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8일 (수)
전체메뉴

[기획] 경남도립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지상전시회

한국 근현대미술 80년 응축된 영원한 문화유산
1930~2010년대 한국미술의 거장 40여명 작품 중
김종영·유영국·오지호·변관식 작품 등 9점 소개

  • 기사입력 : 2022-12-13 21:20:53
  •   
  • 2020년 10월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1942~2020)이 수집한 2만300여점의 작품들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일부 지역의 공립미술관에 기증되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더 많은 이들이 나누길 바랐던 고인의 뜻에 따른 유족의 결정이었다.

    기증된 컬렉션은 철기시대 청동방울부터 현대 설치미술 작품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방대한 문화유산의 집약이다. 양적인 면에서 전례가 없고, 질적인 면에서도 개별 작품 하나하나가 예술성과 희소성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생전에 예술애호가로 알려졌던 그는 예리한 안목, 탁월한 추진력과 집요함으로 평생에 걸쳐 작품들을 수집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은 다양한 시간성과 지역성을 교차하는 국·내외 미술을 도민과 함께 향유하기 위해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영원한 유산’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건희 컬렉션 지역 순회전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193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80여 년의 한국 근·현대미술을 아우르며, 한국미술사를 대변할 수 있는 거장 40여 명의 한국화, 회화, 조각 등 60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 중 9점을 소개한다.

    김종영 <작품 70-1>, 1970, 나무, 17.5×46×37㎝./국립현대미술관/
    김종영 <작품 70-1>, 1970, 나무, 17.5×46×37㎝./국립현대미술관/

    ◇김종영 〈작품 70-1〉, 1970년= 우성(又誠) 김종영은 창원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시서화에 능했던 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고 특히 서예에 출중했다. 일본 도쿄미술학교 조각과에서 본격적으로 조각을 배웠는데, 당시 수업 받던 인체의 재현보다는 입체와 구조에 대한 논리적 추구에서 조각의 미에 관심을 가졌다. 추상을 통해 공간과 물질에 대한 순수한 탐구로 나아간 김종영은 구도자와 같은 자세로 동양과 서양 미술을 두루 살펴 보편성에 기반한 특수성을 획득하기 위해 부단한 조각 실험을 거친다. 궁극적으로 작업을 통해 ‘유희삼매(遊戱三昧)’ 즉, ‘절대 구속이 없는 자유’를 이루고자 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을 토양 삼아 서구적인 방식으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한 김종영은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김종영은 이 시기에 자연의 재료 본연이 가진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되, 유기적인 형태를 지닌 기하학적 추상 조각 작업에 몰입했다. 〈작품 70-1〉은 나무를 다듬어 곡선의 형태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느낌을 자아낸다. 채움과 비움이라는 서예의 조형성을 조각의 조형언어인 입체성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유영국 <작품>, 1973, 캔버스에 유채, 133×133㎝./대구미술관/
    유영국 <작품>, 1973, 캔버스에 유채, 133×133㎝./대구미술관/

    ◇유영국 〈작품〉, 1973년=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영국은 일본의 가장 전위적인 미술학교 중 하나였던 문화학원에서 유학하며 당시 자유미술가협회, 독립미술협회 등 다양한 전위 단체 활동을 통해 추상미술에 천착했다. 귀국하여 어업과 양조업을 하면서도 틈틈이 작품을 제작하며 생업과 작품 활동을 지속하다 해방 이후 화단활동을 본격화한다. 특히 신사실파, 모던아트협회, 신상회, 현대작가초대전 등 한국 미술단체를 이끌었다. 1964년 첫 개인전을 기점으로 유영국은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개인 작업에 몰입한다. 이때부터 유영국은 굉장한 집중력과 집요한 실험정신으로 예술세계를 확장시킨다. 〈작품〉은 바로 그 전환기의 작품이다. 정방형의 화면에 삼원색을 기반으로 강렬한 색채들의 미묘한 변주를 통해 형태감과 깊이감을 형성하고 있는 유영국 추상 미학의 절정을 보여준다.

