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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성재정 관장

“한평생 수집한 유물, 함께 보고 느끼며 가치 공유하고파”

  • 기사입력 : 2016-04-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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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성재정(73) 관장이 지난 4일부터 29일까지 NH농협은행 경남영업부 객장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전시하는 ‘전통 목가구 특별기획전’을 무료로 개최해 창원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성 관장은 이번 특별기획전에 일반인이 감상하기 어려운 표암 강세황 선생 친필 8폭 행서 병풍을 비롯, 추사 김정희 선생의 해남옥돌 반야심경 양각 작품, 고관대작들이 사용한 평상, 여인들의 안방평상, 안방가구 등 진귀한 민속유물 60여 점을 공개했다.

    성 관장은 이와 함께 객장의 손님들에게 전시된 유물의 특징과 사용방법, 유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일일이 설명하는 정성을 보였다.

    성 관장은 민속유물 수집에 한평생을 바쳐 왔다. 사재를 털어 수집한 민속유물을 일반에 공개하기 위해 밀양 초동면에 ‘미리벌민속박물관’을 만들었다. 성 관장을 만나 민속유물을 수집하게 된 계기와 보람, 고충,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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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 미리벌민속박물관 성재정 관장이 전시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어머니, 책 궤짝 팔면 안됩니다”

    성재정 관장에게 민속유물에 애착을 갖게 된 배경을 묻자 다음과 같은 일화를 설명하며 답을 대신했다.

    당시 국민학교 3학년이던 어느 날, 어머니가 성 관장을 불러놓고 “골동품 수집상이 증조할아버지 책 궤짝을 팔라 하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며 의견을 물었다.

    아버지가 7살 때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어머니는 집안의 대소사를 어린 성 관장과 모두 상의해서 결정했다.

    가세가 어려워 고민하던 어머니는 내심 책 궤짝을 팔아 돈을 조금 만들어 가계에 보태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때 성 관장은 어머니께 “증조할아버지의 유품이자 중요한 고문서가 수두룩한 궤짝을 돈으로 바꾸면 안됩니다”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어머니는 10살 꼬마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 그 궤짝을 팔지 않았다.

    성 관장이 살던 진양군 대곡면 와룡리 봉평마을은 창녕성씨 집성촌인데, 조상들이 대대로 사용해온 책 궤짝을 돈과 바꾸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성 관장은 “만약 책 궤짝을 팔면 골동품 수집상이 궤짝을 들고 마을 골목을 빠져나가야 하는데, 그 모습을 친지들이 보면 우리집을 어떻게 생각했겠느냐”며 궤짝 지킨 일은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밝힌다.

    한평생 민속유물 구입과 보전에 매진한 성 관장의 집념은 꼬마 시절 증조부의 책 궤짝 지킨 일에서부터 표출된 일생의 사명처럼 느껴진다.



    ◆민속유물 수집에 전국 누벼

    30세가 된 성 관장은 삼성출판사 영업부에 입사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이미 민속유물에 심취해 있던 성 관장은 월급을 받으면 그 즉시 민속품 구입에 나섰다. 업무차 전국을 다니기도 했지만 민속품 수집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당시 5급 공무원 월급이 2만4000원인 데 반해 성 관장은 15만~20만원을 받았다. 그 월급으로 고향의 논 한 마지기가 6만원 할 때 반닫이 15만~30만원짜리를 구입하기도 했다. 신용이 좋아 돈이 모라자면 외상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 창립기념일이던 어느 해 3월. 당시 김종규 삼성출판사 사장이 전 직원들 앞에서 “앞으로 ‘삼성출판박물관’을 만들겠다”고 밝히자 성 관장은 번개 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자신은 민속유물을 모으기만 했지 이것으로 무얼 할 것이라는 구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 사장의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럼 나는 민속박물관을 건립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관장의 큰집이 만석꾼이라 그 집안 농기구만 모아도 웬만한 박물관을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으니, 민속박물관 만들기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후 성 관장은 유럽, 일본, 중국을 다니면서 유물 보관법, 박물관 시설·운영방법 등을 배우며 민속박물관 만들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삼성출판사 창원지사장이던 1987년 회사를 그만둘 때 자신의 아파트 대부분 공간에 유물을 쌓아둘 정도로 모았고, 아파트 지하공간을 임대해 쌓아두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유물을 모은 성 관장은 “땅을 샀으면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지켰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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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벌민속박물관 앞에 선 성재정 관장.


    ◆밀양에 청춘의 결실을 공개하다

    1998년 7월. 성 관장은 밀양시 초동면 초동중앙로 439번길에 미리벌민속박물관을 건립해 수십년간 모아온 유물을 공개했다.

    개관 당시 가구·목물 3000여 점, 고서고문서 2000여 점, 조선시대 비단·조각보·골무·복식 5000여 점, 옹기 100여 점, 농기구 200여 점을 소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유물을 수집했다.

    민속박물관을 개관하면서 평상시 꿈꿔오던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박물관,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줄 수 있는 박물관’을 기치로 세웠다. 1970년 초부터 유물을 모았고, 1998년 개관했으니 얼추 30년 가까이 민속박물관을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은 현재 밀양, 창원, 김해 등지에서 연간 2만명 정도 찾아오는 밀양의 관광명승지가 됐다. 지역민은 물론 많은 학생들이 단체로 찾아 우리 유물의 종류와 특징을 체험하는 곳이 됐다.

    성 관장과 학예사 3명은 찾아오는 관람객 응대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부인 김순옥(65)씨도 손님맞이에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개인이 박물관·미술관을 운영한다는 것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임무를 대신해 주는 일. 그래서 정부와 자치단체는 박물관·미술관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성 관장은 박물관 운영에 애로가 많다고 한다. 시설이 노후해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전기료·전화료·인건비 등 운영비를 자부담으로 충당하는 것도 큰 고충사항이다.

    성 관장은 “개관에 힘든 점은 많지만 1차적인 사명감과 뜻을 이뤘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개했다.



    ◆“앞으로 5종류의 박물관 더 만들겠다”

    성 관장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유물만으로 앞으로 5종류의 박물관을 더 만들어 남기겠다고 했다.

    민속박물관을 1개 더 만들어 2개로 늘리고, 서지박물관(고문서 위주), 퀼트 박물관(조선시대 비단종류 조각보·골무·복식), 농기구박물관, 옹기박물관을 각각 1개씩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전국 어느 곳이든 박물관 건립을 구상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신의 유물이 필요해 기증을 제안한다면 그 지방 특색·박물관 특색에 맞는 유물을 기증할 수 있다고 밝힌다.

    성 관장은 “국민이 민속유물 보전에 기여하는 방법은 박물관에 기증하거나 박물관을 만드는 일”이라며 “많은 개인 소장가들이 박물관·미술관을 건립해 유물 보존에 앞장서는 만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도 도와줄 부분은 적극 지원해야 숨어 있는 많은 유물이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윤제 기자 ch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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