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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몸에 좋고 보기 좋은 집 (1) 창녕 부곡 유촌마을 고춘업씨 어머니의 집

일흔여덟 엄마에게 지어준 ‘思母家’

  • 기사입력 : 2012-06-1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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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녕군 부곡면 구산리 유촌마을에 고춘업 씨가 어머니를 위해 손수 만든 집.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게 마당에 텃밭도 만들었다.
    어머니가 항상 학포들판을 내려다볼 수있게 거실 사방에 창문을 냈다.
    고치기 전 폐가처럼 방치됐던 마구간.
    지붕과 기둥 등 뼈대를 제외하고 모두 뜯었다.
    툇마루를 넓혀 거실을 만들었다.
    완성된 집.
    고춘업 씨가 창밖을 보며 집을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집을 짓는다. 누군가에게 집은 안식처지만 누군가에게는 설움이고, 누군가에겐 기쁨이고 추억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어머니를 위한 사랑과 연민이 되기도 하나 보다.

    올해 56살의 중년 고춘업 씨. 그에겐 올해 78세가 되신 어머니가 계시다. 한평생 남편과 삼남매를 위해 살아왔지만, 세상에 태어나 어머니 자신만의 이름으로 된 그 무엇도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손수 어머니만의 집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머니의 집은 그렇게 탄생했다.


    고 씨는 몇 년 전 어머니의 집을 짓기 위해 창녕군 부곡면 유촌마을에 다 쓰러져가는 촌집을 샀다. 말이 촌집이지 사람이 살지 않은 지 수년이나 지나 집과 담이 허물어져 폐가나 다름없었다.

    고 씨가 촌집을 사게 된 것은 공기도 좋고 이웃에 어머니 또래의 노인들도 있어 어머니가 지내기 좋은 여건 때문이었다. 집에서 내려다보면 학포들판이 펼쳐져 있고, 뒤편으로 대나무와 감나무가 집을 감싸고 있는 것도 맘에 들었다. 또 구미가 당긴 것은 기와를 얹은 한옥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고 씨는 옛 한옥 형태를 그대로 살려 살고 싶다고 생각을 해 온 터다. 고 씨는 집을 짓기 전에 촌집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집의 형태를 설명했다. 어머니가 낯선 고장에서 살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머니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살고 싶다고 확답을 주었다. 어머니의 집은 그렇게 시작됐다.


    <2년간의 대역사- 마구간, 어머니 동선 살려 집으로 개조>

    집을 짓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 집은 원래 사람이 살던 안채와 소죽을 끓이고 소를 키우던 마구간 등 두 채였다. 하지만 안채 뒤편으로 대나무가 엄청나게 번성하면서 집을 반으로 부숴버릴 정도로 뿌리가 땅밑으로 얽히고설켜 도무지 공사를 할 수 없었다.

    고 씨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부인의 손을 빌렸다. 하루 동안 중장비를 불러 대나무 뿌리를 모두 제거했다. 다음부터 공사는 온전히 고 씨와 아내의 몫. 먼저 부서진 안채의 기와부터 기둥까지 하나하나 분해해 옮겨놓고 마구간을 집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마구간의 지붕과 뼈대만 남기고 벽을 모두 뜯어내고, 지붕에 비가 새지 않도록 일부 기와를 새로 얹었다. 오래된 마루가 내려앉을까 봐 나무곽을 짜 받쳐가며 일일이 손을 봤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어머니의 동선이다. 주무시는 방은 무엇보다 안락하고 따뜻해야 한다는 생각에 보온에 심혈을 기울였다. 바닥에 황토 150포대를 넣고 온돌 역할을 하는 동판을 깔았다.

    또 기름과 나무를 땔 수 있는 화목보일러를 사 직접 설치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거실에서 쉬면서 바깥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어머니 앉은키 높이로 사방이 보이는 창을 만들어 넣었다. 원래 이 집에 거실은 없었지만 마구간에 있던 툇마루를 뜯어 거실로 만들었다. 거실에서는 확 트인 창을 통해 아침에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볼 수 있어 어머니가 가장 맘에 들어 하는 곳이다.

    고 씨가 공사를 하면서 특별하게 외부에서 건축자재를 가져온 것은 예전에 집을 지을 생각으로 모아 둔 오래된 문짝 정도에 불과하다. 안채를 뜯어 나온 기와와 나무, 흙을 그대로 이용했다. 마당에서 잘라낸 대나무로 대문을 만들고, 버려진 돌과 기와로 담을 새로 쌓았다.

    연세가 많으신 어머니의 소일거리를 위해 마당에 텃밭도 만들었다.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게 바람 불 때면 은은하게 들려오는 풍경도 달았다. 부엌, 보일러실은 원래 집안에 없었지만 뒷공간을 달아냈다. 화장실도 문을 열면 사람이 바로 보이지 않게 기역자로 만들고, 창문을 통해 멀리 경치도 보이게 세심하게 배려했다. 벽에는 어머니의 건강을 생각해 산에서 황토를 퍼와 손으로 직접 발랐다. 미장에서 타일, 창틀, 방바닥 공사 등 처음부터 끝까지 고 씨가 해내고, 교사를 하는 아내가 주말마다 틈틈이 도왔다. 무려 2년이 걸린 대역사였다.


    <집을 짓는 것은 본능이다- 흙집 학교서 교육 받은 게 전부… 모르는 건 전문가 도움 받아>

    누구의 도움 없이 집을 짓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고 씨의 생각은 달랐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34~38개의 과정이 필요하고 전기나 미장 등 전문적인 손길도 있어야 하지만 연구하고 고민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 씨는 “새나 쥐가 집을 짓는 방법을 알고 태어난 것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 누구나 집을 지을 수 있다”면서 “단지 전문가들은 빨리 짓지만 보통사람들은 시일이 조금 더 오래 걸릴 뿐이다”고 말한다. 고 씨는 옛 통일중공업에서 설계와 전기 등을 다루는 부서에 오랫동안 근무해 일부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지만 집을 짓는 것은 처음이다.

    집을 지어보기 위해 흙집 학교에서 8박 9일 동안 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일 뿐이라고 한다. 고 씨는 집을 지으면서 모르는 것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을 하거나 전문가에게 전화해 물으면서 해결해 나갔다고 한다.


    <끝나지 않은 사모가- 혈액암 걸린 어머니 위해 대체의학 공부 매달려>

    고 씨의 밑도 끝도 없는 집짓기는 지난해 8월 끝이 났다. 애초 지난해 5월 8일 어버이날을 기해 집을 선물하려 했지만 마무리 공사가 안 돼 몇 달이 더 소요됐다. 입주하던 날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갖게 된 어머니는 기쁨에 아들의 손을 잡고 “그래, 내가 어떻게 니 같은 자식을 낳았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어 이렇게 호강할 줄 몰랐다”고 한없이 우셨다고 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입주한 지 서너 달 만에 어머니가 혈액암에 걸리신 것이다.

    그는 고민 끝에 항암치료를 대신해 어머니가 ‘어머니의 집’에서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도록 하면서 요즘 어머니를 위한 대체의학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글=이현근 기자 san@knnews.co.kr

    사진=성민건 기자 mkseong@knnews.co.kr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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