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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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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시리즈를 끝내며

  • 기사입력 : 2005-10-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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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해진 가슴으로…

      문화기획 ‘장터- 그 추억을 찾아’가 의령장을 시작으로 삼천포장에서 끝을 맺었다.

      당초 16회 분량의 연재로 기획했던 장터가 시골 닷새장에 대한 애환과 사람향기. 쇠락해 가는 재래시장에 대한 활성화와 맞물려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스물아홉개의 장을 소개했다.

      찾아간 장터에는 그 고장의 특산물과 ‘신토불이(身土不二)’처럼 나오는 고장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에 즐거움이 넘쳤다.

      봄에는 지리산과 재약산 등에서 갓 캐온 취나물이며 더덕. 두릅의 향긋한 내음으로 시장을 가득 채웠고. 바닷가를 낀 닷새장은 갯내음과 펄떡이는 싱싱한 생선으로 넘쳐났다.

     

      그 뿐이랴. 어린시절 따 먹던 오디와 물앵두. 머루와 다래도 맛볼 수 있었으니. 되돌아오는 취재길은 마음이 따뜻했다. 
      “옜소”라며 한개 더 얹어 주던 넉넉한 인심까지 그 곳에서 만난 촌로들은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을 닮았기에 더욱 애틋했다.

      정찰제 대신 ‘한 소쿠리’. ‘한 다라이’에 1천~3천원이라며 손님 불러 모으는 장꾼들의 목소리와 “깎아주이소”, “한 개 더 얹어주이소”라며 흥정하는 소리까지도 정겨운 시골장의 풍경이었다.

      걸쭉한 사투리와 정겨운 흥정소리

      사람냄새 가득한 시골장 한켠에서

      웃고 울고 추억하며 삶을 배웠다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와 묻노? 산에 갈 때 됐다”, “잔디 옷 입을 때 다 됐다 아이가” 등 직접 화법 대신 에둘러 얘기하는 그 쫀득한 맛도 잊을 수 없다.

      “사진은 왜 자꾸 박아샀노?”라든지 “이왕 박을라몬 한 번 잘 박아봐라”며 몇번이고 웃어주던 소탈한 그 모습들도 가슴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시커멓게 탄 얼굴. 깊게 팬 주름. 굳은 살이 박힌 손바닥. 걸쭉한 입담까지 장터에는 민초들의 질곡(桎梏)한 삶을 생생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 속에는 주린배를 안고 자갈밭 산길을 지게 지고 오가던 장돌뱅이들의 처절했던 삶과 젊은 나이에 남편잃고 아이들을 배 곯리지 않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20~30리길 황토재를 넘었던 우리 어머니의 삶이 녹아 있었다.

      장터에서 만난 그들은 ‘인생 승리자’였다. 하루도 고단한 삶을 쉬지 않고 땀흘려 일해 자식들 공부시키고 결혼도 시키고. 이제는 소일거리 삼아 닷새장을 찾고 있었다.

      장사가 되면 기분 좋아서. 안 되면 안되는대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세월을 낚고. 인생을 이야기한다.

      70~80년대만 해도 사람들이 들끓어 발디딜 틈이 없었다던 시골 닷새장. 인파속에 아이 잃을까봐 장에 아이를 데려가지 못했다던 그 닷새장은 교통의 발달과 대형 유통점 진출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어 안타깝다.

      사람냄새 폴폴 나던 정답던 닷새장의 영화는 옛 추억속으로 사라지고 지금은 그 명맥만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시골장은 예나 지금이나 소통의 공간이자 작은 축제의 장이다. 아니 ‘삼팔선’과 ‘사오정’ 등 명예퇴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일터이자 만남의 장소다.

      장터 사람중 일흔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 꽤 있었다. 40~50년 외길을 걸어온 그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것을 배우기도 했고. 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경로당이나 노인당을 찾지 않고 일터에서 몸을 움직이는 장터 사람들이 못내 부러웠다.

      돈 번다는 욕심없이 “밥만 먹고 살면 되지 뭐”라는 그분들에게 늙어서도 일할 거리가 있다는 것. 소일삼아 친구 보고 싶어 장에 나온다는 그들이 참 부러웠다.
    그래도 오전 내내 “마수도 못했다”는 하소연에 가슴이 찡해 오는 건 닷새장의 쇠락을 가만히 두고 볼 수 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장터’ 기획물을 매주 내보내면서 지자체가 재래시장 환경개선사업 등 재래시장 살리기에 나서게 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잘 다듬어진 표준어 대신 구수하고 걸쭉한 사투리를 여과없이 그대로 지면에 실을 수 있었던 것도 이 시리즈를 하면서 얻은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사진 위에서부터)장터는 살아있다. 싱싱한 생선좌판(김해장), 고사리손에 천원씩 쥐어들고 장보기 체험에 나선 아이들(마산 진동장), "뻥이요~~"요란한 뻥튀기 소리와 갓 구워낸 풀빵을 맛있게 드시는 할머니(창년장), 꿈틀꿈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문어(남해장)와 주섬주섬 몸삐 바지 속에서 지갑을 찾는 할머니(산청장) 등 장터에서는 언제나 정겨운 웃음이 가득하다.

    /김다숙·이종훈·최승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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