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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9) 20년간 백혈병어린이 돕기 안병익 더불어하나회 회장

“아이들이 병 이겨내고 꿈 이루도록 돕고 싶어요”

  • 기사입력 : 2009-08-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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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병익 회장이 창원종합운동장 내 사무실에서 학교 현황판에 주요 일정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1990년 경남지역에서 방송통신대 출신과 여러 직장인들이 백혈병어린이후원회를 만들었다. 이 모임은 이듬해에 ‘더불어하나회’로 명칭을 바꾸었고, 1996년 10월 서울, 부산, 광주 등 24개 단체가 참여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를 창원에서 결성했다. 이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은 거제 삼성중공업에 재직 중인 안병익(49)씨다. 안씨는 지난 10년간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 부회장을 맡아 협회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으며, 더불어하나회의 회장, 부회장직을 번갈아 맡아 오고 있고, 지금도 회장을 맡고 있다.

    ◆일상에 묻어나는 꼼꼼함

    안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2일 창원 스포츠파크 내에 있는 더불어하나회 사무실로 들어서자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위탁교육을 지정 받아 운영하고 있는 ‘꿈사랑사이버학교’의 한 선생님이 몸이 안 좋아 출근을 못한 것이다. 이에 안 회장은 부장교사와 행정지원과장에게 대체 선생님을 즉각 알아볼 것을 지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선생님은 몸이 안 좋아 입원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열정으로 병이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도 출근해 결국 탈이 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섭외는 잘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보강 공지 글을 띄워야 했다.

    잠시 숨을 돌린 안 회장은 “백혈병 등으로 몸이 불편한데도 사이버 학습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을 생각한다면 선생님 스스로가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넋두리처럼 말문을 열었다.

    안 회장의 책상과 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서류는 더불어하나회와 연관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봄, 가을 나들이와 여름 수련회는 학생들의 이동 경로와 응급시설 등 제반 준비를 하고 시나리오를 만든다.

    그는 “꿈사랑사이버학교 학생 중 1년에 5~8%는 세상과 작별한다”며 “가을 나들이를 오지 못하고 봄 나들이가 생애 마지막 소풍이 될 수도 있기에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다가 안 회장은 잠시 한숨을 내쉰다. 화이트보드에 쓰여 있는 장기 입원환자 중 최근에 지워진 세 명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쩌면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수 있는 이 같은 꼼꼼함이, 백혈병과 소아암 등으로 고통받는 어린 환자들을 위해 준비한 봄·가을 나들이와 여름 수련회에서 지금까지 무탈하게 진행해 올 수 있었던 동력으로 여겨졌다.

    안병익 더불어하나회 회장이 소아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학생들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 있다.

    ◆평범한 사람의 봉사단체, 더불어하나회

    안 회장은 지난 1961년 함안에서 태어나 1985년 삼성중공업(주)에 입사했다. 방송통신대에 다니면서 뜻을 함께한 사람들과 좋은 일을 해 보자는 뜻에서 당시 생소했던 백혈병 어린이를 돕겠다고 나섰다.

    당시 백혈병 어린이를 돕는 후원단체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상남도에 비영리사회단체 제159호로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근로자들이 모여서 만들었지만 깊게 뿌리를 내려 지금은 400여명의 회원이 한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

    그는 더불어하나회에 대해 “백혈병과 소아암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아들이 건강한 사회의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랑을 실천하고, 경제적인 후원 사업을 전국적으로 활성화시키기 위해 만들게 됐다”며 “지역사회에서도 후원활동 참여 촉진을 통해 사회복지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소개했다. 이어 “백혈병과 소아암은 충분한 치료와 보살핌을 받으면 치료가 가능하지만 여전히 원인 규명이 안 되어 치료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며 “장기간의 약물치료와 투병 생활의 고통은 절망에 가까우며, 독한 항암제의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학교는 휴학해야 하는 학생들의 현실이 안타까워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초·중·등 교육법상 210일의 수업일수 중 1/3을 결석할 경우, 유급이 된다. 아픈 학생들은 질병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병이 낫더라도 오랜 투병 기간으로 인해 장기휴학이 되어 무적 학생이 되기도 해 결국 학교로 돌아가기 어렵고 심지어는 학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아프더라도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 꿈과 희망을 가졌으면 하는 생각에 2004년 ‘샘솟는 배움터’라는 학습의 장을 시작으로 병원이나 집에서 요양 중일 때 학습을 할 수 있는 사이버 학습을 시작하게 됐다. 아픈 학생들을 위한 실시간 사이버 화상 교육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시초이다. 이후 교육의 효과가 인정되어 국정감사에서도 화제가 되었고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과학기술부)는 ‘건강장애 학생을 위한 화상강의 위탁교육기관’으로 더불어하나회를 지정했다.

