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사람속으로] '자연의 소리' 연주하는 창원 북면 불광암 조월 스님

자, 들어봐요! 풀잎소리, 햇살소리, 이슬소리…

  • 기사입력 : 2011-11-29 01:00:00
  •   
  • 창원시 북면 신동마을의 불광암에서 조월 스님이 비천금을 연주하고 있다.


    “이 소리는 아무리 미워할래도 미워할 수가 없제. 하늘의 소리, 땅의 소리인기라. 얼마나 좋은가.”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정신으로 듣는 소리가 무엇일까. 자연의 소리다.

    그 자연의 소리를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을지 수십년간 연구해온 사람이 있다. 그는 의외로 스님이었다.

    스님은 자신의 소리 연구가 또 다른 방식의 수행이라 여긴다.

    창원시 의창구 북면 무곡리 큰길에서 신동마을로 들어가니 대문 기둥에

    ‘불광암’이란 푯말이 붙은 작은 암자가 나온다.

    그곳에서 조월 스님(58)을 만났다.

    스님은 자신이 고안해 만든 악기를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방법으로 자연의 소리를 담은 연주를 하면서 유명해진 바 있다.

    지난해 소리를 담은 CD앨범 1만 장을 내기도 했다.

    언론매체들의 인터뷰 요청이 많았지만 토굴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했다.

    스님은 언론과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7~8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비천금, 그리고 자연의 소리

    “일단 소리부터 한 번 들어봐야지.”

    불광암에 들어서자 조월 스님은 다짜고짜 자신이 만든 악기들이 있는 암자의 불당으로 이끈다. 스님은 다 떨어진 30년 된 누더기 옷을 걸친다.

    “소리도 하나의 수행이야, 이 누더기 옷을 입어야 되지.”

    옷을 다 입은 스님이 불당 한쪽의 담요를 걷어내자 가야금도 아니고 거문고도 아닌 길이 4m가량 되는 40현의 악기가 나온다. 비천금(飛天琴)이다. 7년 전 70년 된 오동나무를 발견하고 가야금과 거문고 등을 합쳐 스님이 직접 제작한 악기이다. 제작하는 데만 4년이 걸렸고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란다. 이 악기의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평안해지고 나도 모르게 하늘로 올라가는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비천이라 이름 붙였단다.

    거두절미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연주가 아니다. 서 있는 상태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는 스님의 두 손은 비천금의 현을 자유자재로 쓰다듬고 있다. 현을 퉁기는 것도 아니고 쓸어내리는 것도 아닌 주무르고 있는 듯했다. 그 희한한 광경에서 풍겨나오는 소리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풀잎 소리, 햇살 소리, 바람 소리, 태풍 소리, 벌레 소리, 물방울 소리, 별 소리, 빗소리, 이슬 소리….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자연의 소리가 모두 담겨 하나의 음을 타고 정숙하게 들려온다.

    “새벽에 연잎을 봤는데, 연잎 위에 물방울이 동글동글 맺혀 있더라. 그 물방울 속에 별들이 환히 비쳤고, 바람이 쉬~ 불어오니까 물방울들이 아글아글거리는 거야. 하늘을 쳐다보니 은하수 별들이 자글자글하는 거야. 내 마음을 비우니 이 모든 모습이 소리로 들려오고, 이 소리를 그대로 들려주는 것뿐이야.”

    15분여 동안 비천금 소리를 들려준 스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요즘처럼 많은 음을 가진 소리는 소리가 아니야. 일성, 이성, 한두 가지 소리가 진음이지. 진실이 담겨 있어야 돼. 풀잎 하나, 물방울 하나의 그 작은 소리가 그토록 중요하고, 그 소리를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비천금을 만든 거지.”





    ◆악보도 없는 즉흥의 소리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소리를 매번 똑같이 표현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일까. 스님의 비천금 소리는 놀랍게도 악보가 없다. 머릿속에 기억해서 내는 소리도 아니다. 하루하루, 그때그때 내는 소리는 다 다르다. 비천금의 소리를 내는 기법도 유일하지만, 악보가 없으니 조월 스님만 낼 수 있는 선율이다. 배울래도 도통 배울 수가 없다.

    “별들이 이야기해주고, 풀잎들이 이야기해주는데, 악보가 뭐가 필요하겠어. 자연이 근본을 말하고 있고 난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 그 자연의 말을 따라가면 되는 것 아닌가. 소리를 내다 보면 어느새 내 맥박이, 내 오장이 허공을 통해 자연과 연결되고 노래가 되어 나오더라.”

