 가고 싶었지만 곽연숙의 말대로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할머니랑 밥 먹고 놀고 있으라며 잘 일러두긴 했지만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먼 길 떠나는 곽연숙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한 발이라도 함께 걸어볼 요령이었다. 그러자 아이들 걱정이 꽈리처럼 부풀었다. 시어머니의 지청구가 늘어질 것을 생각하자 살짝 짜증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곽연숙과는 언제 함께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승에서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미국은 또 어디쯤 있는 것인가. 곽연숙이 거기까지 간다지 않는가. 곽연숙이 그만 돌아가라고 다시 말했을 때 그런 마음이 보여 진 것 같아 조금만, 조금만 하며 오히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옛날 놀던 그 시절은 다 지나가고, 곽연숙이 노래를 불렀다.

     내 가슴속에 붙는 불꽃은 제철이구나, 내가 받아 불렀다.

     잘 있거라, 잘 가거라

     나는 무사히

     좋은 바람 불거들랑 또 다시 만나….

     우리는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손목 잡고 놀던 정을 나누어보세. 하는 마지막 구절엔 함께 울음을 터뜨렸다. 곽연숙의 손을 잡고 지금의 시간을 이야기 나눌 때는 언제쯤일까. 언젠가는, 다시 인연이 닿기를 바랐다.

     “미안해, 이제 돌아가야겠어.”

     고갯길만 넘으면 읍이었다. 읍에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아이들과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하는 것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며 툴툴거리던 시어머니까지 아이들과 고생은 하지 않는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농사일이 줄어든 계절을 술로 보내는 시아버지까지 마음에 걸려오기 시작했다.

     “차부까지는 가야 하는데,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무슨 차부까지. 괜찮아. 네가 아니었으면 모든 것들이 힘들었을 거야. 고맙다.”

     곽연숙이 웃었다. 나는 곽연숙이 입은 저고리의 옷고름을 매만져 주었다. 가는 길 조심하라는 것이기도 했고, 강건 하라는 뜻이기도 했고, 간도에 무사히 닿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좋은 인연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손길이었다.

     “좋은 사람 만나면 네가 망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곽연숙이 웃었다. 웃으며 곽연숙이 돌아섰다. 곽연숙이 내게로부터 멀어졌다. 멀어지며 다시 노래를 불렀다. 옛날 놀던 그 시절은 다 지나가고, 나는 곽연숙의 노래를 들으며 돌아서 걸었다.

     이렇게 많은 소리가 났나 싶었다. 곽연숙과 함께 걸을 땐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를 따라 오는 것 같았다. 까치가 지나가며 울어댔고, 밤을 준비하는 뱁새들의 지저귐이 바쁘게 들렸다. 어딘가에서 비새가 울어 며칠 내에 비가 오겠단 생각을 했고, 겨울가뭄에 반가운 손님이겠다 싶었다. 비비비비, 입술을 오므려 비새소리 시늉을 낸다. 왠지 서럽다. 뭐가 서러운지도 모르게 서럽다. 반가운 손님 같았던 비새의 지저귐도 서럽다. 겨울비 내리는 들도,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도, 처마를 따라 나란히 생기는 동그란 흔적들, 같은 생각만하는 나처럼 같은 자리에 쉼 없이 떨어지던 물방울들도. 틈틈이 발자국소리가 들려 뒤돌아본다. 곽연숙이 돌아오는 건 아닐까 싶어 걸음을 멈추면 바람만 무수히 불었다. 바람 속에서 넌 참 단단해, 하던 곽연숙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어깨를 폈다. 바쁘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을 옮겼다.

     남천이 보이는 둔덕에 올랐다. 둔덕아래 지난여름에 일군 나의 땅이 보이고, 건너편에서 마을 사람들이 달집태우기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거름에 바람이 잔잔해 잘 타오를 것 같았다.

     나는 주저앉아 땅의 기운을 느꼈다. 차가웠다. 다음에 다가올 기운참을 가득담은 차가움이었다. 곧 경칩이지 않은가. 수많은 생명들을 안고 지키는 차가움이었다. 나는 땅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이듯 깊은 숨을 마셨고, 천천히 뱉어냈다.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땅의 기운이 닿기를 바랐다.

