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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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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을 빛낸 경남의 거장들] (4) 전혁림

아흔을 넘기고도 예술혼 불태운 한국 색채추상의 대가

  • 기사입력 : 2024-02-26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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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5년 통영 출신 ‘색채의 마술사’
    특유의 청색 등 대범한 원색 사용

    목안·탈 등 한국 전통 소재 활용
    자신만의 정물화로 재탄생시켜

    일평생 경남에 뿌리내리고 작업
    도자·입체 오브제 등 장르 실험도


    1915년 통영에서 태어난 전혁림은 고향인 통영을 비롯해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한 작가다. 경남지역의 대표 예술가를 떠올릴 때 전혁림은 자연스레 떠오른다. 전혁림은 미술가가 되기 위한 전문적인 교습 또는 일본 및 서구로의 유학 등 전문적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았다. 청년 시절 그는 프랑스 파리를 동경하며 유학을 꿈꾸었으나, 형수의 반대로 파리행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당시 집안의 반대가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전혁림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전혁림은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 평면과 입체 등 이분법적인 구별 짓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든다. 전통적인 한국적 미감을 현대적 조형으로 자유롭게 풀어낸 작업은 그가 아카데미 중심의 관습적 태도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지 않을까.

    ‘세 개의 색면’, 1993년, 캔버스에 유채, 228×184㎝,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세 개의 색면’, 1993년, 캔버스에 유채, 228×184㎝,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전혁림의 첫 정식 미술 수업은 그가 스물한 살이었던 1936년 이과회(二科會)라는 일본 최초의 미술단체가 부산에서 진행했던 일주일 동안의 하기 강습회였다. 당시 유화로 10호짜리 누드화 두 점을 그렸다고 하며, 이것이 정식 미술인 밑에서 배운 유일한 수업이었다고 한다. 강사였던 도고 세이지는 유럽에서 직접 입체파, 미래파 등의 유파를 배운 작가였다. 그는 전혁림 그림의 색채 활용이 탁월했음을 알아보고 앞으로의 미래가 굉장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혁림은 한국적 색채 추상화의 대가로 불린다. 특유의 푸른 청색을 비롯한 대범한 원색의 사용은 그의 예술의 핵심적 매력이다.

    ‘이조자수에서’, 1999년, 캔버스에 유채, 30×39㎝,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이조자수에서’, 1999년, 캔버스에 유채, 30×39㎝,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천지’, 1985년, 캔버스에 유채, 53×41㎝,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천지’, 1985년, 캔버스에 유채, 53×41㎝,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관련된 일화로 경남 출신 작가 하인두가 부산에서 열린 한 단체전에서 본 전혁림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고 전해진다. “색채술도 심심치 않은 비단 무늬의 피부를 펼쳐 주었다.” 이 평을 통해 우리는 당대 작가들 사이에서도 전혁림은 비단 무늬의 빛깔과 같은 색채를 구사하는 작가로 인식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기물이 전혁림의 정물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는 목안(木雁, 전통 혼례에 쓰이던 나무로 만든 기러기. 기러기와 같이 백년해로하기로 맹세하는 의례에 쓰인 물건), 소반, 탈, 고배(高杯), 도자기 등이 소재이다. ‘오리가 있는 정물’ 역시 전통 혼례에 쓰이던 목안(木雁)이 소반 위 푸른 천 위에 올려져 있으며, 그 옆에는 삼국시대 유물인 고배(高杯)가 있다. 작가는 한국의 전통 소재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정물화로 재탄생시켰다.

    ‘오리가 있는 정물’, 1970년대, 캔버스에 유채, 39×52㎝,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오리가 있는 정물’, 1970년대, 캔버스에 유채, 39×52㎝,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1970년대가 되면 그림 속에 등장하던 민속적 기물들이 실제 오브제로 등장한다. ‘호랑이 탈’은 바가지 표면에 전혁림 특유의 대담한 필치로 호랑이 형상이 그려져 있다. 당시에 전혁림이 탈의 형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통영 오광대와 같이 경남지방 일대에 두루 분포되어 있던 민속가면극과 관련 있다. 바가지에 그린 탈의 이미지는 단순히 박공예의 장식성을 넘어, 이후 등장하는 전혁림의 입체적 회화작품을 예고한다. ‘호랑이 탈’ 작품은 전통적인 모티브와 추상적인 형상이 자유롭게 조합되며, 구복 등을 상징하는 소재들이 부적처럼 그려져 있다.

    ‘호랑이 탈’, 1970년대, 바가지 위에 유채, 직경 23㎝· 높이 10.5c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호랑이 탈’, 1970년대, 바가지 위에 유채, 직경 23㎝· 높이 10.5c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나아가 전혁림은 평면 회화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를 실험했다. 그는 1956년부터 1962년까지 지인의 소개로 부산의 대한도자기주식회사 연구실에서 일했다. 이 기간에 태토의 성질, 가마의 종류, 소성 온도, 안료의 발색 및 유약의 효과 등을 집중적으로 실험 및 연구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1950년대 중반부터 도자화를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원천이었다. 1969년에 서울 공보관에서 도예 개인전을 가졌다. 대한도자기회사에서 연구했던 도자기 작품 300여 점을 전시하였다. 1980년대는 도자에 관한 관심이 최고조였던 시기로, 집에 가마를 설치하고 직접 도자화를 제작하였다. 이 시기는 도자화뿐만 아니라 입체회화를 실험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입체형상을 직접 만들고 그 위에 물감으로 채색한 입체 회화 같은 오브제를 제작했다. 회화의 평면적 한계에서 벗어나, 입체 형상을 탐구했던 시기의 작품으로서 미술사적 가치가 높다.

    ‘직사각 과반’, 1983년, 도자기, 29×36×4㎝, 경남도 립미술관 소장
    ‘직사각 과반’, 1983년, 도자기, 29×36×4㎝, 경남도 립미술관 소장
    ‘무제’, 1980년대, 혼합재료, 13.2×11.3×64.2㎝,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무제’, 1980년대, 혼합재료, 13.2×11.3×64.2㎝,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이처럼 전혁림은 아흔이 넘는 생애 동안 끊임없이 창작 활동으로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는 회화에서 탈, 도자, 입체 오브제 등 다양한 장르적 실험을 끊임없이 이어 나갔다. 그의 대범한 조형성은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던 활달하고 호방한 한국적 미의식을 일깨운다.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변치 않고 서 있는 푸른 소나무처럼, 일평생 경남지역에서 작업하며 깊은 뿌리를 내렸다.

    (김주현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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