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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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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친족 찾았다

시민단체 친족 찾기 운동 ‘결실’
친가·외가 등 20여명 창원 방문

  • 기사입력 : 2019-08-21 2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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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보=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의 친족을 찾아 관심이 모이고 있다.(1월 10일 5면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항일운동 인정받나 )

    열린사회희망연대는 21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광장에서 김명시 장군 친족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김명시 장군의 외사촌과 친가 쪽 친척 등 20여명이 참여했다. 이 단체는 지난 1월초 마산 출신의 여성 항일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 달라는 포상 신청서를 국가보훈처에 제출한 바 있다.

    21일 오전 11시 열린사회희망연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광장에서 김명시 장군 친족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1일 오전 11시 열린사회희망연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문화광장에서 김명시 장군 친족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영만 고문은 “드디어 김명시 장군의 친족을 찾았다. 먼저 연락이 닿은 분은 김명시 장군의 외사촌 동생 김필두(81·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씨다”며 “김필두씨가 김명시 장군의 외사촌이라고 알려와 그동안 호적부 등 자료를 통해 확인 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또 “지난 7월 18일 친가와도 연락이 닿아 김필두씨를 비롯해 김재두(88, 외사촌 동생)씨, 김형도(91,사촌동생)씨 등 친인척들이 함께 자리했다”며 “이렇게 애타게 찾던 분들이 주변에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북받쳤다”고 부연했다. 김필두씨 등 가족들은 “김명시라는 이름은 저희들 가슴속에서만 담아왔다”며 “지금이라도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니 감사하고 후손으로서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김 장군의 생가는 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189로, 오동동 문화광장 무대 뒤편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슬하에서 오빠 김형선(1904~1950), 남동생 김형윤(1909~?), 여동생 김복수와 함께 자랐으며 1924년 3월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또 오빠(김형선)는 독신으로 자손이 없었고, 남동생(김형윤)은 2남1녀를 두고 있었으며, 이들은 1950년 6?25 직전 서울로 이전한 뒤 생사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김 장군은 19세 때인 1925년 오빠가 가입한 고려공산청년회에 들어가 유학생 자격으로 모스크바 공산대학에 입학해 1년 반 만에 중퇴하고 중국 상해로 파견돼 대만·필리핀·베트남 등지 독립운동가들로 ‘동방피압박민족 반제자동맹’을 조직했다. 1930년 5월 300여명의 조선인 무장대와 함께 러시아(당시 소련) 하얼빈 일본영사관을 공격해 큰 타격을 줬고, 1932년 귀국해 조선공산당 재건 운동을 하다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39년 신의주 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한 김 장군은 중국으로 건너가 화북지역에서 조선의용군 부대 지휘관을 맡아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글·사진=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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