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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4) 따오기 복원 총지휘 박희천 교수

“따오기가 산다는 것은 곧 사람이 산다는 것”

  • 기사입력 : 2009-06-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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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오기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둔터마을 따오기복원센터. /이준희기자/




    따오기 복원 프로젝트를 총지휘하고 있는 경북대 박희천 교수가 따오기 복원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준희기자/

    “혹 사람보다 따오기를 더 좋아하지 않습니까?”

    “따오기가 산다는 것은 곧 사람이 산다는 뜻입니다. 따오기도 사람도 생명의 한 부분 아니겠습니까.”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지난 26일 오후 우포늪이 내려다보이는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둔터마을 따오기복원센터에서 `따오기 복원 프로젝트’를 총지휘하고 있는 박희천(61) 경북대학교 교수를 만났다.

    중국에서 건너온 양저우(수컷)·룽팅(암컷) 부부가 낳은 네 번째 알이 부화한 지 나흘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복원센터의 분위기는 안정돼 있었다.

    ◇네 번째 부화에 이르는 여정

    지난해 10월 17일부터 지금까지 긴 시간이었다. 인근 주민부터 대통령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어마어마한 짐을 지고 살아온 이들이 바로 복원센터 구성원들이다.

    박 교수는 물론, 연구원과 사육사, 중국인 사육사를 위한 통역까지도 긴장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알이 부화에 성공했을 때에는 박수 치고, 고함 지르고 난리가 났었죠.”

    “네 번째는 시큰둥했습니다.(웃음) 의미가 퇴색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살려낼 수 있다는 자심감이 생겼다는 것이죠.”

    3단계에 걸쳐 총 4마리가 부화에 성공했고, 첫째는 날기 시작했으며 회색빛으로 태어난 유조(새끼새)의 색깔도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야생 따오기는 보통 일 년에 단 한 번 알을 낳고, 한 번 낳을 때 3~4개를 낳는데 복원센터에서는 인공번식법을 통해 많은 새끼를 생산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성공하고 나니까 박 교수를 포함해 모든 직원들이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그만큼 긴장했던 것이다.

    “심적 부담이 컸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우리가 하자는 생각으로 매달렸습니다.”

    ◇시베리아의 충격

    박 교수가 1994년 러시아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일이다.

    시베리아의 숲과 들판에 서식하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를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러시아 학자들이 박봉에도 멸종위기종을 살리려는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대구로 돌아와 낙동강 유역의 화원유원지(흑두루미 월동지)로 갔습니다.”

    종 보존을 할 수 있는 기술도 인력도 없었다. 일단 지역에서부터 살려보자고 해서 시작했다고 한다. 1999년 구미에서 재두루미가 농약을 먹고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고, 멸종위기종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곳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몸담고 있는 경북대학교에 조류생태환경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게 종 복원 노하우를 쌓아온 박 교수가 경남도의 ‘따오기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은 당연한 일. 당시에는 어떤 따오기를 선별해 어떻게 데려와야 하는지,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국내엔 박 교수 외엔 없었기 때문이다.

    ◇“따오기 복원은 우리 세대의 잘못을 바로잡는 첫걸음”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경제 개발과 맥을 같이했습니다. 따오기처럼 함께 살아야 할 생명들을 잃었죠. 우리 세대가 저질렀던 잘못을 조금이라도 바로잡는 것이 책무입니다.”

    그는 종 복원 문제에 있어 UN과 ICUN(국제자연보호연합) 등 국제기구는 물론 개별국가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난한 나라도 멸종위기종을 살려내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생태 복원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같이 가야 할 생명체를 보존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

    그는 “우리나라도 동아시아의 멸종 종을 살리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력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따오기 복원, 논란의 중심이 되다

    따오기가 들어오고 나서 쉴 새 없이 논란이 있었다. 따오기는 겨울 철새이므로 여기서 키우면 안된다, 여기서는 살 수 없다, 자연환경이 많이 훼손돼 먹이가 없다, 번식 장소가 없다, 천적이 많아 방사되면 죽는다는 것이다.

