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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1) 전설의 여성 산악인서 지리산 산골 아낙 된 남난희씨

“산을 버리니, 진짜 산이 보이더라”

  • 기사입력 : 2009-06-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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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난희씨가 하동군 화개면 용강마을 자신의 집 뒤뜰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다./김승권기자/




    20여년 전, 산악계의 ‘전설’로 불리던 한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이십대 중반에 여성 산악인 최초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백두대간을 76일 만에 단독 종주했다. 이어 여성의 몸으로 세계 최초 7455m의 히말라야 강가푸르나봉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다.

    고독한 ‘맹수’의 눈빛을 가진 여자는 ‘죽음과의 도박’을 즐기는 듯 더 높고 위험한 산을 향해 도전장을 들이댔다. 그렇게 치열하게 산을 오르던 여자가 불현듯 등반을 멈추고 지리산 자락의 한 산골 마을에 둥지를 튼 것은 나이 서른 중반의 일이었다.

    당시 뱃속에 품고 왔던 생명은 15살 소년이 됐고, 남편은 이별 후 불가에 입문했다. 누구보다 등산화가 잘 어울렸던 여자는 이제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 자연스러운 50대 촌부(村婦)가 됐다.

    “산 정상이 아닌 산 아래에서 비로소 산을 알고 행복을 찾았다”고 말하는 여자. 한때 세상의 높은 산을 죄다 오르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여장부’가 이 작은 산골 마을에서 찾은 행복의 정체는 과연 뭘까.

    이야기의 주인공 남난희(52)씨를 만나러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앞 용강마을을 찾았다. 그녀의 집은 백두대간 끝자락인 영신봉과 형제봉을 이어 뻗어내려간 황장산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쌍계사를 품고 있는 6개의 능선이 보이는 호젓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천연염색한 옷이 어울리는 남씨가 선한 웃음으로 일행을 맞아주었다. 볕이 잘 드는 앞마당에는 노란 민들레가 늦은 봄 기지개를 켜고, 가지런히 정렬한 20여 개의 장독에서는 구수한 된장이 익어가고 있었다.

    △등산(登山)에서 입산(入山)으로

    남난희씨는 타고난 산꾼이었다. 1957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남씨는 어린 시절 시인을 꿈꾸는 차분한 소녀였다. 말없이 책읽기를 즐겨한 소녀는, 어느 날 우연히 혼자 오른 산에서 인생을 바꿀 ‘산과 첫 대면’을 한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어떤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늘 외로웠고 결핍되었거든요. 그런데 산에 오르면서 모든 게 충만한 기분이 드는 거예요. 늘 갈망했던 뭔가를 찾은 기분이었죠. 아마 종교인이 절에 가거나 교회에 가면 느끼는 그런 기분과 비슷할 거예요.”

    학창시절, 체육시간이면 운동신경이 없어 늘 구박받던 그녀였지만 산에 오른 그녀의 몸은 마치 동물의 본능처럼 움직이고 반응했다. 그녀 스스로도 신기해 했을 정도로 그녀는 ‘산 맞춤형’ 체질이었던 것이다.

    20대의 남난희에겐 산이 전부였다. ‘젊음’과 ‘열정’, ‘오기’를 무기 삼아 산과 ‘맞짱’을 뜨길 10여년. 그녀의 행보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를 남겼고, 세상은 그녀를 ‘한국을 대표할 제1대 여성 산악인’이라며 칭송했다. 그렇게 정상에 서 있던 그녀가 30대 중반 갑작스레 전문 산악 등반을 그만둔 이유는 자신이 꾸리던 한국 최초의 여성 에베레스트 등반대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였다. 그 사건 후 세상에 상처 받은 남씨는 전문적인 등반을 접고,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하동 지리산 자락으로 생활을 옮겼다. “산에 오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던 남씨가 산에 오르는 일을 포기한 것이었다.

    -정상의 자리에서 등반을 포기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죠. 하지만 산에서 생활하다 보니 산에 오르는 것만이 산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제는 산 중간에서 내려와도 좋고, 이렇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너무 좋아요. 예전에 산에 오른 것이 등산이었다면, 지금은 입산(入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산에 오를 때와 산에 살고 있으면 어떤 차이가 있나요.

    “오르겠다는 욕망만 있을 때 산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오르기만 할 뿐이었죠. 그러나 산에 삶터를 정하고부터 산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산악인으로서는 산을 타지 않을 계획인가요.

    “이제 더 이상 젊을 때처럼 ‘저 산을 꼭 올라가야지’ 이런 욕심은 없어요.”

