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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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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3) 민들레공동체 김인수씨

민들레처럼, 씨앗 욕심은 버리고 마음 뿌리는 깊게 살고 싶어요

  • 기사입력 : 2009-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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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들레공동체 김인수씨


    민들레학교 표지판

    김인수씨 뒤로 멀리 보이는 곳이 민들레학교다.

    김인수씨가 민들레학교 종을 울리고 있다. 학교 건물은 압축한 볏집으로 만든 ‘스트로 베일 하우스(straw bale house)’이다.

    산청군 신안면 갈전리 민들레공동체 김인수씨가 민들레학교 텃밭에서 고추와 오이 등을 따고 있다.

     

    산청군 신안면 갈전마을 야산 아래에 자리 잡은 민들레학교로 들어서자 허름한 옷차림에 검푸른색 장화를 신은 농사꾼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마중을 나온다.

    12년 전 이곳에 집을 짓고 민들레공동체를 만들었던 김인수(49)씨.

    방금 논에서 일을 하다 왔는지 여기저기 흙투성이다. 얼굴과 손도 까맣게 그을려 투박한 농민의 모습 그 자체이다. 악수를 하며 느긋하게 웃는 모습은 성인군자가 따로 없다.

    1980년대 4년제 대학까지 졸업했던 그가 좋은 직장과 도시 생활을 마다하고 여기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농촌에 왔을까.

    ▲가난한 사람 도우며 가난하게 살고 싶었다

    처음부터 농촌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농촌에 들어가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80년대 중반. 경상대학교 농학과 졸업 이후 그는 농촌의 인재를 키우고 싶었다.

    “80년에 대학을 들어가 서부경남 지역에서 농활을 하면서 돌아본 농촌은 너무나 가난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어려운 농촌을 살려야겠다고….”

    당시 경상대 농학과 졸업생 52명 중 농촌으로 간 사람은 2명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농학과를 다닌 대학생들마저 ‘농(農)’자 자체가 싫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는 84년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도 마다하고 대학가 인근 정촌마을에 빈집을 사서 농촌 아이들을 데려와 교육시키면서 어렵게 살아갔다.

    “농촌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농촌 인재를 키우고 싶었죠. 그래서 졸업 후 정촌에서 어렵게 5년을 살았죠. 정촌에서 살다가 다시 진성에서도 몇 년 더 살았습니다. 그러다 12년 전에 산청으로 와 집을 짓고 정착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의 민들레공동체가 됐다. 뜻 맞는 사람끼리 농촌에서 서로 돕고 살면서 돈에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립적인 마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왜 ‘민들레’냐고 물었다.

    “민들레를 한번 보세요. 촌스럽고, 단순하고 소박하게 자라지 않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나 자신도 가난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경계하고 욕심을 버리고 서로 나누며 살자는 것이다.

    “민들레는 또, 뿌리가 깊습니다. 6~7번 베어 버려도 싹이 올라옵니다. 한마디로 뿌리 깊은 삶이죠. 씨앗은 또 어떻습니까. 바람의 뜻에 따라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도 가지요. 사람도 하늘의 뜻에 따라 욕심을 버리고 살아 가는 숙명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민들레공동체라고 이름 지었죠.”

    그에게 민들레공동체는 모든 생명의 만물인 땅과 같다고 한다. 농사도 짓고 인재도 기르고 가난을 나눠서 다 함께 잘 살아가는, 어려움·가난함이 일궈낸 ‘비옥한 땅’이다.

    ▲함께 살자고 한 일이 너무 커져 걱정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 가난하게 살자는 소박한 취지로 시작한 일이 너무 커져 고민이다. 현재 민들레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안기술센터와 민들레학교, 1만6500여㎡(5000여 평)의 벼·채소 농사, 자연양계장까지…. 뿐만 아니라 세계 최악 빈곤지역인 인도와 캄보디아에 교육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이 하루 1달러로 버텨내고 있습니다. 농촌 사람의 80%가 가난한 사람으로 하루 한 끼 밥을 겨우 먹고 있죠. 가난하니까 환경이 파괴되고 환경이 파괴되니까 더 빈곤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안타까워했다.