    “일단 키워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죽는지, 못사는지, 먹이가 없는지, 아니면 다 죽을지. 이제 시작인데 해 보지도 않고 말할 필요없다, 키워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박 교수는 백로, 왜가리가 사는 환경, 번식 방법, 먹이는 따오기와 같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백로와 왜가리 서식지가 200곳이 넘고, 한 서식지에 1000마리, 전국에 20만 마리가 사는데 똑같은 생태 습성을 가진 따오기가 살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따오기를 최초로 복원한 중국의 경우 천적에 의한 희생률은 30% 미만입니다. 일본에서도 지난해 9월 10마리를 자연에 방사했고, 그중 1마리가 희생됐지만 나머지 9마리는 야생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따오기 복원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인 ‘방사’에 대해서는 5~10년 후에 대한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합니다. 지금은 마릿수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방법을 시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개체 수는 내년, 내후년에 더 늘어날 것이다. 중국은 20~30년, 일본도 12~13년이 걸렸다.

    “중국과 일본의 경험을 잘 활용하면 시간은 얼마든지 압축시킬 수 있습니다.”

    ◇따오기 복원의 의미

    “따오기는 노래도 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오는데, 불과 30년 전 우리 곁에 있던 생명체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중국, 몽골에서도 멸종됐습니다.”

    우리에 앞서 람사르총회를 개최했던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쿠시로에서는 두루미(학)가 사람들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사람이 따오기를 억지로 살리는 것이 아니라 따오기를 사람과 같은 생명체로 존중하게 만드는 작업이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따오기를 살리려면 먹이가 있어야 하고, 장소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유사 따오기는 동물원에 있지만 진짜 따오기는 볼 수 없죠. 전 세계에서 따오기를 보려면 한국과 중국, 일본에 가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오직 창녕 우포늪에서만 가능합니다.”

    따오기 복원에 나선 창녕군과 경남도,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긍지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라진 모든 종을 복원할 수는 없습니다. 상징적으로 한 종씩 살려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태계가 복원될 것입니다.”

    ◇낙동강을 희귀 조류 복원 벨트(belt)로

    따오기 복원 이전에 박 교수는 이미 경북 구미시와 함께 두루미(학) 복원을 추진하고 있었다. 경북 안동시와는 고니(백조) 복원을 추진 중이다. 낙동강 유역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멸종위기 희귀조류 복원 벨트가 형성되는 것이다.

    “전국에서 모두 복원할 순 없지만 낙동강만이라도 생명의 복원 터전으로 만들어보자는 뜻입니다.”

    멸종위기 복원 대상 종은 두루미, 고니 말고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게 경남-창녕-우포는 멸종위기종 복원의 시발점이자 도약대인 것이다.

    ◇내 안에 따오기 있다

    “따오기 마릿수를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늘리려면 새끼를 키울 수 있는 어미새가 많아야 하고, 추가로 1~2쌍을 더 가져와야 합니다.”

    박 교수는 우포에서 태어난 따오기를 일본, 중국과 교환도 하고 이런 일들을 5년 내에 끝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따오기를 사람들 마음속에 심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따오기를 개방하고자 합니다.”

    “오늘도 서울대 교수들이 왔다 갔는데 따오기를 보고 간 사람이 서울에 생기는 것이고, 군민과 도민에게 따오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따오기를 보고 자란 세대는 감성적 자산이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복원 가치가 있다고 역설한다.

    언젠가 따오기는 복원센터를 떠날 것이다. 철새였던 따오기가 습성대로 멀리 날아갈 수도 있고, 일본 쿠시로의 두루미처럼 텃새화돼 계속 우포늪을 지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복원된 따오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다. 더불어 종 복원을 향한 그의 열정과 긍지도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차상호기자 cha83@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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