    오지호 <항구풍경>, 1970, 캔버스에 유채, 65.5×90.5㎝./전남도립미술관/
    오지호 <항구풍경>, 1970, 캔버스에 유채, 65.5×90.5㎝./전남도립미술관/

    ◇오지호 〈항구풍경〉, 1970년= 오지호는 일보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지만 서구 인상주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한국적 인상주의’ 선구자로 불린다. 밝은 색채로 우리나라 특유의 맑은 대기와 자연 풍경의 청명함을 극대화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후기에 이르면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산·들판·설경 등 풍경과 화초· 과일 등 사물을 그렸다.

    항구는 오지호의 작품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한다. 그는 항구에서 완곡한 곡선형의 배와 그런 배들이 떠날 수 있도록 끝없이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영감을 얻었다. 이 작품은 대형 선박들이 정박해있는 호남의 큰 항구의 포구를 그린 것이다. 세밀한 묘사보다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물결과 선체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해 빠른 붓질로 표현했다.

    박대성 <향원정설경>, 1994, 광목에 수묵채색, 105×204.8㎝./전남도립미술관/
    박대성 <향원정설경>, 1994, 광목에 수묵채색, 105×204.8㎝./전남도립미술관/

    ◇박대성 〈향원정설경〉, 1994년= 소산(小山) 박대성은 한국화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수묵을 현대화한다는 점에서, 겸재(謙齋) 정선에서 소정(小亭) 변관식과 청전(靑田) 이상범으로 이어지는 실경산수의 계보를 잇는 한국화의 거장으로 회자된다.

    그는 주로 수묵을 점차 외면했던 한국 화단의 흐름 속에서 끝까지 먹의 정신을 고수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향원정설경’은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정의 겨울 풍경을 담고 있다. 전면에는 나무들을 강조하고 후면에 향원정을 배치하여 압축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서예를 통해 다진 필력과 먹의 농담 조절을 통해 화려한 색을 사용하지 않고도 눈이 내려앉은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변관식 <금강산 구룡폭>, 196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120.5×91㎝./국립현대미술관/
    변관식 <금강산 구룡폭>, 1960년대, 종이에 수묵채색, 120.5×91㎝./국립현대미술관/

    ◇변관식 〈금강산 구룡폭(金剛山 九龍瀑)〉, 1960년대= 황해도 옹진 출신 소정(小亭) 변관식은 실경 사생과 전통적인 기법을 발전시킨 ‘소정 양식’을 완성하여 현대적 산수화를 선구한 한국 화단의 대표적 산수화가다. 자신만의 과감한 필법과 복수 시점을 자유롭게 구사했는데, 특히 적묵법과 파선법을 사용해 힘 있는 화면을 완성했다.

    ‘금강산 구룡폭’은 변관식이 해방 전 수차례 금강산을 오가며 봤던 구룡폭포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그는 일제 말기 은둔하면서 금강산의 풍경을 세세하게 스케치했는데, 해방 후 분단으로 인해 더 이상 금강산에 갈 수 없게 되자, 금강산을 더욱 활발히 화폭에 담았다. 대담한 수직 구도, 사생을 바탕으로 산세, 폭포, 바위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하단부의 작은 인물들의 시선을 위로 두어 웅장하고 역동적인 금강산의 경이로움을 전달한다.

    권진규 <순아>, 1968, 테라코타, 46×33×22㎝./국립현대미술관/
    권진규 <순아>, 1968, 테라코타, 46×33×22㎝./국립현대미술관/

