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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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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 입찰 해외업체 들어온다니… 공들인 기술개발 물거품”

국내 철도부품·현대로템 협력사 철도시장 생태계 붕괴 우려
최저가 입찰로 진입문턱 낮아지자 스페인 등 컨소시엄 구성해 참여
중국·유럽 등은 자국부품 규정 둬

  • 기사입력 : 2022-10-20 21: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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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력분산식 고속열차의 입찰 기준을 낮춘다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입니다.” “기술 개발에만 몰두했는데 느닷없이 해외업체가 들어온다니 말문이 막힙니다.” “최저가 입찰은 철도 안전과 함께 국내 철도산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내 철도차량 생산업체인 현대로템 협력업체들의 하소연이다. 이는 한국철도공사가 발주할 예정인 고속철도 차량 입찰 방식에 ‘납품실적 조건’이 삭제되면서 해외업체의 참여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철도차량 부품사뿐 아니라 현대로템의 협력업체들은 철도산업 생태계 붕괴를 우려하며 불안과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경남신문DB/
    동력 분산식 고속차량./경남신문DB/

    20일 철도업계에 따르면 코레일은 평택-오송선 등 KTX 노선에 동력분산식 고속차량 ‘EMU-320’ 136량의 입찰을 내달 공고할 예정이다.

    총 76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사업으로, 국내 중견 철도차량 업체인 우진산전이 해외업체인 스페인 탈고·일본 도시바와 컨소시엄을 이뤄 이번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 철도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해외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주목하는 이유는 동력집중식 차량 위주였던 KTX와 SRT가 향후 고가의 동력분산식 차량으로 대체하기 위해 발주를 예정하고 있는 데다 낮아진 입찰 진입 문턱도 한몫하고 있다. 코레일은 지난해부터 입찰자격에서 ‘시속 300㎞ 이상의 고속차량 제작 및 공급사업 경험’이란 항목을 빼 제한 조건을 없앴다. 기술력에서 앞선 국내 철도 부품사와 현대로템 협력업체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것은 가격 경쟁력이다. 국내 고속철도가 ‘최저가 입찰제’를 시행하고 있어, 해외 업체가 비교적 저렴한 외국산 부품을 사용하면 국내 철도업계는 경쟁에서 밀릴 확률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철도 부품사와 협력업체들은 스페인 탈고 컨소시엄이 수주하게 되면 자신들의 부품을 우선 적용하게 되고, 현재까지 개발을 이룬 우리나라 부품의 인터페이스도 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역의 철도 부품사 한 관계자는 “철도차량 특성상 중요한 시스템들이 결정되면, 부품 역시 동일한 성능을 내기 위한 인터페이스 변경이 수반되는데, 스페인 탈고 컨소시엄은 자신들의 부품을 우선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그렇게 되면 현재 개발 검증이 완료된 부품과 인터페이스 부분이 달라지면서 적용이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14일 철도 부품산업 해외업체 반대 시위 모습./연합뉴스/
    지난 14일 철도 부품산업 해외업체 반대 시위 모습./연합뉴스/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개발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동력분산식은 동력장치가 차량 아래마다 분사 배치돼 동력집중식에 비해 가·감속 성능과 수송력, 유지보수, 안전성 등의 면에서 우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로템과 협력업체들은 지난 2007년부터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개발을 시작해 상용화하고, 현재 성능 시험 중이다. 안정화단계까지 투입된 민관 투자액은 총 2조7000억원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이번 입찰 참여 예정인 스페인 탈고가 동력집중식 고속열차 제작업체로, 동력분산식 고속열차 제작·납품 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입찰 기준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로템 협력업체 한 관계자는 “유럽은 이미 독자 기술 장벽으로 역외권 입찰자들의 실질적인 시장 진입을 막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장벽을 제거하고 적격심사기준이라는 허약한 잣대 하나로 시장을 개방하는 것은 아닌지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철도차량 시장 점유율 1위인 중국은 입찰 참여시 자국법인과의 공동응찰을 의무한 것을 비롯해 완성차는 70% 이상, 전장품은 40% 이상 자국 부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으며, 유럽도 자체 규정인 TSI라는 규제 장벽으로 비유럽 국가의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기술과 제작능력을 모두 고려한 ‘종합심사낙찰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해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내와 달리 지하철 교체사업 추진 시 기술과 가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현대로템 협력업체 대표자들은 “고속철도시장을 개방하게 되면, 오랜시간 개발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을 차치하더라도 국내 철도차량과 부품산업은 물론, 철도 후진국으로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입찰의 변별력만이라도 제대로 갖춰 공정한 룰로 우리 기술이 외면당하지 않도록 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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