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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을 가다] 작가와 떠나는 경남 산책 ⑫ 배한봉 시인이 찾은 마산 창동예술촌

내 청춘이 머물던 거리는 골목마다 예술의 옷을 입고…
마산의 문화와 숨결이 있는 창동

  • 기사입력 : 2012-08-23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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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흔적 거리에는 옛 마산의 모습을 추억하게 하는 사진(사진 위)과 마산 출신 예술인들의 얼굴 사진(사진 아래)이 걸려 있다.


    마산 사람들의 추억이 깃든 오동동 문화의 거리. 


    불종거리 입구에 걸린 아치형 불종 상징물. 

    그림으로 예쁘게 치장된 골목 맨홀 뚜껑.





    골목과 건물마다 마산의 문화와 숨결이 새겨져 있는 곳, 창동은 역사다. 역사는 시간의 집적이고 기록의 유산이다. 기록은 기억하는 자의 것. 기억하지 않으면 기록할 수 없고,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도 없다. 1400년 전의 신라 삼국통일의 역사도, 600년 전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역사도 기록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복원시켜 시간의 퇴적층에 쌓인 것들을 기록할 때 역사는 생명을 가진다. 그러므로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고, 그 기록에 피와 숨결을 불어넣는 자의 것이다.

    창동은 지금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시간과 기억의 뒤편으로 흩어져간 것들이 하나씩 둘씩 예술의 이름으로 재현되고 있다. 급격하게 쇠퇴된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고 사람들이 모이도록 창원시는 지난해부터 창동에 도심밀착형 예술촌을 조성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창동예술촌’이다.

    창동은 오동동과 함께 마산의 상징과도 같은 곳. 마산은 한때 전국 8대 도시로 손꼽혔으나 지금은 창원시와 통합되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마산 택시가 전국에서 돈을 제일 잘 번다고 할 정도로 번성했다. 밤이면 창동과 오동동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거렸다. 3·15의거 때는 신마산에서 남성동 파출소와 창동 거리를 거쳐 북마산 파출소 방향의 북성로를 시민들이 달려갔을 것이다. 창원 신도시가 건설되고 활성화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한 마산은 2000년대에 이르러 경기 한파에 따른 급격한 도심 공동화로 빈 점포가 줄을 이었다. 그런 마산의 심장부 창동에 예술촌이 조성되어 ‘마산 르네상스’ 복원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낮 도시 거리는 여전히 열기를 푹푹 내뿜지만, 한여름에 비하면 더위가 많이 수그러들었다. 창동 사거리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내 청춘이 숨 쉬던 마산. 마산의 창동. 이곳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영화를 보고, 쓸쓸히 배회하다 술집으로 스며들곤 했다. 갈망과 상처, 희망과 슬픔이 청춘의 특권처럼 질퍽대던 도시. 참 오랜만에 걷는 길이다. 고려당 빵집, 멀리 옛 시민극장 앞에 위치한 학문당 서점, 옛 경남은행 본점 쪽의 남성동 파출소…. 세월이 흘러 대부분 새롭게 단장하고 있지만 눈에 익은 건물도 많다.

    골목 입구 곳곳에서 창동예술촌 문패가 방문객을 반긴다. 창동예술촌은 예술인과 시민이 소통하는 ‘에꼴드 창동 거리’, 추억을 재연하는 ‘마산예술흔적 거리’, 조각가 문신을 재조명하는 ‘문신예술 거리’ 등 세 가지 테마로 나눠져 있다. 편의상 세 테마로 나눠져 있지만 상권과 경계 구분이 없다. 창동 골목의 한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고,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더하고 있다.

    고려당 빵집 앞 골목으로 들어간다. 에꼴드 창동 거리다. 고개를 들자 앞 3층 건물 벽면에 벽화로 다시 태어난 천상병 시인이 환하게 웃고 있다. 유리아트공방, 도예공방, 서각공방, 화실, 전시실, 라이브카페, 조각실 등이 있다. 이 골목을 따라 쭉 올라가면 마산예술흔적 거리와 만난다. 골목의 맨홀 뚜껑마다 알록달록한 색깔이 칠해져 있다. 간판들도 예쁘고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런 것들에도 이름을 붙인다면 도심밀착형예술작품이라 부를 수 있겠다. 삼도집, 창동분식, 정근식당, 찻집 다전, 정겨운 이름들이 수십 년 세월을 건너 지금도 이 골목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니! 추운 겨울, 똑똑 노크를 하면 드르륵 쪽창을 열고 뜨거운 대포잔술을 주던 정종집이 새삼 그립다.



