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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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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정재학

  • 기사입력 : 2011-10-1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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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날도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하늘이 죽어서 조금씩 가루가 떨어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조차 제대로 짓지 못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피뢰침 위에는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암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맥박이 미친 듯이 뛰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손톱이 빠지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목에는 칼이 꽂혀서 안 빠지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펄떡거리는 심장을 도려냈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담벼락의 비가 마르기 시작하는데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

    - 시집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중에서


    ☞ 정재학 시인은 고등학교 선생님입니다. 이 한 편의 시로 우리에게 너무나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정재학 시인은 뛰어난 변주를 하는 시인입니다. 기타를 연주하는 실력도 뛰어나서 보컬그룹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답니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는 문장을 반복하며 이 시는 다양한 변주(연주)를 시도합니다. 그의 시가 조금은 그로데스크하고 비현실적인 데 반해 이 시는 참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이 드는 시입니다. <피뢰침 위에 헐렁한 살 껍데기가 걸려 있>다고 하고 <누군가 나의 성기를 잘라버렸>다고 하는데도 그렇습니다. <어머니>라는 상징과 <밥>이라는 양식이 결합되어 그런가 봅니다. 어머니가 <촛불>로 <밥>을 지으신다는 비현실적인 말을 하는데도 우리는 그것(환상)을 통해 마치 어떤 다정함이나 친근감의 세계를 느끼게 되는가 봅니다.

    반복은 음악의 형식입니다. 반복은 친근감을 줍니다. 반복은 마치 주술과 같습니다. 우리도 곧 따라 중얼거리게 됩니다. 자, 우리도 이 시를 패러디해 봅시다.

    - 유홍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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