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고은
- 기사입력 : 2012-02-2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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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삼년생 똥도야지가 똥 먹고 나서 보는 멍한 하늘을 보고 싶으오
두어달 난
앞집 얼룩강아지 새끼의 빠끔한 눈으로
어쩌다 날 저문 초생달을 보고 싶으오
지지난 가슬 끝자락 추운 밤 하나
다 샌 먼동 때
뒤늦어 가는 기러기의 누구로
저기네
저기네
내려다보는 저 아래 희뿜한 잠 못 잔 강물을 보고 싶으오
그도 저도 아니고
칠산바다 융융한 물속의 길찬 가자미 암컷 한두분
그 평생 감지 않은 눈으로
조기떼 다음
먹갈치떼 지나가는 것 물끄럼 말끄럼 보고 싶으오
폭포나 위경련으로 깨달은 바
너무나 멀리 와버린
내 폭압의 눈 그만두고
삼가 이 세상 한결의 짐승네 맨눈으로
예로 예로 새로 보고 싶으오
거기 가 있다가 천년 뒤에나 오고 싶으오
☞ 왜 시인은 ‘한결의 짐승네 맨눈’으로 ‘삼가 이 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걸까요. 혼탁해진 우리네 인간의 눈이여. ‘평생 감지 않은 눈으로’ 물고기처럼 세상을 ‘물끄럼 말끄럼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건 또 왜일까요.
멀리 떠나왔지만 여전히 우리(인간)는 자연의 소산입니다. 우리의 몸은 (자연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주도 삼년생 똥도야지가 똥 먹고 나서 보는 멍한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지난 가슬 끝자락 추운 밤 하나/다 샌 먼동 때’ ‘희뿜한 잠 못 잔 강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압니다. 그러나 그걸 너무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 -유홍준(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