    현재의 온라인 수업 방식이 있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2004년 사설 유료 인터넷 교육사이트를 이용해 16명을 대상으로 인터넷 수업을 진행했지만 실시간이 아닌 이미 만들어진 동영상을 다운받다 보니 호기심 많은 학생들의 흥미를 채워줄 수 없었다. 그래서 프로그램 제작사와 수많은 협의와 노력을 통해 화상회의용 프로그램을 수정했다. 이와 더불어 오프라인 형태의 수업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현재 꿈사랑사이버학교에서 맡고 있는 경남, 부산, 대구, 경북, 울산, 광주, 전남, 전북 지역을 각각 연 2회 이상 찾아가서 간담회도 가진다. 간담회에는 장학사와 학생, 학부모들이 참가해 학습지원 문제와 향후 개선 방향에 대해 논의한다.

    안병익 회장이 소아암으로 투병 중인 초등학생의 인터넷 동영상 수업을 지켜보고 있다.

    ◆봉사활동은 신앙

    주위 동료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기도 하고 등산, 낚시 등의 다양한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봉사활동이라는 색다른 부문에 도전하게 됐다. 아픈 아이들의 가정이 많은 치료비와 그외 부대 비용으로 인해 가정형편이 어려워질 수 있어 아픈 것도 힘든데 배움에 대한 희망까지 잃게 될까 봐 봉사활동으로 아이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재미나게 책임감을 가지고 하자고 했던 것이 어느덧 햇수로 20여년이 넘게 흘렀다. 이제는 일상이 된 봉사활동이지만 어머니와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다. 농번기에 한 번도 찾아가지 못하고 자녀(1남 1녀)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이해가 있기에 더 열심히 활동할 수 있기도 하다.

    그가 봉사활동에 모든 열정을 쏟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남다른 체험을 하고 느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5년께 부산의 한 병원에서 아들과 비슷한 느낌이 오는 아이를 만났다. 그때 안 회장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것만 같았다. 저 애가 만일 내 자식이었으면 어떤 심정이었을까 하는 역지사지의 생각이 들었다. 자정께 집에 도착해서 일부러 자는 아이를 깨워 보니 건강하게 자라고 있음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이 아이가 건강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아픈 어린이들을 위해 봉사활동에 헌신할 것이라고 결심했다.

    봉사활동을 그만두고 싶었던 위기는 없었을까. 안 회장은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지난 2001년 12월 31일 부산 모 병원에서 골수이식한 환자가 부작용이 나타나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병실을 찾았는데, 도착하자마자 숨을 거뒀다”며 “병실 창문 가에 노을이 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은 누군가를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아 많이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때는 무상함에 빠져 한두 달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다시 심신을 추슬러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그는 몸이 불편하거나 항암치료 등으로 지쳐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환자들을 위해 △아이들과 부모의 아픔을 같이하자 △많은 사람에게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대변자가 되겠다 △대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겠다 등의 3가지 모토를 가지고 접근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암환자들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학교는 친구들을 사귀고 사회를 배워 나가는 공간이지만 암 등의 큰 병이 발병하면 모든 면에서 사회와 단절되고 치료가 끝나면 학생들이 돌아갈 수 있는 친구나 공간(학교)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배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 회장은 “의학기술의 발달로 아픔은 치료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사회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교육이기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그의 바람대로 꿈이 있고 희망이 영글며 사랑이 엮어지는 꿈사랑사이버학교의 성장을 기대해본다.

    일과 가족을 제외하면 봉사활동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안 회장과 이야기를 나눈 내내, 그리고 돌아섰을 때에도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에게 별명을 붙인다면 ‘봉사활동교의 교주 안병익’이 안성맞춤일 것 같다고.

    글=권태영기자 media98@knnews.co.kr

    사진=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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