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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의 교훈/이상권기자

  • 기사입력 : 2009-10-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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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발이었다. 한결같이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끈이 있는 속칭 ‘조리’형 샌들을 신었다. 검은 바지와 치마, 흰 와이셔츠 교복은 모두 꼭 같은 모습으로 비쳤다. 무표정한 얼굴. 손엔 태극기와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사진 피켓이 들렸다. 하염없이 흔들었다. 막연한 ‘코리안 드림’은 아닐지, 역설적 슬픔마저 묻어 났다.

    지난 22일 이 대통령이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 도착했을 때다. 가난에 전 학생과 시민의 환영행렬이 이어졌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약 1시간 거리엔 차량과 일반인의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오직 군인과 경찰의 인간띠만 이어졌다. 반대차선도 마찬가지였다. 방문단이 지나는 도로와 맞닿은 길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차량과 인파가 멈춰 있었다. 과거 1960~70년대 우리의 모습처럼.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23일 이 대통령에게 앙코르와트 시찰을 요청했다. 한국 수행단을 위한 특별전세기까지 제공, 동행하는 등 극진히 예우했다. 유적지 내에는 일반인의 입장이 통제됐다. 총리는 연신 땀을 닦으며 이 대통령을 안내했다. ‘아세안+3’ 정상회의를 위해 이날 오전 태국 출국 예정이던 일정까지 연기했다. 우리나라는 캄보디아에 2억 달러 지원 등을 약속했다.

    1960년대 캄보디아는 ‘동양의 흑진주’로 불렸다. 70~80달러에 불과했던 우리나라보다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높았다. 아시안게임을 가장 먼저 유치하려 했을 정도다. 앙코르 시대 (9~14세기)에는 베트남, 라오스, 태국까지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GNP 730달러의 세계 최빈국이다. 국민 절반가량은 빈곤선 아래서 연명하고, 국가재정의 적잖은 부분이 외국 원조로 운영된다. 1975년부터 4년간 ‘킬링필드’로 대변되는 대학살의 아픔을 겪었다. 인구 700만명 중 2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라는 거덜나고 국민은 웃음을 잃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에 뒤바뀐 두 나라의 현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달러 지원을 바라며 먼 나라 국기를 하염없이 흔들었던 불과 30~40여년 전 우리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겠다.

    이상권기자(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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