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9일 (목)
전체메뉴

사람의 향기 (5) 윤외련 마산 (주)에스엘테크 회장

제자의 학교 앞 교통사고가 ‘CEO인생 경영’ 계기 됐지요
교직 접고 벤처기업 운영

  • 기사입력 : 2009-07-07 00:00:00
  •   

  • “정말 보람 있고 열심히 살다가 하늘이 부르면 ‘감사합니다’ 하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는 윤외련 회장.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삶이 아닐까요?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데서 보람을 느낍니다.”

    어린이들이 학교 앞 횡단보도를 안심하고 건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잘나가던’ 교직을 접고 벤처기업을 설립, 4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발광 점자보도블록’ 등을 개발한 기업인이 있다.

    평범하면서도 남다른 삶의 주인공은 마산에 있는 (주)에스엘테크의 윤외련(58) 회장이다.

    △벤처기업 창업= “세상에 뭔가 남기고 싶었습니다.”

    윤 회장은 1999년 2월 마산 해운초등학교 교감으로 정든 교단을 떠난다. 그녀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처음으로 뛰어든 사업은 외식업. 창원에서 패밀리레스토랑과 마산에서 일식집을 운영했다.

    해안도로변 대번일식은 전 경영자가 손을 털고 나갔지만 윤 회장이 주변의 권유로 맡아 보기 좋게 성공시켰다. 윤 회장은 “대통령후보도 역전지게꾼도 찾을 수 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외식업에서 모은 자금을 합쳐 2004년 5월 마산시 내서읍 마산밸리 내에 교통시설물 생산업체인 (주)에스엘테크(www.sltec.net)를 설립했다.

    그녀가 벤처기업을 만든 것은 교단에서의 아픈 경험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하면서 그토록 사랑하던 제자가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것을 목격했다. 윤 회장은 당시 “교단에서 제자들에게 ‘인간이 돼라’고 말했던 자신을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아찔하고 위험한 교통현장을 보면서 고민 끝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창업을 결심했던 것.

    첫 특허품은 우리나라 횡단보도 사고의 60% 이상이 야간에 발생하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작심하고 고안한 것이 밤에 반짝반짝 빛을 내는 ‘발광 점자보도블록’이다.

    △발광 점자 보도블록 개발= 세계적인 특허품인 발광 점자블록 조명 장치는 보도블록이 횡단보도 보행신호등과 같은 색깔로 바뀐다. 보도블록 속에 발광다이오드(LED)를 넣고 신호등과 연계되도록 회로가 설치돼 있다. 보행신호가 적색일 때는 보도블록 바닥 전체에 적색이 켜지고, 보행신호가 녹색으로 바뀌면 보도블록도 녹색으로 바뀐다.

    이 발명품은 지방자치단체 등 품평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사고 방지 및 도시 미관에 좋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발광 점자보도블록은 이후 다시 시행착오를 거쳐 2006년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 출원과 제품 출시로 전국적으로 교통사고 발생 위험지역의 사고를 감소시키고 있다. ‘교통사고 없는 안전한 세상’을 만들려는 설립자 윤 회장의 열정이 높아진 국민의 의식수준이 요구하는 시대정신과 부합해 교통안전시설물 업체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윤 회장은 또 안전시선유도등, 고속도로 솔라표지판, 버스승강장 솔라등, 솔라표지병 등을 설치하면서 교통 안전에 기여하고 있다.

    △젊음을 불사른 교직= 윤 회장의 교직 생활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짧았다. “학습지도, 특별지도, 연구학교 시범학교, 교육 활동 등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수상을 석권했다”며 “하루가 모자라 퇴근 시에는 캄캄했던 현관에서 신발을 찾기 위해 불을 켜야만 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윤 회장이 교감으로 명퇴를 신청하자 주변의 반응은 두 갈래. 그만두기가 너무나 아깝다는 것과 교사 하기가 너무 아깝다는 것. 젊음을 바쳤던 교단이기에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열정을 쏟았던 교직의 제자들은 지금은 무형의 큰 재산이 되고 있다.

    윤외련 회장이 마산역 앞에 설치된 발광 점자보도블록을 설명하고 있다.

