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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을 말한다 (34) 작곡가 김한기 창원대 교수

오선지 위에서 춤추는 ‘행복 멜로디’

  • 기사입력 : 2012-02-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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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한기 창원대 음악과 교수가 연구실에서 작곡을 하고 있다.


    지난 가을에 안면을 텄다. 그가 대학에서 오랫동안 바이올린을 가르쳐 왔다는 이유로. 바이올린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알아보다 음악인들의 추천을 받아 연락이 닿았다.

    하지만 여태껏 까마득히 몰랐다. 그가 바이올린 연주 못지않게 많은 곡을 만들고 다듬는 데 엄청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작곡을 전공한 사람도 아닌데 기사가 나가면 작곡하시는 분들이 언짢아하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먼저 꺼냈던 김한기 교수.

    몇 마디의 설득 끝에 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단순히 겸손한 어법을 구사하는 사람이겠거니 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의사가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

    김 교수는 경북사범을 졸업한 동시통역사 아버지와 일제시대에 대학까지 졸업한 서울 신여성이었던 어머니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 교수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거의 강요 수준이었요. 해부 기기를 구해오셔서 강제로 닭이랑 개구리를 해부하게 했을 정도니까요. 저야 늘 음악 생각뿐이고…. 어머니가 중간에서 맘고생을 많이 하셨죠.”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생활비를 줄여 김 교수에게 악보값을 건네곤 했다. 당시 국내에는 악보가 잘 없어 비싼 수입물량에 의존하던 때였다. 두 사람의 갈등은 그가 계명대 음대를 입학할 때까지 계속됐다.


    ▲나의 음악적 자양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 음악적 자양분은 아버지가 직접 뿌리셨어요. 집이 넉넉지 않아 고등학교 때까지 셋집에 살았는데 아버지는 ‘메시아’, ‘마태수난곡’, ‘레퀴엠’ 같은 장중한 음악을 엘피판으로, 그것도 소리를 최대로 해 감상하셨어요. 주인집 눈치도 보이고, 셋집 살면서 그런 고급 취미를 즐기는 게 어린 마음에도 불균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소리 좀 줄이자 사정하면 아버진 ‘아름다운 음악은 모두 함께 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볼륨을 더 키우셨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바흐의 곡들이 제 마음에서 잔잔한 강물처럼 흘러 오선지에 새겨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참고로 제가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가 바로 바흐입니다.”





    ▲바이올린 그리고 작곡

    그는 계명대 음대와 동대학원,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물론 창작의 끈도 놓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나운영 작곡법 책을 구해 한자투성이 구절들을 어머니께 여쭤 가며 독학했다. 그렇게 이어져온 창작열은 스물여덟 나이에 제14회 난파음악제 작곡부문 최초 입상, 이듬해인 1983년 대구직할시 승격기념 작곡콩쿠르에서 금상을 받으면서 가능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작품들은 악기도 다루고 작곡도 한 사람의 작품답게, ‘이론과 실제가 조화된’ 곡으로 평가받는다.


    ▲이 무지치의 위촉을 받다

    이탈리아 명문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한 12명의 음악인들로 구성된 세계적 실내악단 ‘이 무지치’(I Musici). 이들은 1975년 이후 방한할 때마다 ‘한국의 노래’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이들이 매년 이 시리즈 연주에 쓰일 곡을 위촉하는 작곡가가 바로 김한기 교수다. “이 무지치는 비발디의 ‘사계’를 레코딩해 베스트셀러로 만들며 유명해졌습니다. 그런 그들이 2003년 ‘한국의 사계’라는 타이틀로 음반을 발매하기로 하고 제작에 들어갔어요. 그때 제작자 회의에서 제가 이전에 썼던 작품들이 언급됐나 봐요. 그렇게 해 12개의 곡 중 5곡을 제가 편곡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매년 위촉곡을 쓰게 됐어요. 사실 음악도였을 때부터 이 무지치의 연주를 듣고 나도 저런 연주를 했으면 하고 선망했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저의 곡을 연주하는 영광을 누린 거잖아요. 얼마나 행복했을지 상상이 가시죠?”