    바다에서

    둔탁한 소리가 난다

    이따이 이따이



    설익은 과일은

    우박처럼 떨어져 내린다

    이따이 이따이



    새벽잠을 설친 시민들의

    눈꺼풀은 아직 열리지 않는다

    이따이 이따이



    비에 젖은 현수막은

    바람을 마시며 춤춘다

    이따이 이따이



    아아

    바다의 유언

    이따이 이따이

    -이선관, ‘독수대(毒水帶)’ 전문



    마산예술흔적 거리에는 여러 작품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이 실감난다. 시인 이선관의 ‘독수대’, 시인 천상병의 ‘귀천’ 등의 시와 조각가 문신의 작품이 액자에 새겨져 걸려 있다. 마산고 교사를 지낸 ‘꽃’의 시인 김춘수, 연극인이자 시인이었던 정진업, ‘게’를 즐겨 그렸던 최운, 마산 창동 출신으로 한국현대무용의 선구자로 불린 김해랑, 마산에서 서양화 전시회를 열었던 최영림 등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또 마산의 옛 모습 사진과 강남극장, 오동동 사거리, 1970년대 음악다방, 가포해수욕장, 옛 시민들의 생활 모습이 담긴 사진들도 전시되고 있다.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 전깃줄에 앉은 참새, 창원의 상징 ‘누비자’ 자전거를 이용한 설치미술과 현재호 화백의 그림 등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마산의 옛 모습과 예술이 한데 어울려 하나의 새로운 역사로 탄생한 것이다.

    마산예술흔적 거리에 서자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가포 풍경이며 강남극장, 그리고 옛 도시 모습은 나를 데리고 추억여행을 떠난다. 청년이었던 내가 벌써 쉰의 중년이 되어 돌아와 이 골목에 선 것이다. 이 골목길의 중국집에 두 아들과 살았던 ‘창동 허새비’ 이선관 시인. 어눌한 몸짓이었지만 호쾌하게 터트리던 그의 웃음소리가 문득 쟁쟁하다.

    마산예술흔적 거리를 빠져나와 옛 시민극장 옆길로 들어가면 문신 화백의 자화상이 오가는 행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언제였던가. 지역의 문화잡지 기자를 하며 문신 선생을 취재한 적이 있다. 예술은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표현된 것’이라던 말이 떠오른다. 문신예술 거리에는 문신예술기념관을 위시해 화실과 소규모 갤러리가 여럿 있다.

    예술은 정신의 밥을 짓는다. 그래서 예술을 일러 빵이 아니라 생명의 포도주라 했을 것이다. 이곳저곳을 관람하다 보면 작업실 입구에 붙어 있는 ‘체험’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노란색 스티커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스티커가 붙여진 작업실에서는 다채로운 작업을 체험할 수 있다. 주말을 이용해 창원에서 창동사거리 아래 있는 마산예술소극장에 자원봉사도 하고 공연도 보러 왔다가 창동예술촌을 방문했다는 조성준(창원남고 1), 장창용(창원남고 1), 배병채(경상고 1) 학생은 이구동성으로 우리 고장에 이런 독특한 예술 거리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적했던 창동거리가 문화와 예술, 사람이 가득한 새로운 거리로 활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문신예술 거리를 나가면 부림시장과 만난다. 깨끗하게 단장돼 있다. ‘초등달 연가’의 이영자 시인이 20여 년 전에 이곳 지하에서 조그마한 식당 성광집을 꾸리며 시를 썼다. 가끔 성광집에 들러 소주잔을 기울이며 겸손을 가르쳐주던 ‘황삿갓’ 황선하 시인, 얼굴 불그스레한 최명학 시인이 새삼 그립다.

    창동예술촌에서 불종거리로 가면 아치형 불종[火鐘] 상징물이 눈길을 끈다.

    불종거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바로 오동동 문화의 거리다. 오동동은 대중가요 ‘오동동타령’이 태어난 곳. 통술집 골목으로 유명하다. 오동동 문화의 거리는 마산 명물인 아구찜 거리와 연결돼 있다. 그래. 오늘 저녁은 아구찜이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구찜 식당 간다.

    /글·사진=배한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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