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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93) 선생천해(先生天海)

- 선생은 하늘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다

  • 기사입력 : 2023-08-29 07:5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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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말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로 면우( 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 선생이 있었다. 그는 산청군(山淸郡) 단성면(丹城面) 남사(南沙)에서 태어났다. 이후 삼가(三嘉), 봉화(奉化) 등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1896년 거창군(居昌郡) 가북면(加北面) 다전(茶田) 마을에 정착하여 일생을 마쳤다.

    면우는 조선 말기 우리나라의 학문을 집대성하였다.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의 제자이므로, 학통적으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의 학통을 이었지만, 생장한 곳이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거처와 가까워 남명도 크게 존모했다. 두 선생의 우수한 점을 다 흡수하여 융합적인 학문을 하였다. 그리고 천문 지리는 물론이고, 그리스 철학, 서양의 역사 지리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학술사(學術史)에 있어서 저서가 가장 많은 학자다. 지금 문집 이외의 많은 저서는 거의 다 찾을 수 없지만, 문집만 해도 177권 63책에 이른다. 주자가 평생 지은 문장이 3200여편 정도인데, 면우가 지은 문장은 4700편에 이른다. 면우는 숨어서 학문만 하는 학자가 아니었고, 늘 국가민족을 생각하는 현실적인 학자였다. 1919년 양력 3월 1일 삼일독립선언서가 낭송되고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선언서에 민족대표 33인이 들어 있는데, 불교, 기독교, 천도교 대표만 있고 유교 대표는 한 사람도 들어 있지 않다.

    조선 500년 동안 국가에서 유교를 숭상하여 선비를 양성했는데, 국가를 되찾겠다는 의거에 유림 대표가 한 사람도 들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다. 유림은 국가민족 앞에 정말 할 말이 없게 되어 버렸다.

    그때 면우의 제자인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등의 발의로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글을 보내어 호소하기로 계획하고, 유림 대표로 면우를 추대하였다. 그러자 면우는 “망한 나라의 늙은이가 죽을 곳을 얻었다”라며 기꺼이 응낙하였다.

    당시 유림 대표 137명이 서명하였는데, 목숨을 건 결단이 아니면 참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로 면우는 음력 4월 대구 감옥에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6월에 풀려나왔지만, 8월 24일 다전 마을에서 숨을 거두었다. 선비의 대표답게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이다.

    지난 8월 25일 다전 마을에서 독립운동가 후손, 관계 학자, 군민들이 모인 가운데 강학하던 집인 여재(如齋)가 복원되고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유학과 한문학이 종합되어 있는 그의 문집인 ‘면우집’은 아직 번역할 계획도 못 하고 있다. 워낙 방대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학의 균형적인 연구를 위해서 면우집의 번역 보급은 시급하다고 본다.

    김창숙은 신도비문(神道碑文)에서 면우의 학문과 덕행을 칭송하여 “선생은 하늘같이 높고 바다처럼 깊다(先生天海)”라고 표현했다. 정말 여타 학자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뛰어난 학자요, 애국자였다.

    * 先 : 먼저 선. * 生 : 날 생.

    * 天 : 하늘 천. * 海 : 바다 해.

    허권수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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