     남천 너머 둔덕에 밭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시어머니의 저항은 거셌다. 아녀자가 물 건너까지 가서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기제사가 많은 종부가 떡 찔 일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어떻게 하냐고 했다. 매사에 도움을 주던 시아버지까지 아녀자가 욕심이 그렇게 많으면 탈난다며 혀를 차며 나무랐다.

     마을에서는 떡을 찔 때엔 물 건너 온 사람이 시루 곁에 오면 안 된다고 했다. 시룻번이 터져 떡을 망친다는 것이었다. 건너 마을에 사는 동서는 물을 건너 왔다는 이유로 떡 한 번 찌지 않았다. 오히려 시루 주위에 금줄을 둘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고, 물 건너오는 것만 보여도 뒷간 지붕에서 묵은 겨릅대(삼을 삼고 남은 속대) 세 개를 빼서 아궁이에 가만히 넣어 불살랐다. 겨릅대를 넣을 때는 손도 얌전해야겠지만 말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딱 세 개만 뽑으라는 시어머니의 당부에도 뽑을 때마다 대, 여섯 개가 주르륵 흘러 나머지는 헛간에 버렸다. 겨릅대를 빼면 굼뱅이들이 툭툭 흘러 그 일이 정말 싫었지만 그렇게 해야 떡이 무탈하게 쪄진다고 했다.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며 힘을 준 사람은 곽연숙이었다. 아이들을 대처에 나가 공부시키려면 할 수 있는 데까지 재산을 늘리고 싶다는 나의 생각에 힘을 보태주었다. 보기에는 금방 밭이 될 것 같은 땅은 돌이 무수히 많은 돌밭이었다.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퍼 나를 때 곽현숙이 지게를 가지고 와 틈틈이 도왔다. 곽연숙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노란 알약을 손바닥에 소복이 담아보았던 때도 있었다. 가끔 그 일을 떠올렸고, 그때의 참담한 심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도 몰랐다.

     볏짚으로 이은 지붕은 오랫동안 새로 잇지를 않아 물이 새고, 정지의 지붕은 구멍이 뚫려 구렁이가 넘나들었다. 밥을 지으려고 정지에 들어섰을 때 뱀 두 마리가 엉켜 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해 쌀이 든 바가지를 던져 버렸다. 귀한 쌀을 못 쓰게 만들었다며 시어머니는 한동안 혀를 차며 궁시렁댔다. 나는 밤마다 벽에 그것들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여 잠을 설쳤고, 며느리에 대한 불평이 늘어가는 시어머니가 신경이 쓰였다. 한동안 밥을 먹지 못하고 얼굴은 회가 있는 사람처럼 핏기가 없었다. 근근이 가족들을 건사해서인지 몸은 자꾸 말라갔다. 시아버지가 딱해 보였는지 일부러 읍내까지 출타해서 지어온 것이었다. 안그래도 작은 것이 더 작아진다며 먹어보라고 했다. 노랗게 생긴 것이 매옥수수 알갱이 같았다. 하루에 한 알만 먹어야 한다며 당부했지만 나는 한 주먹을 쥐고는 다 먹어 버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겐 두 어린것들이 있었다. 저것들을 애미 없는 아이들로 만들 수는 없었다.

     남편을 내려놓기로 했다. 차라리 일을 잡기로 했다. 자신 있었다. 단 한 가지, 아이는 데려오지 말라 했다.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그건 정말이지 자신이 없었다. 논일, 밭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우리일 남의 일을 가리지 않았다. 빨리 이런 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어디선가 힘이 솟았다. 아이들과 함께 제대로 된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다행히 시아버지를 설득시켜 힘을 보태게 했다. 땅을 조금씩 사 들였고, 지금은 논마지기나 가지게 되었다.

     우미인가를 읊조렸다.

     천하세경 강동국에

     산도좋고 물도좋다

     아황여영 죽은곳에

     ...

