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9일 (월)
전체메뉴

11층- 최석균

  • 기사입력 : 2012-02-09 01:00:00
  •   


  • 밀리다보니 벼랑

    베란다라고 불러야 하나

    대청마루쯤으로 여기고

    바깥 구경을 하며 바람을 쐰다

    물을 정수기에 걸러 마시듯이

    바람도 온전한 바람이 아니고

    방충망과 정화기로 거름 바람이다

    어쩌다가 물과 바람마저

    걸러서 들이켜는 길까지 왔을까

    겁도 없이 저녁마다 올라와

    아침마다 뛰어내리는

    아찔한 벼랑


    ☞ 이 도시의 곳곳에 아파트들은 1자(字)로 서 있습니다. 하나같이 직립해 있는 이 위험천만(?)한 주거용 공간의 11층에 시인은 살고 있나 봅니다. 맞습니다. 이 시의 경고문을 빌려 말하건대 어쩌면 우리는 모두 11층에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겁도 없이 저녁마다 올라와’ 이 직립의 공간 속에서 잠을 자고 사랑을 하고 밥을 먹고, ‘아침마다 뛰어내리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인생이 강퍅하고 가파르고 늘 위험하지요.

    그러나 이 ‘벼랑’에도 오래 살다 보니 정이 드는 법. 어느덧 이 ‘벼랑’만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가 되었어요.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맙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사는가, 질문하지 말고 이 삶과 공간을 사랑합시다. 차라리 그게 더 낫지 않겠어요.

    -유홍준(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