    △혼자서 어려움 극복= 교통안전시설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지만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발광 점자블록을 만들고 상용화하기 위해 경찰청, 국토해양부, 교육청, 한국도로공사, 지방자치단체 테크노파크, 대학연구소, 카이스트, 재료연구소 등을 2년반 이상 뛰어다녔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인으로 성공하려면 저승을 한두 번은 갔다와야 됩니다”라는 말 속에서 그동안 겪었던 고초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윤 회장이 에스엘테크를 창업한 2004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그해 가을 남편(권기수·65·하이트맥주 개발자)이 위암 판정을 받은 데다 친정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것.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편이 선 보증이 문제가 돼 결국 전 재산을 날렸다.

    발광 보도블록 개발은 쉽지 않았다. 기술력과 개발에 문외한인 데다 경영 경험도 없어 숱한 시행착오와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됐던 것.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자금 투입이 계속돼야 했지만 그녀는 단 한 푼의 돈도 빌리지 않고 혼자서 해결하기 위해 밤잠을 수없이 설쳐야 했다.

    어려울 때마다 평소 좋아하던 자연을 찾고 음악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음악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다. 윤 회장은 세계민속악기 700여 점을 수집할 정도로 음악에 애정을 갖고 있다. 악기들은 박물관을 만들려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부할 생각이다.

    “가슴으로 회사를 경영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사원들은 하나둘 짐을 쌌다”며 “지금 남아 있는 임직원들의 땀방울이 모아지지 않았다면 완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교통지도 로봇 개발 눈앞= “올해에는 무한한 청정에너지인 태양광을 활용한 표지판, 버스 승강장, 도로표지병 등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유비쿼터스 통신기술과 IT 기술을 총망라해 교통지도용 로봇(휴머노이드)을 탄생시킬 예정입니다.”

    윤 회장은 빛을 내는 LED점자 보도블록에 이어 LED와 태양광 기술을 접목해 친환경 신성장 녹색산업에까지 진출할 야심찬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고 싶은 말= “회사가 만든 발광 보도블록과 시선유도등 등 교통안전시설물이 전국 관공서와 기업체 등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정작 홈그라운드인 마산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마산역과 월영동에 발광 보도블록이 설치돼 있는 정도이다. 윤 회장의 특허품을 인정한 지역구 도의원과 시의원이 도·시 예산 2억여원을 확보했으나 마산시는 현재 6000여만원밖에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관공서와 기업체에 제품을 설명하면서 “지역에서 시공실적은 얼마나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윤 회장은 그러나 공장을 지어주겠다는 기업인 등이 있어 힘을 얻고 있다.

    윤외련 회장이 직원과 대화하고 있다.

    △좌우명은 ‘봉사’=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윤 회장은 기업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더불어 같이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좌우명이 ‘봉사’이듯 사회단체 후원과 봉사에도 남다르다. 우리전통사랑의 날 회장, 마산여성경제인협회 전 회장, 경남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자문위원, 마산발전협의회 교육문화위원장, 마산발전여성모임 단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산시 여성단체협의회 28개 단체를 지원하고 있으며 교육자, 장애인 단체 등을 후원·봉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STX중공업 유치를 최종 확정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STX 강덕수 회장이 ‘조그마한 여성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을 정도다. 마산 창원 진해 통합 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지역 발전과 행정 효율화를 위한 지역 통합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윤 회장은 모집 예정인 대리점도 수익을 많이 창출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다.

    윤 회장은 회사가 반석 위에 올라서면 지역을 위해 크게 봉사하는 ‘어머니’ 역할에 충실할 계획이라며 삶의 자세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정말 보람 있고 열심히 살다가 하늘이 부르면 ‘감사합니다’하고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

    ■윤외련 회장은= 창녕군 남지 출신으로 부산교육대학교와 경남대 경영대학원을 졸업, 남지동포초등학교를 시작으로 교직에 몸담았으며 마산해운초등학교 교감을 끝으로 지난 1999년 2월 명예퇴직을 했다. 남편 권기수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좋아하는 시는 윤동주의 ‘서시’이다. 그녀는 평소 여성이 행복해지고 사회활동을 제대로 하려면 큰 모성애로 남성의 기를 양껏 살려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글=김진호기자 kimjh@knnews.co.kr

    사진=전강용기자 jky@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진호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