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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① 유홍준 시인이 찾은 '삼천포 바다'

마음이 한없이 무너질 때 그 바다가 그립다

  • 기사입력 : 2012-06-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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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선·삼천포 대교
     
    노산공원 입구.
    삼천포항.
    박재삼문학관.
    빨간 등대와 죽방렴.

    유홍준 시인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은 도내 유명작가가 쓰는 경남 여행기이다.

    유홍준·배한봉·송창우 시인은 경남의 명소나 문학의 고향을 둘러보고 느낀 감흥을 작가의 섬세한 감성으로 전할 예정이다.

    그 첫회로 유홍준 시인이 ‘박재삼 시인의 삼천포 바다’를 추억하는 글을 보내왔다.


    삼천포는 가난하다. 삼천포 바다는 낮고 처량하고 슬프다. 삼천포에 간 사람은 아무리 부자여도 가난해야 하고 아무리 행복해도 서러워야 한다. 삼천포 바다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삼천포엘 갈 때마다 나는 서럽다. 아니, 서러울 준비를 하고 간다.

    1992년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삼천포 땅에 발을 디뎠을 때의 느낌, 그 느낌을 나는 아직도 잘 기억한다. 그 햇살의 밝기, 그 오전의 길들이 주는 어떤 한적함 따위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홀로, 난생처음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렸을 때의 느낌, 그것은 마냥 깨끗한 정적 같은 것이었다.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큰 길은 차도 드물고 사람도 드물고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 내려갔다. 오전의 담장 너머엔 우듬지 동그란 호랑가시나무 한두 그루씩들이 심어져 있었고, 낮은 단층짜리 지붕과 지붕 위엔 흰 빨래들이 널려 고요히 말라가고 있었다.


    1.

    화안한 꽃밭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핀 것가 꽃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것가 참. 실로 언짢달것가. 기쁘달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사람과 산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것가.

    2.

    우리가 少時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南平文氏 婦人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헤쳤더란다.

    確實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

    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훔쳐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 닳아 마음 닳아 젖는단것가.

    3.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박재삼 ‘봄바다에서’전문


    1980년대 초반, 서울 원효로 어디께의 상록서점이었다고 생각이 된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얇은 비닐옷이 입혀진 민음사 간 박재삼 시집을 샀다. 박용래를 샀고, 김종삼을 샀고, 강은교를 샀고, 천상병을 샀다. 그리고 휘적휘적 도원동을 지나, 사창고개를 넘어, 마포구 도화동 쪽 산동네로 걸어 내려갔다. 어쩌면 그때가 내 시의 첫 출발 지점이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이해 없이, 나는 곧바로 박재삼의 시들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 박재삼‘千年의 바람’ 전문



    박재삼(1933~1997)은 이 나라의 대표적 가난과 한과 설움의 시인이다. 돈 3000원이 없어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어린 박재삼은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들어간다. 지금도 시인의 형수며 누이동생이며 조카 같은 일가붙이들이 동서금동 팔포 앞바다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어쨌거나 삼천포를 생각하면 서럽다. 통영과 목포와 여수를 생각해도 그렇지만 삼천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마음이 한없이 무너질 때, 어디론가 불쑥 내빼고 싶을 때, 항구에 묶인 배와 배처럼 누군가와 맞대고 싶을 때, 그도 저도 아니면 막소주 한 잔을 놓고 펑펑 울고 싶을 때, 나는 삼천포 생각을 한다. 삐거덕 삐거덕 묶인 배처럼 위로를 받고 위로를 하고 싶을 때 삼천포 바다를 생각한다.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삼천포 노산공원 일대에서 박재삼문학제가 열리고 박재삼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단다. 올해 첫 수상자는 구례사람 이시영 시인이란다. 수상시집이 그, 어째 요상하다.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라나 뭐라나!

    아무튼 잘 됐다. 이시영 시인은 얼굴이 길고, 술맛을 제대로 아는 시인이고, 제대로 놀 줄 아는 시인이고, 취하면 취할 줄 아는 시인이라고 들었다. 아마도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러 전국의 예서 제서 시인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래, 또다시 삼천포로 가야겠다. 이번 토요일 오후엔, 삼천포엘 가서 그 서럽고 아득하고 친근한 박재삼문학제에 온 전국의 시인들과 어울려 멋진 술판 한판을 벌여야겠다.

    더러는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고 대책 없이, 더러는 노랫가락이 튀어나오고 대책 없이, 더러는 울음이나 울분이 튀어나오고 대책 없이, 그런 자리가 있으면, 맞다. 거기가 시인들의 술자리다. 물을 것도 없이 슬며시 동석하면 된다.



    비 내리는 삼천포에 부산배는 떠나간다

    어린 나를 울려놓고 떠나가는 내 님이여

    이제 가면 오실 날짜 일 년이요 이 년이요

    돌아와요 네, 돌아와요 네, 삼천포 내 고향으로

    -‘삼천포 아가씨’ 반야월 작사, 은방울자매 노래



    벌써부터 그날 부를 노래를 나는 흥얼거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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