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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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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시인이 찾은 낙동강본포

  • 기사입력 : 2006-07-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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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래알의 감촉, 그래 사랑이다

      뜨겁다.

      무자비하게 난사되는 6월의 탱탱한 햇살. 이미 달아오르기 시작한 포장도로를 벗어나기 위해 가속페달을 밟는다. 익숙한 몸짓이다. 몇 번의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다. 마음은 벌써 본포 둑길을 걷고 있었으니.

      커브길을 돌자 갑자기 탁 트이는 시야. 낙동강이다! 체감온도 5도 쯤은 너끈히 내려줄 듯한 시원한 물빛과 나란히 펼쳐진 넓고 하얀 모래밭만으로 풍경은 완성되고. 아득한 수평선을 날렵하게 감으며 황포를 단 나룻배 한척쯤 흥겹게 저어 올만도 하건만 지금의 본포에는 나루터의 흔적마저 찾아볼 길이 없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저 물빛만으로 내 몸의 세포들은 이완을 거듭하며 물길을 내고 강을 향해 흐르기 시작하는걸. 팽팽하게 감겨져있던 시간의 태엽이 툭! 하니 끊어져 하나 둘 모래알 속으로 흩어져 버린 걸.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며 이미 천리 길을 묵언수행으로 흘러온 저 물줄기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마음의 결들이 절로 부드러워지는 것을.

      낙동의 물길은 유장하다.

      쉽게 낯빛을 바꾸지 않고 요란스레 뒤척이지도 않는다. 사납게 내려쬐던 한낮의 햇살도 이곳에선 시울을 둥글린다.

      어쩌면 조금은 심심하기도 한 무성(無聲). 무채색의 풍경이 이곳 낙동강 본포의 매력이며 내가 닮고 싶어 하는 품성이기도 하다. 비로소 낙동의 품안에 든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물소리 하나 내지 않고 흐르지 않는 듯 흘러가는 물결에 잔잔히 부서지는 윤슬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니 청정하던 물빛도 사라지고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반짝임만 남는다.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또 하나의 기억이 된다.

      신발을 벗어들고 낙동강 가 모래톱을 걷는다. 발목을 감싸는 따끈한 모래알의 감촉. 가늘게 찍힌 물새 발자국 옆에 깊숙한 내 발자국을 찍어 본다. 나의 유년도 이렇게 강가 모래밭에 발목을 묻으며 영글어 왔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동네 가까운 분들과 추렴을 해서 강변에 큰솥을 걸고 토종닭 몇 마리 푹 고아놓고선.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밭에 온 몸을 파묻고 시린 무릎과 등줄기를 지지며 허기진 속을 달래곤 하셨다.

      한 해의 고단함을 뜨거운 모래찜질로 녹이고. 땀 전 광목치마 삶고 두들기고 헹구어 눈부시던 흰빛을 되찾아 풀기 빳빳하게 먹이시던 지혜로 또 다시 한 해를 거뜬하게 일어나셨던 것이다. 덩달아 신이 난 우리 조무래기들은 조약돌처럼 까만 얼굴을 반들거리며 어머니들이 찢어주시는 살점을 받아먹고는 물속으로 풍덩풍덩 뛰어들었고 운이 좋으면 모래 속에 박힌 토실한 고동(다슬기)도 한 바가지씩 건져 올리기도 하였는데….

      풍성했던 기억에 비해 다소 적막해진 풍경이 잠시 쓸쓸해진다. 광활하고 도도하던 낙동강의 품새는 사실 많이 야위었다. 산업화와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너지고 해체되고 소실되었다. 지금도 강 건너에는 포클레인의 날카로운 삽날이 모래톱을 헤집고 골재를 잔뜩 실은 덤프트럭이 쉼 없이 드나들고 있다.

      건설과 생산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잃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낙동강의 넉넉한 젖줄에 기대어 농부들은 너른 들판에서 알곡과 푸성귀를 길렀고 어부들은 잉어나 은어 붕어 꺽지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지만. 계절을 바꿔가며 찾아오던 고니 두루미 도요새 저어새 물떼새의 날갯짓도 수척해졌고 뱃사공의 흥겨운 노랫소리와 모래알처럼 해맑게 부서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이제 기억 속에서만 빛날 뿐이다.

      내 유년의 근원적 자양분이었던 낙동강. 발등을 덮는 물결과 부드럽게 밟히는 모래알의 감촉만큼은 오래 사귀어온 친구처럼 익숙하고 포근하다. 그래 사랑이다. 내 어머니 가슴이다.

      아직은 발길을 돌릴 수 없다.

      본포에는 놓칠 수 없는 비경 일몰이 있다. 낙동강을 오래 거닐어 목이 마르다면. 일몰을 기다리는 동안 모래바람이 걸어오는 농익은 수작에 수줍게 몸 비틀고 있는 들꽃마당을 지나 옛 본포나루터에 소담한 등잔처럼 자리하고 있는 찻집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섣불리 차를 주문해서는 안된다. 찻집주인이 손님의 격에 어울리는 차를 챙겨다 줄 때까지 한 면을 온통 차지한 창을 통해 또 다른 느낌의 낙동강을 감상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한번 다녀간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예인들의 사랑방이자 소박한 연인들이 즐겨 찾고 있는 이 찻집도 낙동강 제방공사에 의해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다. 카페지기와 카페를 아끼는 예인들이 모여 작은 음악회도 열며 본포나루 살리기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작은 마음이나마 보태고 싶다.

      이윽고 해가 이울기 시작하고 손톱만해진 햇덩이가 강턱에 걸터앉을 쯤이면 조금씩 강물 위로 붉으레 양수물이 번져가고 금줄처럼 둘러친 본포교 아래로 창세기의 신화처럼 울컥 노을이 쏟구친다. 강물을 적시고 모래톱을 적시고 한껏 겸손해진 내 얼굴도 적시며 끝없이 쏟아지는 본포의 노을은 슬픔의 시간에 바라보는 처연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새로운 역사의 탄생을 예고하는 심지 단단한 성화처럼 지치고 젖은 가슴에다 불꽃을 지펴주는 희망이며 열정이며 불새의 날갯짓이다.

      문득. ‘오후 5시 3분. 갑자기 내 시계가 그 시각에 멎어버렸다’라는 박목월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시계가 멈추었다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만약 내게 그런 행운이 온다면 지금 바로 이 시각이었으면 싶다. 

      *김미옥 시인은 1958년 밀양 출생으로 2004년 ‘시선’으로 등단해 문단에서 촉망받는 신인이다. 석필문학회 회원. <서정과 현실>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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