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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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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장애인 탁구·컬링 국가대표 정영아씨

두 손과 손가락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볼 수 있고 앉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기사입력 : 2012-01-1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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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 탁구 국가대표인 정영아씨가 런던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창원시장애인복지관 체육관에서 백핸드를 연습하고 있다.

    휠체어를 탄 정영아씨가 탁구대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해 여름과 겨울, 전국장애인체전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한 선수가 탁구와 컬링 두 종목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하계와 동계체전을 완전히 접수해 버린 것. 게다가 이 선수는 아직 서른둘의 아가씨, 평일에는 문화센터에서 꽃꽂이와 리본공예를 배우고 주말에는 교회를 나가는 평범한 경상도 처녀란다.


    평범한 여자의 삶을 꿈꾸다

    정영아씨는 의령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 슬하에 5녀1남 중 넷째로 태어나 자랐다. 창원문성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해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다.

    당연히,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며 부모님을 봉양하는 보통 여자의 삶을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스물네 살 먹던 2002년, 이루기 어렵지 않을 것 같던 그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청천벽력이 영아씨를 덮쳤다.

    지인들과 등산을 하던 중 추락사고를 당한 것. 그날 사고는 영아씨 삶의 궤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고 말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려 다시 열심히 달려보자 다짐했을 때 이미 오른쪽 다리 무릎관절 아래가, 왼쪽 다리 허벅지 아래가 절단된 상태였다.



    혼자 다른 세상에 살았다

    무엇보다도 영아씨를 절망케 했던 것은 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었다. 없는 것을 갈망하는 것보다 있던 것을 잃은 후에 겪는 고통이 더 격렬한 법.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말, 생경한 광경을 슬금슬금 훔쳐보는 듯한 시선이 뾰족한 가시가 되어 가슴에 박혔다.

    “어느 날 백화점을 갔는데 한 꼬마가 ‘엄마, 저 누나 봐. 다리가 없어’라고 천진난만하게 소리쳤어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다리가 없어졌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거든요. ‘나도 너처럼 두 다리가 멀쩡했었다. 언젠가 너도 나처럼 될 수 있다.’ 이런 원망과 울분이 가득한 시절이었습니다. 2005년까지 내리 3년을 집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해 왔던 게 아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24시간 내내 괴로웠어요. 꼭 저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극심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오래도록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어요.”






    탁구와 컬링을 만나다

    어둡고 긴 터널을 홀로 지나 오던 영아씨를 바깥으로 끌어낸 것은 탁구였다.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던 언니 손에 이끌려 창원시장애인총연합회 사무실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연합회사무실이 창원종합운동장 내에 있다 보니 오며 가며 눈에 익은 것이 운동이었는데, 어느 날 탁구채를 잡아 몇 번 공을 튀겨 보다 그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공의 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탁구를 할 땐 마치 빛이 가득한 세상으로 서서히 걸어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첫발을 디딘 영아씨의 탁구실력은 2005년 창원시장애인종합복지관 체육재활팀 김우진 감독을 만나면서 예리하게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2007년 전국장애인체전에서 두각을 나타내 은메달을 획득하더니 2009년부터 작년까지 전국장애인체전 3연패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0년에는 베이징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거머쥐면서 국내 장애인탁구 1인자로 올라섰다.

    곧이어 컬링에도 관심을 가져 2010년 전국동계장애인체전 2위, 전국휠체어컬링선수권대회 1위를 하더니 작년 전국동계장애인체전에서는 1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올림픽에 꼭 나가고 싶다

    영아씨는 매일 오전 복지관에서 2시간 정도 탁구수업을 받고 점심을 먹은 후 개인적으로 탁구장을 찾아 훈련한다. 현재 목표는 올해 여름에 열리는 런던장애인올림픽 출전. 올림픽에 나가는 상상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포인트를 획득해야 하기에 작년만도 다섯 번이나 국제대회에 나가 점수를 쌓았다. 사비를 털어 활동하다 보니 대회 출전 한 번에 수백만원이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가 만만치가 않다.

    “다 가족들에게 진 빚이죠. 스폰서를 구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게 어디 쉽나요. 뛰어난 비장애인 선수들도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데요.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는 알아봐주겠지,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내 길을 가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원망하지 않는다, 감사한다

    “한번은 사림동에서 집까지 택시를 타려고 기다렸어요. 3시간을 그 자리에 꼼짝않고 있었는데, 100대가 넘는 택시가 못 본 척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해가 다 져서 직장을 마치고 온 언니가 데리러 왔는데 고스란히 뒤집어 쓴 먼지로 콧구멍까지 새까맣더군요. 그땐 정말 죽을 만큼 마음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이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합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요.”

    영아씨는 그저 감사하단다. 탁구를 하면서부터 손이 있어서, 손가락이 있어서, 두 눈이 있어서, 앉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한다.

    “할 일도, 꿈도 많은데 장애로 절망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저는 압니다. 그럴수록 더 밖에 나오길 꺼려하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혼자 머릿속으로 구축한 세상은 진짜 세상이 아니에요. 현실과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서면 저절로 알게 됩니다. 원망이 사라지고 무한한 감사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을요.”

    글=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사진= 김승권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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