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5일 (일)
전체메뉴

나의 작품을 말한다 (37) 시인 유홍준

시는 내 삶이다

  • 기사입력 : 2012-06-04 01:00:00
  •   
  • 유홍준 시인이 하동 북천면 이병주 문학관 계단에 앉아 포즈를 취했다.


    유홍준(51) 시인, 그는 잘 생겼다. 시인이라기보다 영화배우 같다. 수려한 외모만큼이나 그의 시는 미끈하게 잘 빠졌다. 그는 2012년 현재 우리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시인이다.

    이력을 보면 그는 영화배우가 아니라, 시련을 겪는 소설 속 주인공 같다. 중학교 때 4번의 가출을 했고, 고등학교는 겨우 졸업했다. 고등학교 졸업 뒤 군대 가기 전까지 한복 바느질 3년, 제대 후 경북 영양서 산판일꾼(벌목일) 3년, 정신병원 보호사 3년, 제지회사 근로자 18년 3개월(그는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그곳이 평생직장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 외에 과일장사, 용접, 막일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다양한 이력은 그의 시 자양분이 됐다.

    지금까지 3권의 시집을 낸 유홍준 시인이 자신의 시집에 대해 말을 꺼냈다.


    ◆첫 시집 ‘喪家(상가)에 모인 구두들’(실천문학사, 2004년)은 나오자마자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해 시인, 평론가, 편집자 등 문단 관계자 150명이 투표로 뽑는 ‘가장 좋은 시집’ 부문에서 3등을 했다.

    “제지회사 다니던 38살 때 등단했고, 42살 때 첫 시집을 냈다. 첫 시집에는 40년 동안 내면을 누르고 있던 것을 돌파하려는 의지, 어떤 세계와 맞서 돌파하려던 의지가 가득 찼던 시기다. 가족사나 아버지라고 하는 제도에 맞서 이겨내려고 했다.”

    그는 “시의 바탕은 리얼리즘이고, 시를 표현해 내는 형식은 모더니즘적 지향, 그것이 저의 전략이었다. 80년대 리얼리즘 시는 민중의 삶에는 진지했지만 밀도나 긴장감이 떨어지고, 시적 치열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喪家에 모인 구두들’ 시집 후기에 그는 “꽃도 이파리도 없는 가지를 분질러 그대에게 건넵니다. 마음의 살(肉)을 모두 베어먹히고서야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는, 복숭아 씨 같은 시를 쓰고 싶었는데…만신창이의 상처만을 너덜너덜 깁고 꿰매고 잇대었나 봅니다’라고 했다.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젠장, 구두가 구두를/짓밟은 게 삶이다/… (‘喪家에 모인 구두들’)




    ◆두 번째 시집 ‘나는, 웃는다’(창작과비평, 2006년)는 그에게 고마운 시집이다. 그는 이 시집으로 제1회 ‘시작(詩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고, 문단 관계자가 뽑은 그해 ‘가장 좋은 시집’에도 선정됐다. 제2회 ‘이형기 문학상’ 도 받았다.

    “책이 많이 팔리고 좋은 상도 받게 해줬다. 2년 만에 나온 시집에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있었다. 모더니즘 경향의 시인들은 더 해체시로 가라고 주문했고,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은 서정의 옷을 입으라 했다. 고민했지만 결국 내가 가진 본래 바탕으로 가자. 타자의 시선에 연연하기보다 내 몸을 통과해 나오는 것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는 전기도 안 들어온 시골서 났고 고졸 학력에 내세울 것 없는 이력, 자신이 살아온 과정 거기에 더 솔직해지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시가 삶을 떠나 존재가치가 있을까. 시는 삶의 이야기, 삶의 체험에서 나온다. 내가 가진 불우한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위무하는 것이 시의 의무다.”

    그는 지난 2000년대 유행처럼 등장한 일군의 소위 ‘미래파’ 시인들을 비판적으로 보며 자신만의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활주로를 달린다. 활주로는 삶이다. 비상은 시에서 환유·상상인데, 난해한 시라도 발 한쪽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한다. 미래파는 공중에만 떠 있다. 다시 삶으로 착륙해야 한다. 그게 없을 때 시는 허황하다”

    아아 이 두통 지금/나에겐 직방으로 듣는 약이 필요하다/그렇다 얼마나 간절히 직방을 원했던지/오늘 낮에 나는 하마터면 자동차 핸들을 꺾지 않아/직방으로 절벽에 떨어져 죽을 뻔했다/직방으로 骨로 갈 뻔했다/오, 직방으로/… (直放)



    ◆세 번째 시집 ‘저녁의 슬하’(창작과비평, 2011년)는 5년 만에 나왔다.

    “나이도 조금 들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지만, 진짜 내 걸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객기 부릴 수 있는 나이도 지나고, 시가 풀어질까 고민했다. 시인이 습득하는 것이 있고 또 생득적인 것, 타고나는 것이 있다. 그것이 원형이다. 결국 태어나 어떻게 살았나가 삶의 총체다.”

    유홍준 시인의 총체는 과일 행상, 산판일, 하천 둑 쌓기, 고추밭 농약 치기, 시멘트 내리기, 소금자루 옮기기, 용접, 정신병동 환자 보호, 제지회사 직원 등이다.

    “어떤 시인은 이론서와 철학서로 문학의 자양분으로 삼겠지만 저는 제 삶이 시를 끌고 오고 단련시켜 왔다. 문단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워낙 많다. 그 사람들의 몫은 따로 있다. 나한테 어울리는 옷을 입고자 한다.”

    사람이란 그렇다/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사람을 쬐다)



    ◆유홍준 시인은 지난 5월 말로 이병주 문학관 사무국장을 맡은 지 딱 1년이 됐다. 매월 기본급 보너스 퇴직금 몽땅 합해서 월 150만 원이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다. 제지회사 다닐 때 이보다 많이 받았고 그땐 아내가 일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지금 요양원 간병인 일을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만족해 보인다.

    “고졸 학력으로 국립순천대학교에서 강의했다. 대학으로선 파격적 배려였다. 지금 내 월급도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너 배 불렀구나’ 할 수 있다. 시 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제 성향이 거칠다. 안 했다면 엉망진창으로 살 수도 있었다.”

    그는 네 번째 시집은 2015년이나 2016년쯤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세 권의 시집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얼추 다했다. 누구든 2~3권 낼 자양분은 있다. 지금부터가 나하고 싸움이다. 고갈되고부터 문제다. 진짜 시인은 네 권째 시집부터라는 이야기도 한다. 다잡고 채근해 다시 벼랑에 내세워야 한다.”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 생초면에서 출생. 1998년 ‘시와반시’ 신인상에 ‘지평선을 밀다’ 등이 당선돼 등단. 시집은 ‘喪家에 모인 구두들’(2004년), ‘나는, 웃는다’(2006년),‘저녁의 슬하’(2011) 등 3권이 있음. 2005년 한국시인협회의 ‘제1회 젊은 시인상’. 2007년 제1회 ‘시작문학상’, 제2회 ‘이형기 문학상’ 수상.


    글= 이상규 기자 sklee@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상규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