    국내 선교활동에 동참해 8년 전 캄보디아 4개 마을에 이삭학교(농업학교)를 건립해 농촌지도자를 키우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이미 10년 전부터는 인도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에게 농업과 보건 등 교육을 지원해 주고 있다.

    “해외 빈곤층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선교활동을 시작했던 대학시절 때부터였어요. 캄보디아와 인도, 히말라야 등지를 오가고 하면서 이곳에 학교를 세워 농촌지도자를 키워 빈곤 퇴치에 나서기로 한 것이죠. 조금씩 조금씩 모은 돈으로 오지마을에 학교를 만들고 하다 보니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일이 커져 걱정입니다. 허허~”

     

    ▲교육에 사로잡힌 생각이 문제

    농촌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교육이 문제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 문제죠. 자식들 대학 보내서 돈과 권력을 가지려는 부모들의, 가족들의 이기주의부터 버려야 합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서울의 좋은 대학에 가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성공해서 권세도 잡고, 돈도 벌자는 것 아닙니까. 이런 경쟁에 내몰리면서 아이들이 자살까지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공동체성, 가치관, 감수성 모두를 다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체성도 못 찾은 아이들이 어떻게 대학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은 정체성을 발견한 후에 자신이 선택해서 가더라도 늦지 않습니다.”

    나이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인 그의 막내아들은 농사를 짓고 있다. 초등학교만 나온 아들은 농사일이 꿈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도와 오면서 농기구 다루는 게 재미있고 솜씨도 수준급이라고 한다. 아들은 아직 대학을 갈 생각은 없지만 산림기술을 배워 농촌에서 살고 싶어 한다.

    둘째 딸과 첫째 아들은 결혼을 한 후 각각 인도와 영국에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공부를 하고 있다.

    자녀들이 후회하지는 않겠냐고 묻자 “좀 가난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같이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섬기는 인재를 키워야 합니다. 그러려면 현 시대의 경쟁적인 교육을 믿지 말고 독립적으로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도시에서는 이런 교육을 절대 못하죠. 아이들 교육은 저한테 맡기고 빨리 농촌으로 오세요”라며 재촉했다.

    ▲오늘 죽어도 미련은 없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욕심이 없다 보니 내일 계획도 없다고 한다.

    “부자 되려고 노력하면 절망과 고통의 시작이지만, 욕심을 버리니 오늘 죽어도 미련은 없어요.”

    다만 도시 생활에서 은퇴하고 농촌에 돌아온다고 생각하지 말고 젊었을 때 내려와 돈의 힘을 이기고 사람의 힘을 길러내는 마을을 같이 만들어 보자고 강조한다.

    “돈이 많이 있어도 삶을 자립적으로 꾸릴 수 없는 위기의 시대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삶을 스스로 꾸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게 중요하고 다른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훈련을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기후변화에 대비해 나무 한 그루라도 농촌에 심어 보세요.”

    ☆민들레공동체란= 대안기술센터, 민들레학교, 아트센터(공방) 등이 있다. 대안기술센터는 태양, 바람, 분뇨 등을 이용한 전기에너지를 마을에 공급하는 등 다양한 대체에너지 개발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개발한 것만 풍력발전기, 태양광발전기, 자전거발전기. 위성안테나로 만든 태양열조리기, 바이오가스·디젤 등 다양하다. 대체에너지에 관심 있는 어른·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캠프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민들레학교는 10여명의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영성과 인성, 삶, 감성 등을 가르치고, 체험, 리더십훈련, 독서훈련, 동아리활동도 하고 있다. 아트센터에서는 누구에게나 다양한 공예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글=김호철기자 keeper@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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