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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672) 제24화 마법의 돌 172

‘무슨 일이지?’

  • 기사입력 : 2019-09-20 07:5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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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산에서는 동네가 잘 내려다보였다. 거리 곳곳에 인공기가 꽂혀 있고 군인트럭이 이동하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이재영은 조심스럽게 거리까지 내려가 동정을 살폈다.

    거리는 어수선했다. 사람들이 인민군에게 끌려가는 것이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인민군에게 끌려가는 것을 본 이재영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인민군에게 끌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었다. 이재영은 서둘러 동굴로 돌아왔다. 6월이 지나고 7월이 되었다. 말자는 전단지나 신문까지 가지고 왔다. 전단지나 신문은 노동당이나 정치보위부에서 발행한 것이었다. 그들은 인민군이 대대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망하는 것인가?’

    이재영은 절망감이 엄습해 왔다.

    전쟁은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밀고 가고 있었다.

    말자는 완장도 갖고 있었다. 완장에 〈군가〉라는 붉은 글자가 씌어 있었다. 인민군 군인 가족이라는 뜻인 것 같았다. 이재영이 처음 보는 완장이었다.

    이재영은 동굴에서 자주 나왔다. 서울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궁금했고 동굴에서 하루 종일 보내는 것이 답답했다. 대부분 야산을 돌아다녔으나 거리로 내려가기도 했다. 인민군에 잡혀갈까봐 불안하기도 했으나 말자에게 완장을 빌렸다. 여차하면 인민군에게 완장을 보여주고 장군의 친척인 체하려고 했다. 조심스럽게 동네까지 내려가고 나중에는 을지로까지 걸어갔다. 옷은 누더기처럼 입었다.

    한 번은 을지로2가까지 내려갔다. 로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재영은 군중들에 섞여 연단을 바라보았다.

    “인민 여러분! 일제 때 충청도 갑부로 불리는 악덕지주 김삼룡입니다. 이 자는 많은 땅을 소유하여 농민들을 착취하고 배때기를 채웠습니다. 농민들은 굶주려 죽는데도 자신은 기름진 음식을 먹고 첩을 여러 명 두고 호의호식했습니다. 농민들을 착취한 이 자를 인민재판에 회부합니다! 이런 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민청〉이라는 붉은 완장을 두른 사내가 기염을 토했다. 연단에는 붉은 완장을 두른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 빽빽하게 둘러서 있었다. 충청도 갑부라는 김삼룡은 밧줄에 꽁꽁 묶여 꿇어앉아 있었다. 그는 50대로 보였다.

    “죽여야 합니다!”

    “인민의 적을 때려죽입시다!”

    군중들이 주먹을 흔들고 함성을 질렀다. 연단에 있는 김삼룡은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완장을 찬 사내들은 눈빛이 흉흉했다.

    ‘이게 인민재판인가?’

    이재영은 소름이 끼쳤다.

    “죽여라!”

    군중들이 주먹을 흔들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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