    -삶터가 도시였다면 어땠을 것 같나요.

    “여전히 산을 오르는 대상으로만 봤을 거예요.”

    젊은 시절에는 목숨을 걸고 산을 올랐다면, 이제는 내키면 산을 오르는 식이라는 남씨. 그녀는 스스로를 “‘산악인’이 아닌 ‘산사람’으로 불러 달라”고 했다.

    △가난하게 잘사는 법

    남씨의 살림은 말 그대로 변변찮다. 그러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별로 없다. 소담한 흙집에는 세탁기, 에어컨 따위를 갖춰 놓지 않았고, 옷이나 생활용품을 사들이지 않은 지는 꽤 오래 됐다. 연료는 이 산 저 산의 나무가 해결해 주고, 먹거리는 텃밭에서 일군 채소와 산과 들에서 빌린 나물로 충분하다. 춥고 더운 것은 자연의 순리이기 때문에 굳이 피할 생각도 없단다.

    꼭 필요한 기본 생계비는 남씨가 직접 담그고 재배한 ‘난희표 된장’과 ‘난희녹차’로 해결한다. 그것도 1년에 콩 10가마와 녹차 50봉(올해는 67봉).

    “내가 최선을 다해 만들 수 있을 만큼만 만듭니다.” 그러다 보니 아들 학비와 생계비로 쓰고 나면 금세 잔고가 바닥이다. 혹자는 그녀의 이런 삶을 ‘자발적인 가난’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삶을 도피라고 보지 않나요.

    “남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여기서도 사회생활이 있고, 모든 것이 이뤄지고 있죠. 지금의 생활에 만족해요.”

    -산골 생활은 어떤가요.

    “욕망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괜찮은 삶이죠.”

    -물욕 없는 삶, 이상적이지만 현실이 되면 힘들 것 같은데.

    “뭔가가 꼭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욕심을 버리면 살기가 훨씬 쉬워지거든요. 예를 들어 된장찌개를 끓일 때 대부분 사람들은 꼭 두부를 넣잖아요. 두부를 넣지 않고 다른 야채를 넣어도 맛이 조금 다를 뿐 먹을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내 생활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없이 뭔가를 갈구하게 돼요. 그걸 버려야 하는 거죠.”

    -그래도 아이의 교육에 대한 부분은 걱정이 많을 텐데요.

    “어릴 때는 집에서 키웠고, 지금은 정규교육과정 대신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어요. 학교 공부만 공부가 아니고, 누구나 자신만이 가진 능력이 있잖아요. 아이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통해 그걸 찾아냈으면 해요. 아이 교육은 언제나 제일 큰 고민이에요. 된장만 담그다가 차 농사도 짓게 된 것도 아들 교육비 때문이죠.”

    나지막하면서도 단단한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득도한 여승의 그것 같다. 문득 그녀가 쓴 책 ‘낮은 산이 낫다’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언제부턴가 나의 삶은 아무것도 가지고 싶은 것이 없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고,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고,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 또 어느 곳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게 되었다. 물기가 다 빠진 풀처럼 가벼운 마음이다. 참 좋다.’

    △내가 산이다.

    지리산 화개골에서 조용히 살아가길 원하는 남씨가 유일하게 대외활동을 하는 건 ‘자연’과 관련된 일이다. 남씨는 최근 문을 연 ‘지리산 문화학교’의 숲길 걷기반 선생님으로 나섰으며, 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한다는데 이유가 있나요.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면 우리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이에요.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는 우리의 몸에 쇠말뚝을 박는 일과 같아요.”

    -지리산 숲길 걷기반은 어떤 수업인가요.

    “사람에게 가장 치유력이 뛰어난 것은 자연이에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너무 질주하는 데 급급해서 자연과 함께 하는 법을 잊어버리죠. 이 수업에서는 자연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몸으로 직접 산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자연을 이해하도록 옆에서 도와주는 게 제 역할이에요.”

    -산을 대할 때 자세는.

    “자기 몸이라고 생각하고 산을 대해요. 그러면 자신이 산이 되죠.”

    -꿈이 있나요.

    “지금처럼 사는 거요.”

    지금이 그만큼 행복하다는 뜻일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찾아 세상 곳곳의 산을 헤매고 다녔던 그녀가 지리산 품에서 찾아낸 행복. 그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있는 그대로의 남난희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아니었을까. “산을 버림으로써 산을 얻었다”는 그녀. 자신을 비워내면 낼수록 더 넉넉해진다는 것은 ‘자연의 자연스러운’ 이치인 것이다.

    글=김용대·조고운기자 jiji@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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