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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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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봉암동 수원지서 색소폰 연주하는 채리 박

등산객에 활력 나눠주는 왕년의 스타
60~70년대 재즈가수·쇼 사회자로 활동

  • 기사입력 : 2009-06-24 15: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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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이 즐거워하니까 연주하는 저도 힘이 나요. 힘 다할 때까지 계속해야죠.”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등산객,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마산시 봉암동 수원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노인이 있다. 60~70년대 재즈가수이자 쇼 사회자로 맹활약했던 채리 박(67·본명 박무부)이다.

    경북 안동 출생인 그는 3살 때 전주로 이사 가서 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다. 어려서부터 남을 곧잘 웃겼던 끼를 주체 못해 입학한 지 1년도 안돼 연예인의 길로 들어섰다.

    처음에는 영화 제작현장에서 엑스트라를 했다. 하지만 1년에 한두 번 출연하다보니 도저히 생활이 안돼 그만뒀다.

    21세였던 60년대 초 악극단인 ‘청춘 스테이지쇼’ 단장 전예명씨에 발탁돼 재즈가수이자 쇼 사회자로 변신했다. ‘삐 빠빠 룰라’, ‘싱싱싱’ 등 번안곡을 불러 히트를 쳤다. 당시에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가수활동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쇼반장을 하게 됐다. 가수와 밴드를 모집해 전국을 돌며 공연하는 일을 반복했다.

    이후 영화사를 설립해 여러 편의 영화를 제작했으나 실패를 거듭해 70년대 후반 다시 쇼 사회자로 발길을 돌렸다.

    “몇 년 만에 복귀해 보니 쇼무대는 사양길로 접어들었더군요. 인기 만회를 위해 안간힘을 써봤지만 허사였어요.”

    서울 연예계 생활 막바지에는 유명가수와 함께 서울 을지로 6가에 있었던 ‘아리랑 카바레’를 운영했다. 유명가수가 스케줄로 바쁠 땐 대신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 무렵 마산 돝섬유원지에 공연하러 왔다가 사장이었던 친구가 연예부장 자리를 제의해 마산에 주저앉고 말았다.

    “사장이 저를 인정해 줬죠. 출근 안해도 월급을 주겠다고 해서 열심히 공연을 다녔어요.”

    그는 서울에 있는 가수와 밴드를 데려와 마산시민의 날 행사, 만날제, 함안 아라제, 창원 진달래축제, 야철축제, 진영단감제 등 경남에서 열린 숱한 축제 무대에 섰다.

    사비를 들여 87년부터 10년 넘게 매년 경로위안잔치를 열기도 했으며, 교도소 위문공연 등 크고 작은 행사에 무보수로 등장하기도 했다.

    마산에 연예인이 한 명도 없는 것이 안타까워 재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는데 힘을 쏟기도 했다. ‘첫사랑’을 부른 고성 출신 박주용 등 4명을 가수로 데뷔시켰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지자 연예활동을 접었다. 당뇨병에 걸린데다 혈압이 높아 집 근처 봉암동 수원지에 운동하러 갔다가 등산객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취미 삼아 배운 색소폰 연주를 1년 전부터 시작했다.

    “등산하는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려고 시작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니까 보람을 느껴요.”

    채리 박은 비가 오지 않으면 거의 매일 1시간 동안 트로트, 가곡, 동요 등 40여 곡을 연주한다. 한 곡 한 곡 혼신을 다하는 그에게 봉암동 수원지는 옛 시절 화려했던 쇼무대일는지도 모른다.

    양영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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