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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4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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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체험, 소상공인 삶의 현장 속으로- 조문기(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갈수록 어려워지는 영업환경…그래도 희망을 일구는 소상공인들

  • 기사입력 : 2012-04-1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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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형, 2년 반 전 한국은행 경남본부장직을 마치고 창원을 떠났던 제가 기대치 않게 경남신용보증재단 일을 맡아 다시 돌아왔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언제나 새봄과 같은 열정으로 일하시는 형의 모습은 변함이 없으시더군요.

    평생 한국은행에 근무하면서 물가, 국제수지 등 우리 경제 전체의 발전을 고민하며 일했습니다. 경남본부에 근무할 때는 틈틈이 산업현장에 들러 애로를 경청하고, 함께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우리 경제의 풀뿌리와 같은 소기업, 소상공인을 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담보능력은 부족하지만 성장 잠재력이 있고 신용 상태가 양호한 소상공인의 채무를 보증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일입니다.

    소임을 맡은 지 2개월이 지난 지금 느끼는 것은 소상공인들 삶의 현장이 안타깝게도 녹록지 않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 밤 10시가 지난 시간에 창원에서 택배대리점을 운영하는 분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저녁도 못 먹고 늦게까지 배달했습니다. 이제 마무리하고 귀가해 쉬려면 12시가 넘겠습니다.” 그는 대기업 자회사인 택배 본사가 배달 단가를 빠듯하게 책정해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합니다. 1000원 정도에 불과한 단가를 대리점과 배달기사가 2대 8로 나누어 갖게 되며, 특히 배달 차량을 운행하는 분은 건당 800원으로 하루 100개 이상을 바삐 배달한다고 합니다.

    창원 북면에서 자동차부품인 원추베어링을 생산하는 소기업 사장님은 기계 1세트로 혼자서 꾸려갑니다. 굵은 철사를 자르고 깎고 다듬어 완제품을 만들어 중견기업에 납품합니다. 직원 구하기도 힘들고 인건비도 비싸, 부인과 대학생 아들이 틈틈이 거들고 있습니다. 중견기업 생산부장을 지낸 사장님은 신공법을 창안해 그동안 일본 수입에 의존해 온 원추베어링을 국산화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마산합포구에서 20여 년간 카센터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자동차 미션 수리의 달인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싶어도 기름 만지며 일할 젊은이가 없음을 아쉬워합니다. 게다가 대기업 자동차 정비소가 대리점 형태로 주유소와 대형마트에 입점하면서 영업환경이 점점 어려워져 앞으로 동네 카센터가 사라질 것 같다고 걱정입니다.

    K형, 소상공인들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본 후에는 예전에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며 소주 한잔 기울이고 목소리 높이시던 형이 생각납니다. 우리 경제는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GNI) 2만2489달러로, 인구 4000만명 이상 국가 기준으로 세계 8번째의 고소득 국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4월 초 유엔이 산출한 국가별 행복지수 순위는 156개국 중 56위에 그쳤습니다. 경제 규모에 비해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과 행복은 못 미치는 듯합니다.

    또 중소기업중앙회 경남지역본부가 최근 경남지역 101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영상황조사 결과를 보면 도내 소상공인 63%가 ‘대물림 의사가 없다’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동안 먼 발치에서 거시경제라는 커다란 숲을 보고 일해 왔던 저는 이제 튼튼한 나무를 키우기 위해 가까이서 도내 소상공인들의 실상을 두 눈 번쩍 뜨고, 두 귀를 쫑긋 세워 들여다볼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그분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입니다.

    K형, 문득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랄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되뇌어 봅니다. “…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으므로 인해/ 단 한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지난 20년간 산업의 쌀이라는 철강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역사를 사사(社史)로 엮으시는 형을 보며 새 희망을 읽습니다. 부디 튼튼한 장수기업으로 더욱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조문기(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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