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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국산장미 재배·품종개발 전도사 김원윤 씨

“국산 장미 꽃 활짝 피워 로열티 받아야죠”

  • 기사입력 : 2012-02-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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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시 진례면 김원윤 도원장미 대표가 장미 국내 육성품종 현장평가회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원윤 대표가 장미 국내 육성품종 현장평가회장에서 장미에 물을 주고 있다.



    “장미꽃 한 송이 그대의 옷깃에 꽂아주면 너무나 어울려~♪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연인들이 가장 많이 주고받는 장미. 너무도 화려한 이 꽃은 생일 축하나 사랑 고백에 빠질 수 없는 소품이다. 더욱이 우리나라 화훼농가의 대표적인 품종이면서 화훼산업의 일등공신이기에 생산농가나 소비자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꽃 중의 꽃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키우는 장미 대부분은 외국산이다. 특히 UPOV(국제신품종보호동맹) 가입 이후 외국산 화훼품종을 심을 때 상당한 로열티 부담을 안고 있다. 때문에 국산 장미품종의 육성은 우리 농업계의 절실한 과제다. 이런 농가의 어려운 현실 앞에 국내산 장미 재배로 로열티 극복에 앞장서고 있는 장미개발 명장이 있다. 바로 김해시 진례면에서 장미재배와 품종육성에 힘쓰고 있는 김원윤(62)씨다.


    미래 전망과 장미 매력에 빠져

    지난 3일 오전 김해시 진례면 담안리 도원장미원 김원윤씨의 농장.

    한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쳤지만 햇볕을 머금은 비닐하우스에는 반쯤 닫힌 꽃봉오리부터 기지개를 켠 장미까지 형형색색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사진에 관심에 많아 군 제대 후 사진관을 운영하던 김씨는 25살이던 1975년 장미 농사를 하던 둘째 형의 모습을 보고, 전망이 밝을 것이란 생각에 장미 재배로 전향했다. 그는 가시가 있지만 봉오리와 만개가 하루에 펼쳐지는 장미가 다른 꽃에 비해 유독 매력적으로 끌렸다고 소회했다.

    하지만 농사를 처음 시작할 당시는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었고, 지금처럼 품종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외국산 장미를 재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로열티 비용에다 모종값까지 지불하고 나면 땀흘린 대가는 너무나 미비했다. 농사를 망칠 때면 고스란히 적자로 돌아왔다. 이는 김씨뿐 아니라 장미를 재배하는 전국의 농민이 겪고 있던 고충이었다.



    국내산 장미 재배 도전

    로열티 부담을 견디다 못한 김씨는 15년 전부터 모두 국내산 장미로 대체했다. 당시에는 무모한 도전이란 말도 나왔다.

    “전량 국내산 장미로 바꾸는 것은 모험이었지만 로열티 부담이 너무나 컸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그리고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결심하게 됐어요.” 바꾼 이후 6년 동안은 제대로 수입을 얻지 못했다.

    국내산 장미는 시장성이나 품질, 수확량, 병충해에 대한 내성 등 위험 부담과 편견으로 화훼농민들이 재배를 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촌진흥청의 개인육종사업계획과 경남도 농업기술원 등의 지원으로 차츰 뿌리를 내렸다.

    김씨는 지난 2009년 48만달러어치의 장미를 일본에 수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총 9000여㎡에 달하는 그의 비닐하우스에는 장미재배실과 전용육묘장, 교배온실 등이 갖춰져 있다. 모두 국내산 장미다. 이 중 수출 주품종은 엘로 킹, 피스 원, 프리 선 등 11종에 달한다.

    그는 수년간 수억원의 매출액을 올려 안정을 찾았고, 장미재배 농가의 성공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수차례 고비와 실패, 좌절 그리고 성취

    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는 쓰디쓴 실패와 좌절을 맛보아야만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87년 7월 내습한 태풍 셀마 때다.

    은행 대출로 수억원을 투자한 시설하우스들이 폐허로 변했고, 단 한 포기의 장미도 건지지 못했다. 그해 진 빚이 무려 5억원가량으로 빚더미 신세였다. 장미농사의 꿈을 완전히 접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리고 지난해 구제역 파동에다 일본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로 인해 또 한 번 타격을 입었다.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는 연료비는 또다시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김씨는 “잎사귀 하나당 1200원의 로열티를 줬지만 지금은 비용이 줄어들어 국내산 장미를 재배한 것이 큰 성과가 됐다”면서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국산품종 개발로 로열티 수입을

    그는 국산장미 재배에 안주하지 않았다. 지난 2005년부터 정부의 국산장미 유종기술을 전수받아 장미 품종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내산과 외국산의 접목, 국내산과 국내산의 접목 등 다양하고 새로운 품종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99%는 실패했다. 그는 1%의 성공을 위해 묵묵히 열중했다.

    “국산장미를 개발하는 데 3년에서 5년이 걸리는데 99%는 실패합니다. 단 1%의 성공은 장미의 키와 수확량 등을 보고 최종 결정돼요. 매일 새벽 5시30분에 하우스에 나가 상태를 확인하고, 수십종의 품종 접목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는 △뉴갤럭시 △뉴캔디 △버블핑크 △라띠 등 4개 품종을 개발해 품종등록을 마쳤고, 계속 새로운 품종을 시험재배 중이다.

    국산장미의 개발성공으로 그는 네덜란드로 장미 수출 길이 열리면 오히려 외국으로부터 로열티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로열티 부담으로 국산장미 재배에 나선 그가 이제는 로열티를 받을 상황이 된 것이다.



    국산장미 전도사, 우리 것이 세계 제일

    김씨는 국산장미 시험 재배 이후 국내 장미농가에 국내산 장미의 우수성을 알리고, 국산장미 재배 확대를 위해 사비를 들여 현장평가회를 열고 있다. 구제역 파동으로 인해 지난해 취소됐지만 지난 3일 열린 현장평가회까지 모두 5번이나 개최했다.

    그는 지난해 태풍 ‘곤파스’에 의해 피해를 입은 충남 서산 장미재배농가에 국산장미 종묘 ‘필립’과 ‘한마음’ 등 5만 본을 기증하기도 했다. 태풍 피해 농가를 돕는다는 뜻도 있지만 우수한 국산장미 품종재배 확대를 통해 화훼산업 활성화에 더 큰 의미를 뒀기 때문이다.

    “국내산 장미, 예쁜 데다 품질도 좋고 정말 다양해졌습니다. 외국산만 고집한다면 계속 로열티를 줄 수밖에 없고, 의존해야 하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제는 국내 장미를 세계적인 품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국산장미 전도사가 된 그가 국산장미 품종 개발과 재배, 그리고 농가 확대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다.


    글= 김정민기자 isguy@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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