     칼잘쓰는 황장사는

     선봉장이 되었도다

     곽연숙은 내게 영리하다고 했다. 글을 이렇게 빨리 익히는 이는 잘 없다며 칭찬했다. 달 밝은 밤이면 달빛을 등불삼아 곽연숙이 내게 글을 가르쳤는데 기왓장을 늘어놓고 붓에다 물을 묻혀 가, 갸, 거, 겨를 써주며 읽고 쓰라고 했다. ‘노란’이란 글을 알았을 때 노란개나리, 노란원추리, 노란나비, 노란달의 색을 알려주는 글이 있음이 신기했다. 그래서 나는 색깔부터 익혔다. 사물의 색을 이야기하거나 떠올리면 사물의 이름은 저절로 알아졌다. 곽연숙과 나는 사람이 가진 색을 이야기했다. 이를테면 시어머니는 숯검뎅이 색이었다. 다 탄줄 알았는데 계속 타는 게 네 어머니 잔소리잖아. 연숙의 말을 듣고 나는 배를 움켜쥐고 웃었다. 시아버지는 감색이었다. 길에서 만나면 영감인데 논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마지막까지 청년이고 싶은 사람 같다고 했다. 곽연숙은 자색이었다. 그건 내가 붙여준 것이었다. 연숙은 하얀 저고리에 붙인 자색 끝동같이 새뜻했다. 아이들은 노랑과 진달래색이었다. 곽연숙과 이웃사람들을 얘기할 때도 그 사람에게 붙인 색이 이름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 재색을 우물에서 만났어. 이런 식이었다. 그럴 때면 우리만 아는 기호인 것 같아 소리 내어 웃곤 했다.

     우미인가는 곽연숙이 마지막으로 알려준 긴 글이었다.

     “넌 선봉장이야.”

     나는 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했고, 곽연숙은 새 땅을 일구는 일도 선봉장이라며 힘을 내라고 했다. 곽연숙이 두루마리를 펼치며 우미인가를 읽으면 고운 노래처럼 들렸다.

     첫 작물로 곽연숙은 감자를 권했다. 감자는 손이 덜 가니 자주 물을 건너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수확한 것을 한 바구니 담아 곽연숙에게 선물로 주었다. 처음이라 그런지 씨알이 잘아 초라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건 온전히 네 거야, 축하해.

     안아주며 하던 연숙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연숙의 몸에서 옮겨지던 따뜻함이 명징했다. 가슴을 감싸 안았다. 나는 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다정했다. 내가 나에게 하는데도 연숙의 손길처럼 따뜻하다. 연숙의 따뜻함이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았다.

     나는 꼬챙이로 곽연숙을 썼다. 쑥부쟁이. 정월희 내 이름을 썼다. 패랭이. 김 순, 김 영, 감자, 논, 밭…. 내게 달린 것은 많았다. 그것들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고, 내 손이 닿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별, 별을 쓰자 곽연숙이 별이 되었다. 세 번째 태어날 내 아이의 이름을 나는 별이라고 지었다. 김 별. 내 땅에 심을 다음 작물은 도라지로 정했다. 하양, 파랑 도라지꽃이피면, 밤하늘의 별이 흐르는 강처럼 보인다는 간도를 떠올릴 것이다. 거기도 강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남천을 보며 해란강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 해란강이었어. 나는 흘러들었던 곽연숙의 말을 떠올렸다. 마당에 서면 꽃들로 환한 언덕이 별이 흐르는 강처럼 보일 것이다.

     덜컹거림에 몸을 맡기고, 캄캄함을 풍경처럼 보는 곽연숙이 떠올랐다. 지금은 어디쯤 갔을까. 곽연숙이 내게 멀어진 것처럼 나도 멀어져야 한다. 그녀가 담담히 간도로 가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가야한다. 나의 것들에게로.

     자리를 떨고 섰다. 머리를 풀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모아 쪽을 단단하게 꽂았다. 치맛자락을 다부지게 걷어 올려 허리띠를 매었다. 열기가 천천히 오르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정월의 큰달이 동쪽하늘을 밝혔다. 노란 등을 걸어 놓은 것처럼 동녘이 밝아왔다. 마을에서는 매구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지신밟기가 끝난 놀이패들이 강가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영이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순이는 춤을 추며 놀이패들 뒤를 따르고 있었다.

     둔덕을 천천히 내려갔다. 강가에 다다랐을 때 달집에 불이 붙었다. 순식간에 불덩이가 된 달집이 잔잔한 남천을 붉게 물들였다. 강물 속에서 불티들이 날아다녔다. 나를 본 아이들이 강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달려갈 때, 타오르는 달집너머 달처럼 둥근 배를 안고 웃는 곽연숙이 언뜻 보였다. 걸음을 멈추어 헛것이 보이나 싶어 눈을 비볐다. 다시 봐도 곽연숙이었다.

     아이들이 빨리 건너오라며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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