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8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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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작 ‘만리향’

상처주고 위로받는 끈끈한 핏줄의 정
가족의 의미 되새기며 재미·감동 선사
동네 중국집 가족 오랜 상처 치유 과정 담아

  • 기사입력 : 2019-07-15 08: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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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작 ‘만리향’ 공연 모습./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
    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작 ‘만리향’ 공연 모습./통영연극예술축제위원회/

    돌이켜보면 식구 가운데 누가 졸업을 할 때나 생일 또는 좋은 일이 있을 때 외식의 최우선 장소는 ‘중국집’이었다. 통영연극예술축제 개막작 ‘만리향(극발전소 301)’은 추억의 단편들이 켜켜이 쌓인 ‘중국집’을 배경으로 가족의 의미를 환기하는 작품이다.

    지난 12일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만리향’은 러닝타임 110분 동안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실종’, ‘배다른 형제’, ‘죽음’의 소재를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다뤘다. 가족이기에 굳이 말하지 않고 묵혀둔 오랜 상처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이해하는 과정을 억지스러움 없이 연출해 냈다.

    작품은 중국집 ‘만리향’을 운영하는 네 남매와 어머니의 이야기다. 동네의 작은 중국집이지만 한때 TV 맛집으로 소개될 만큼 잘 나가던 만리향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지만 요리엔 큰 재능이 없는 큰아들 내외와 가출한 사고뭉치 둘째 아들, 유도를 하다 배달을 돕는 셋째 딸, 그리고 실종된 막내딸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극은 지적장애 2급인 막내를 엄마가 시장에서 봤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실종이라는 표현조차 듣기 버거운 엄마가 5년 넘게 ‘장기외출’을 떠난 막내딸을 찾으러 나서자, 가족들은 엄마를 붙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굿판을 꾸민다. 자식들은 예기치 못한 이유로 가짜굿을 하게 되는데, 이 굿판의 형식을 빌려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속내를 표현한다.

    연극은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얼마나 가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가장 가깝기에 부지불식간 생채기를 내는 가족들이지만 결국은 ‘피는 물보다 진한’ 끈끈한 연대를 맺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날 공연은 대극장이지만 사석(무대가 보이지 않아 불필요한 객석)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리에 관객이 들어찼다. 지난 2014년 제34회 서울연극제에서 4개 부문(대상, 연출상, 신인연기상, 희곡상)을 수상하며 이미 ‘검증’된 작품답게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다. 관객들은 내내 울고 웃으며 극의 흐름대로 감정을 표현했다.

    특히 뻔하지 않은 ‘굿’ 표현이 돋보였다. 일일 무당을 맡은 ‘유숙’은 진지하게 굿을 시작하지만 이내 랩을 하고 무대 밑으로 내려와 관객 앞에서 춤을 추며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방심하던 관객들에게 연극은 감동이라는 직구를 던졌다. 막냇동생과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묻어둔 응어리를 꺼내고, 서로에게 눈물과 위로를 건넨다.

    탄탄한 시나리오에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 리드미컬하게 말맛을 살린 대본, 감정표현 장치가 뛰어난 연출력까지 더해진 웰메이드 연극이었다. 특히 대학로에서 주목받는 젊은 극작가가 동시대 가족의 의미에 대해 천착한 작품으로, 올해 축제의 메인 주제인 ‘삶 내음’을 잘 표현해, 개막작으로 손색없었다.

    잘 보여주었고, 잘 구성된 연극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도내 한 연극인은 “흥미 있는 극 전개가 돋보였지만 몇몇 장면의 실수와 원활하지 않은 마이크 연결로 대사 전달력이 떨어져 완성도가 다소 아쉬웠다”며 “통영연극예술축제를 통해 대학로 극단의 연극을 지역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말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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