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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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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이 존재하는 곳- 이수명

  • 기사입력 : 2011-12-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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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단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계단을 생략하고 계단을 끌어내리고 아이들이 놀고 있다.

    계단이 존재할 곳은 어디인가



    계단끼리 부딪쳐 구부러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

    굽은 표면 위에서 구부러지는 아이들.

    아이들의 불가능한 배열로 계단은 공평해지고



    누구의 입김이 와서 그을음이 이토록 연약하게 걸려

    있기에 아이들이 계단을 떼어내려는 것일까

    계단을 밟고 다니도록 벌을 내린 계단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인가



    허공을 흘러내리는 아이들

    계단이 놀고 있다.

    ☞ 계단이라고 하는 상징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계층간의, 계급간의 신분을 나타내고 차별을 나타내고, 인간의 삶이 공평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할 때 쓰이는 것이지요. 현대사회는 과거 신분제도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치사하고 더럽고 차별성이 존재하는 사회라고 해요. 엊그제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그이는 아이의 교육을 위해 투잡을 뛴다고 하더군요. 새벽 두 시까지 대리운전을 해서 버는 돈이 삼만원. 정확히 대리운전 한 건을 하면 삼천이백원이 자기한테 떨어진다고 하더군요. 그분한테 이 사회와 돈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렇게 건강하게 고군분투하며 자식교육을 시켜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사회는 그만한 대가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세상이라지요.

    이수명 시인은 이 시 속에 아이들을 등장시켜서 계단을 가지고 놀도록 했어요. 아이들은 아직 계단이 존재하지만 덜 존재하는 존재, 아이들은 계단끼리 부딪쳐 구부러지는 것조차 즐겁게 느끼지요. 시도, 삶도, 다 아이들의 놀이만 같았으면요. 빌어먹을, 그렇지만 우리는 잘 놀 줄조차도 몰라요. 아마도 당신네들이 연말 모임 같은 데서 노는 방식도 다 그렇고 그럴 걸요. 계단을 과시하고, 계단을 비판하고, 계단을 부러워하고, 계단에 주눅이 들고, 온통 계단 이야기뿐일걸요. -유홍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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