    자연의 모습을 소리로 찾아내고, 그 느낌을 따라 즉흥적으로 소리를 내는, 그야말로 천부적인 기재를 가졌다. 지인들은 스님을 ‘모차르트 스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스님이 내는 소리를 어떻게 물려줄 거냐고 묻자 “자연의 소리를 듣고 하는 거라 따라할 사람이 없어. 또 어떻게 가르치겠노. 그냥 내 혼자 하다 죽으면 끝이지.”


    ◆35세의 출가 … 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이 처음부터 소리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대에 피리를 직접 만들어 음악을 연주하기도 했지만, 자연의 소리에 집착하기 시작한 때는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35세 때였다.

    “청담 스님의 ‘성불의 길’이라는 책을 읽는 순간 마음이 탁 트이고 시원해지더라. 깨달음을 받고 자전거를 타고 벌판과 강을 지나가는데 땅이 꿈틀대고 하늘이 울리는 듯한 우주의 소리가 들려왔지. 누이에게 ‘낙엽 지는 날 밝은 달을 따러 갔다고 전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출가를 했지.”

    쌍계사를 찾아간 스님은 그러나 6개월 만에 사찰을 뛰쳐나왔고, 자신도 모르는 불안감이 찾아들면서 다시 성철 스님이 있던 해인사 백렴암을 찾아갔다. 이후 통도사에서 계를 받고 수행에 전념했다.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자연의 소리는 더 간절하게 들려왔고, 그 자연의 소리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어 갔다.

    “수행을 하면서 솔바람 소리를 듣기 위해 깊은 산속에 들어가 텐트 같은 걸 치고 밥도 안 먹고 며칠째 있었지. 그러다 보니 소리가 들리는기라. 하도 그 소리가 좋아서 배고픈 것도 몰랐고, 결국 쓰러져서 ‘닝기루’(링거)를 맞아야 했지. 마음도 비우고 배도 비워졌을 때 자연의 진짜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이후 스님은 수시로 홀로 산속에 들어가 하늘을 보고 누운 채 오랫동안 자연의 소리를 듣고 내려오곤 한다.

    스님의 이 같은 영감은 비천금에만 응용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만든 피리, 퉁소를 비롯해 피아노로도 자연의 소리를 즉석에서 표현할 정도로 다재다능하다. 악기 다루는 법은 어디서 배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혼자 독학으로 터득한 것이다.

    “악기는 도구일 뿐, 자연의 소리만 들으면 무슨 악기든 저절로 소리를 낼 수 있는기라.”





    ◆깊디 깊은 소리, ‘천고’를 만들었으면

    스님은 마지막 바람이 있다. ‘천고(天鼓)’를 만드는 것이다. 스님이 이름 붙인 천고는 북이다. 지름이 무려 6m나 되는 집채만 한 북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은 5m 정도 된다고 한다. 이보다 더 큰 천고를 창원에서 만들고 싶다고 한다. 천고를 만들어 자신의 비천금과 함께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생애 더 이상 바랄 게 없단다.

    천고를 만드는 데는 테를 만들 육송이 필요하고, 90마리 소가죽이 필요하단다. 3억원 정도 든단다. 스님 혼자서는 엄두를 못 내는 규모다.

    “땅을 진동시키고 하늘을 울릴 수 있는 음계. 그 음계를 낼 수 있는 게 천고야. 이 하나의 소리는 백만, 천만의 사람을 모을 수 있는 힘이 있어. 보기만 해도 좋은데 아주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천고의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어. 우우우우우우웅~ 하는 그 소리를 들으면 사람들의 다 다른 생각들도 한 생각으로 모일 수 있지.”


    ◆조월 스님= 양산 통도사 서운암에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을 도자(陶磁)로 재현해낸 ‘16만 도자대장경’ 제작을 1년여 동안 맡기도 했다. 스님은 이후 서운암 근처 토굴에서 수행을 하다 5년 전 고향인 북면으로 내려와 암자에서 홀로 수행을 하고 있다. 지난 2004년 22현 가야금의 한 종류인 탄공금을 직접 만들어 독특한 방법으로 자연의 소리를 연주해 유명해졌다. 스님은 은둔생활을 하면서 7년 전인 2005년 70년 된 오동나무를 발견하고 자연의 소리를 그대로 담을 수 있는 40현의 비천금을 탄생시켰다. 스님은 경남, 울산 등지에서 크고 작은 공연을 통해 자연의 소리를 선사하고 있다.


    글= 김호철기자 keeper@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호철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