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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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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소감- 조문자씨

나에게 달려든 무한한 문학의 세계

  • 기사입력 : 2012-01-0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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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작불 난로 위에 놓인 싯누런 주전자도 세월의 더께가 끼어 군데군데 일그러졌습니다. 나는 음전한 신부처럼 다소곳이 동글 의자에 기대어 앉아 통유리창 너머로 휘날리는 흰 눈을 바라봅니다. 어머니의 아흔네 번째 겨울입니다.

    청도라지빛 하늘만 보이는 산속에서 세속을 멀리한 수도자처럼 초지일관 글만 썼습니다. 고라니가 마당으로 내려와서 시시덕거리고, 다람쥐가 꽃을 꺾어 놓고 갑니다. 생쥐가 신방을 차렸는지 천장에서 달그락거립니다. 참새는 툇마루에 똥을 싸 놓습니다. 그리 요란을 떨던 놈들도 다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명자 꽃이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자기 빛깔을 잃지 않고 설이 지나면 이글거리는 몸짓으로 봄을 준비합니다. 강렬한 빨간색이 스물여덟 살 아들의 웃음을 닮았습니다. 삶도 자기 몫의 웃음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별을 따는 깨끗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벗어난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생전에 늘 창문을 열어 놓으신 어머니, 고독한 사람일수록 창문을 열어 놓고 산다지요. 어머니, 이제 창문을 닫으셔요.

    문학의 무한한 세계가 어쩌자고 잠 못 이루도록 기나긴 나의 밤으로 달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지름길이 없습니다. 치열한 창작의 혼입니다. 등 뒤에서 아무도 모르게 지도해 주신 스승님께 엎드려 큰절 올립니다. 묵묵히 뒷바라지해 준 가족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결코 혼자선 나아갈 수 없는 순례자의 길이었습니다.

    ◇1954년 전남 목포 출생 ◇전주 한일장신대 신학과 ◇대한 예수교 장로교회 전도사로 30년 시무 ◇퇴직 후 산속에서 전원생활 ◇제4회 농촌문학상 ◇제5회 기독여성문학상 ◇제11회 들소리문학상 ◇제6회 서울 중구 문예 최우수상 ◇제4회 통일문화제 문학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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