    ▲동요와 민요에 주목하다

    김 교수의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작품번호(Opus)를 붙인 문헌적 의미가 강한 곡이 164곡, 단순번호(No.)를 부여한 곡이 194곡, 그 이후로는 주로 동요나 민요 작품들이 주종을 이룬다. 일반 대중들이 심포니 감상을 하나의 고역으로 여기는 것을 본 김 교수는 음악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본래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느꼈다. 그 이유로 주제 자체가 단순하고 내용이 명료한 동요나 민요에 주목하기 시작해 ‘파랑새’, ‘우리집에 왜 왔니’, ‘고향의 봄’ 등의 협주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특히 애착이 가는 곡을 꼽으라면 단연 2008년 이 무지치로부터 위촉받은 ‘까치 까치 설날은’을 꼽는다. 2010년 1월에 연주될 곡이라며 설날을 노래하는 동요를 주제로 바이올린협주곡을 작곡해 달라는 요청에 따라 만들어진 곡으로 윤극영 선생의 6마디의 곡을 18마디로 늘려 제작된 곡이다. 하나 더 꼽자면 작년에 작곡된 작품 163번 ‘동무 생각’ 주제의 현악합주를 위한 변주곡을 소개하고 싶단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이 마산 창신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실 때 동료교사였던 노산 이은상 선생께서 박태준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얻어 쓴 시가 동무생각이에요. 1구절의 배경은 대구 동산동, 2구절은 마산 앞바다입니다. 경상남북도의 지역색이 아주 뚜렷한 곡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곡은 작년 9월 박태준 선생을 기념하는 대구음악제에서 경북도립교향악단과 박성완 교수의 지휘로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초연됐습니다.”


    ▲유명 연주자들에게 곡을 헌정하다

    그는 훌륭한 연주자들에게 헌정하는 곡도 썼다. 2010년 창원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에게는 독주바이올린과 현악합주를 위한 협주곡 ‘아리랑’을 헌정했으며 작년 12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Sarah Chang)에게도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라는 위촉작품을 전달했다. “작년 대구에 사라 장이 연주를 왔는데 우연히 사라 장 모친 옆자리에 제가 앉게 됐어요.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모친께서 제게 딸을 위해 곡을 써달라 부탁하셨어요. 작곡을 전공하신 분답게 첫음은 G선상에서 시작하게 해 달라, 클라이막스는 화려하게 해 달라, 앙코르곡으로 쓰일 독주곡으로 만들어 달라고 명쾌한 주문을 하시더군요. 때마침 사라 장의 생일이 가까워 제목을 그렇게 붙였지요.”


    ▲하느님께 좀 따져야겠어요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히 가족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우스갯소리로 집안이 한 번에 망하려면 자식에게 정치를 시키고 천천히 망하려면 예술을 시키라잖아요. 큰아들은 바이올린, 작은아들은 플루트를 전공하고 있어요. 아직 시켜야 할 공부가 산더미입니다. 우리 집은 더 망해야 돼요. 하하하.”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교회에서 한 여학생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어린 나이에 충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미학적 감동을 받았어요. 그날 이후로 커서 꼭 피아니스트와 결혼하리라 결심을 했고, 결국 저는 꿈을 이뤘지요. 아내는 서울음대를 나온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처가의 반대가 만만치가 않았죠. 그런데 아내가 저에게 용기를 줬어요. 어느 날 저를 똑바로 보고 ‘나는 한기씨랑 살려고 마음을 먹었으니 한기씨는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우리집 일은 내가 알아 한다’고 단호히 말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아내는 유방암으로 4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어요. 우리 둘 사는 동안 사이가 참 좋아서 남들이 다들 부러워했지요. 정말 아까워요. 왜 그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을 이렇게 빨리 데려가셨는지 훗날 하느님께 좀 따져보려고요.”


    ▲교육자와 연주자, 작곡가의 면모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특별한 계획보다도 늘 그래왔듯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육자로서 학생과의 충실한 교제와 지도는 물론이려니와, 연주자로서의 면모를 다져나갈 것이라는 겸손한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작곡가의 면모도 놓칠 수는 없을 터. 오는 4월 14일에는 미국에서 버겐 심포니(Bergen Symphony)가 그의 ‘파랑새’와 ‘동무생각’을 연주할 예정이고, 6월 15일에서 24일 사이에는 이 무지치 창단 60주년을 맞아 위촉받아 쓴 ‘아리랑’이 전국 순회 연주될 예정이다. 이 곡은 2년 전 이 무지치가 김 교수에게 위촉한 곡으로 우리 민요인 ‘아리랑’을 실내악 편성에 맞추어 작년에 완성했다. 시간만 나면 니콘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즐기며 악상을 얻는다는 김한기 교수. 그의 이름으로 세계로 뻗어 나갈 작품들이 자못 기대된다.


    ★ 작곡가 김한기씨

    △1954년 부산출생 △계명대학교 음대 및 동대학원,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원 졸업 △대구·창원·마산시립교향악단 악장 역임 △현재 창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교수


    글= 김유경기자 bora@knnews.co.kr

    사진= 성민건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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