    ◇권진규 〈순아〉 1968년= 권진규는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 무사시노대학에서 조각을 공부하고 재야전인 이과전에서 특대를 수상하며 역량을 인정받았던 그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1959년 귀국했다.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를 짓고 작업에 매진했지만, 생전에 국내에서 세간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다가 정신적인 고통과 육신의 병, 현실의 공허함 등에 시달리다 51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실적인 여성흉상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리얼리즘만으로는 그의 예술세계를 읽을 수 없다. 그에게 사실은 시각적인 어떠한 것이 아니라 추상의 상대적 개념이다. 자신만의 강인하고 응축적인 형태로 눈에 보이는 사실을 넘어선 본질을 추구하며 영원성을 향해 나아갔다. 장인들이 남긴 고대 유산을 참조하여 썩지 않는 테라코타와 건칠로 작품을 제작했던 것에서도 그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특정한 사조나 유행에 구애받지 않고,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구상과 추상 등 모든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정신성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이인성 <석고상이 있는 정물>, 1934, 종이에 수채, 55.2×74.6㎝./대구미술관/
    이인성 <석고상이 있는 정물>, 1934, 종이에 수채, 55.2×74.6㎝./대구미술관/

    ◇이인성 〈석고상이 있는 정물〉, 1934년= 이인성은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도 17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여 천부적인 재능으로 주목받았다. 후원자의 도움으로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조선미전에 매년 유화와 수채화를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거듭하고, 일본수채화회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해 일본에서 ‘조선의 천재’로 소개될 정도였다. 그는 다양한 서구 화풍을 흡수하면서도 독특한 조형, 상징적 소재, 그리고 풍부하고 강렬한 색채로 한국적 풍토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 작품은 그의 예술세계가 절정을 이루었던 1930년대 제작되었다. 서구 미술의 한 장르인 정물화를 시도하며 동양화 붓을 사용하여 특유의 빠른 필치로 수채 작품을 완성했다. 밝은 노란색의 배경과 화면의 중앙에 펼쳐진 붉은색 천이 대비를 이루고, 중앙에는 여인 상반신의 나체 석고상, 그 아래에 옥수수와 사과, 포도, 마늘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들이 배치되어 있다. 강조와 생략을 통한 다소 거친 대상의 묘사가 돋보이며, 강렬한 원색이지만 수채 물감 특유의 맑은 느낌이 더해진 독특한 분위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박수근 <나무아래>, 1960년대, 종이에 유채, 34×25㎝./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나무아래>, 1960년대, 종이에 유채, 34×25㎝./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나무아래〉, 1960년대= 박수근은 전후 황폐해진 땅에서 소박하지만 끈질기게 하루하루를 살아갔던 당시 서민의 삶의 모습을 진실되고 숭고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평가받는다. 전문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던 그는 같은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점차 구도와 세부묘사, 색채와 질감을 다듬어 나갔다. 중성적인 색채와 투박한 질감, 질박한 선묘 등 특유의 기법으로 농가의 평범한 일상 풍경을 담았다.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 아래에는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여인, 오른쪽 아래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이는 두 여인이 묘사되어 있다. 여인과 나무는 단순한 형태와 굵은 윤곽선으로 묘사하고 갈색조의 색감과 거친 질감이 강조되어 완숙기에 접어든 작가 특유의 화풍을 잘 보여준다. 우뚝 선 나무에서 뻗어 나온 잔가지들, 거기서 자라나는 옅은 초록 잎은 삶을 이어가려는 단단한 의지와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이중섭 <가족>,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40×28㎝./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가족>,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40×28㎝./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가족〉, 1950년대= 이중섭은 천진한 성향과 작가 정신으로 많은 일화를 남겨 한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전위적인 경향에 이끌려 자유로운 분위기의 일본 문화학원에서 유학했으며, 재학 당시 독립전과 자유전 등에 출품하며 화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귀국 후 한국전쟁 발발로 피란 생활을 하다가 아내와 자식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홀로 남아 통영, 대구 등을 전전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재회의 소망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을 제작했다.

    ‘가족’에 등장하는 남녀와 두 어린이는 그의 가족을 연상시킨다. 거의 나체로 보이는 인물들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뻗어 보듬고 있다. 서로 신체를 접촉하고 있는 모습은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인데, 가족과 따로 사는 불안한 그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양영석 기자 yys@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양영석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