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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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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우리 엄마는 백과사전

  • 기사입력 : 2006-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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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살이가 각박해지고 사람들 사는 모습이 너무 메마른 탓인지 아이들 주고받는 말도 거칠어지고 있다.
      동네 문구점에 갔을 때였다. 때마침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가 파했는지 아이들이 참새떼가 되어 재잘대며 내가 있는 문구점 안으로 우루루 몰려들었다.

      빈 수족관에 퍼덕이는 물고기들을 확 쏟아 부은 듯 삽시간에 문구점은 활기가 넘쳤다. 무료해 하던 주인 얼굴도 금세 생기가 돌았다. 저학년인 듯한 그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귀엽고 깜찍한 모습 때문이었다. 복사기한테 일을 맡겨놓고 무심코 서있던 나조차 눈길이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각자 호주머니에서 앙증스럽게 생긴 작은 지갑을 꺼내는가 싶더니 자신들이 골라놓은 머리핀이며 수첩이며 스티커 값을 계산하곤 하였는데 그 상큼하고 발랄한 모습들을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잠시 후. 그 아이들의 대화를 엿듣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장미꽃잎 같은 그 작고 예쁜 입술 사이에서 톡톡 튀어나오는 말은 기성세대인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국적불명인데다 조어 등이 대부분이었다. 복사한 것을 봉투에 넣고 문구점을 나서자 어쩐지 발걸음이 무거워져옴을 느꼈다. 우울해진 마음 탓이었다.

      옛날에는 이른 아침. 가족이 일터로 학교로 썰물 되어 빠져나가고 나면 텅 빈 집안에는 주부 혼자 달랑 남곤 했다. 전업주부인 경우. 그때부터 집청소며 빨래 등 집안일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학교를 파하고 대문을 들어서는 아이를 반기느라 진종일 집안에 있기 일쑤였다.

      세상이 많이 변하여 요즘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숨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경쟁사회에 살아남기 위해 남편의 퇴근시간도 늦어지는가 하면 아이들도 학교를 파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여러 학원을 전전한다.

      주부들 또한 예전처럼 낮시간을 집에서 무료하게 보내지 않는다. 가족을 위하여. 취미생활을 위하여 혹은 건강을 위하여 교양강좌가 있는 문화센터나 헬스클럽을 기웃거리기도 한다.

      이렇듯 하루를 바쁘게 보낸 가족들이 저녁시간에야 겨우 만났다가 대화를 나눌 새도 없이 이내 각자의 방으로 쏙쏙 들어간다는 점이 왠지 아쉽게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핵가족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때문이다.

      문득 이웃에 사는 향이네 가족이 생각난다.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가 되는 게 자신의 삶의 목적이라고 수줍게 말하는 향이엄마는 자녀교육 방법이 남다르다.

      틈만 나면 자신이 그 나이 되도록 익혀온 지혜와 음악 미술 문학 종교 일반상식 등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마치 옛날이야기 하듯. 혹은 수수께끼 형식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두 아이는 어린 나이임에도 속이 깊고 다문박식하여 볼수록 대견스럽다. 또한 엄마를 닮아 바른말 고운말만 쓰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한다.

      그 아이들은 ‘우리 엄마는 백과사전이예요’ ‘이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똑똑하고 훌륭해요’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향이엄마 같은 슬기로운 엄마들만 있으면 바로 ‘좋은 가정’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강현순(경남수필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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