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내 영혼의 집이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춤춘다. 음악이 들려오는 순간, 마음이 한 걸음 앞서 뛰어가고 몸이 저절로 그 흔들리는 마음 그림자를 따라 출렁인다. 벌써 20년이 넘게 이 삶을 꾸려왔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보이 장빈이 비보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비보이 장빈이 비보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비보이 장빈이 비보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비보이 장빈이 비보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더 클래시’ 댄스 아카데미 단장 맡아
밀양아리랑 접목 과감한 기획 눈길
후배들 위한 나침반 역할 해주고파
◇지역 비보이들에겐 매니지먼트가 필요하다= 88년생 35세, 비보이 그룹 ‘더 클래시(The classy) 댄스 아카데미’ 단장 장빈. 비록 주 무대가 밀양이란 지역이지만 내가 밟고 선 땅, 내가 사는 곳에서 나름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늘 웃으며 말하지만, 비보이로서의 철학은 뚜렷하다. 비보이의 연령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꽤 많은 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은 춤추는 현역이고 싶다. 어떤 면에서는 춤추는 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팀을 이끄는 단장으로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결코 쉽지 않은 길 위에서 나침반의 역할을 해주는 선배이고 싶다.
글로컬리즘(glocalism)시대엔 지역과 중앙, 지역과 세계의 구별이 없다. 지역에서 곧바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다양성이 중시되지만, 나만의, 우리만의 개성과 변별성이 있다면 곧바로 지구촌이 주목하는 한 개인, 한 단체가 될 수 있다. ‘더 클래시’는 그런 성장을 목표로 한다.
지역에도 목마른 사람은 있다. 자신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기회와 무대는 부족하다.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처음 시작 무렵엔 TV스타를 따라하거나 그저 춤이 좋아 친구들과 몸이 부서지도록 연습하고 즐기곤 했다. 하지만 이젠 좀 더 체계적이고 동작 하나라도 세련미를 더하는 기법이 필요하다. 그들을 위한 시스템과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춤에 미쳐 객지를 떠돌다 귀향하는 후배들이 있다. 운과 형편이 따라준다면 제법 호명되는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많다. 아니, 한때 명성을 얻었다가도 다시 까맣게 잊히기도 한다. 젊음은 늘 방황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돌다 돌아온 이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포근히 감싸주는 둥지가 되어주고 싶다. 그것이 자신의 사명이며 팀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한다.
2016 제1회 밀양아리랑 비보이 페스티벌 시상식 후 기념촬영 모습.어린시절 친구들과 놀이로 시작한 춤
지역축제 힙합 공연 본 뒤 열정 더해
각종 대회 출전·청년예술인상 수상도
◇자퇴, 비보이를 향한 좌표 찍기=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인다. 그만큼 간단치 않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운명이란 말을 하기엔 아직 젊지만, 비보이로 살고 선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는 청춘에겐 그리 과한 말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서태지, 유승준 같은 아이돌의 몸짓은 그들을 들썩이게 했다.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놀이로 시작한 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춤은 헤어나올 수 없는 늪과 같았다. 예사롭지 않은 눈썰미에 조금씩 몸이 반응해 가던 시절, 일본 비보이들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는 등 재미와 열정이 깊어갔다. 아랑제에서 만난 힙합 브레이크 댄서들의 공연은 인생의 좌표를 찍게 한 요인이 되었다. 갈증에 목마른 어린 춤꾼은 밀양대학교 강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춤추는 대학생 동아리를 만나 밤늦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렇게 중학생을 거쳐 고등학생이 되었다. 춤을 향한 열정은 학업과 병행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가출도 역경이 아니었다. 고교 2학년 때쯤엔 재즈, 소울 펑크 등의 흑인음악이 귀에 꽂혔다. 마이클 잭슨, 제임스 브라운 같은 뮤지션들의 음악은 귀를 트게 했고, 몸이 저절로 반응하게 되었다. 미국 본토의 흑인 음악과 춤은 팽팽히 당겨진 시위처럼 앞을 향해 튀어 나가게 했다.
“비보이를 향한 좌표를 찍기 위해 학업마저 팽개칠 정도로 절실했는가?”
“그렇습니다. 춤은 저를 위한 구원이었습니다. 질풍노도의 시절을 함께 할 동반자는 춤밖에 없다는 생각이었기에 학교를 등지고 나오는 것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당시 국내 최고의 비보이팀에 합격도 했으니까요.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아버지와 선생님의 격려가 있었기에 자퇴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후, 본격적으로 비보이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2002년 세계대회 우승팀 오디션 참가를 시작으로 2007년엔 프랑스 챌스 프로 배틀에 국가대표로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서 1개월간 체류하면서 유럽 비보이 문화를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도 갖게 되었다. 돌아와 5년 동안 ‘최소리 뮤지컬’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아리랑파티 등에 출연했다. 2017년엔 경산아리랑 창작경연대회 대상을 받았고, 올해 2023년엔 한국 민예총 청년예술인상을 수상했다.
2015 밀양예총 예술제 무용협회작품 ‘격’ 무대.
2015 밀양 어린이날 행사 후 기념촬영 모습./장빈 제공/◇새로운 콘텐츠, 밀양아리랑과의 만남= 밀양은 밀양아리랑의 고장이다.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부분의 아리랑이 한의 정조로 유장히 흐르는데 비해 밀양아리랑은 빠르고 흥겨운 가락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비보이 춤과 잘 어울린다.
“날 좀 보소~”로 이어지는 노래는 “내 춤을 봐주소”라는 느낌으로 변주된다. 국악과 비보이의 콜라보는 ‘더 클래시’팀의 중요한 변별성이 되었다. 그들은 무대 위의 단순한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고 타악과 만날 때엔 직접 타악을 배우기도 하고, 판소리와 만날 때엔 판소리를 배워가며 춤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이는 춤꾼으로서 뮤지컬을 하면서 느낀 것이다. 이렇듯 기존 국악을 토대로 하여 과감한 기획과 무대 연출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공유하는 새로운 복합장르로 나아가고 싶어 한다.
‘더 클래시’ 댄스 아카데미 단장 장빈씨.필자가 장빈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경남문인협회가 주최한 ‘제1회 청년문학상’ 시상식 때였다. 당시 그는 팀을 이끌고 그 시상식 무대를 화려하게 수놓아 주었다. 해설을 겸한 역동적인 퍼포먼스는 팀을 이끄는 리더의 자질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 사람의 비보이를 넘어 이 문화를 어떻게 미래로 밀고 갈 것인지를 체득한 몸짓이었다.
이제 비보잉(B-boying)은 춤으로서만 존재하기보다 하나의 당당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4년 프랑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이런 변화는 비보이들에겐 커다란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청년예술인 장빈씨 역시 이와 발맞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설계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부단한 관심으로 지켜보고 싶다.
이달균 시인이달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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