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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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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동양 고전 새롭게 해석하는 배병삼 영산대 교수

고전 뒤집는 교수, 동양사상서 인생을 묻다
석사 때까지 서양사상·정치사 전공
유도회 한문연수원서 7년간 동양 고전 등 공부

  • 기사입력 : 2012-12-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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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 체제와 서양 철학에 피로를 느낀 사회인들에게 동양 고전에서 다음 체제를 구상할 수 있는 사유의 틀이나 해결 고리를 제시해주고 싶다는 배병삼 교수. 그가 연구실에서 동양 고전과 관련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유교에 충효 (忠孝)는 없다.”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펼치며, 유교와 동양 고전(古典)을 새로운 시각으로 되살리고 있는 영산대학교 인문학부 배병삼(59) 교수. 그를 만나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는 ‘짝퉁’이라고 말하는 그의 생각과 철학을 들어본다.

    ◆색다른 시도= 배 교수는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 ‘공자, 경영을 논하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등 유교와 논어·맹자 등 동양 고전을 재해석한 책을 잇따라 펴냈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는 이를테면 청소년들을 위한 논어 ‘입문서’다. 여러 가지 주제를 통해 논어에 소개된 내용을 풀이하고, 고전을 보다 쉽게 접근하기 위해 쓴 책이다.

    ‘공자, 경영을 논하다’는 기업체 CEO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철학적 접근이 아니라 공자의 삶과 그의 사상이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경영학 전문서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에서 펴냈다.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뒤엎는 내용이 곳곳에 담겨 있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면서,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왜곡된 유교의 잘못 덧씌워진 껍질을 벗기고, 본래 유교의 속살을 보여주고자 했다.

    ◆동양에서 답을 구하다= 배 교수의 남다른 고전 읽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원래 한학 혹은 동양고전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학을 전공한 정치학자다. 김해에서 태어나 1978년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겪고 많은 젊은이들이 서양에 천착할 때 그는 거꾸로 동양적인 것에 매료됐다.

    석사까지는 서양사상과 정치사를 전공했다. 그러나 석사 학위를 마치고, 장학생으로 뽑혀 유도회 한문연수원에 입학했다. 그의 나이 26살 때였다. 한문연수원에서 7년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한문독법과 동양 고전을 배웠다.

    그는 문득 논어, 맹자가 철학이 아니라 정치학 책이라고 느꼈다.

    서양화, 근대화, 서구화. 정치학 등도 서구화돼 있지만, 서양정치학적 식견으로 우리 정치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박사학위는 다산 정약용의 정치사상을 연구한 논문으로 취득했다. 다산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었지만 그때까지 정치학적 접근은 없었다고 한다.

    박사학위 때 그의 전공은 한국정치사상이다. 퇴계, 율곡, 다산, 조선왕조 등. 한국정치사상을 이해하려면 유교에 대한 이해는 그 첫걸음이었다. 그래서 논어 속으로, 고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짝퉁’ 유교를 파헤치다= 배 교수는 ‘유교=충효(忠孝)’라는 논리는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현대에 알려진 충효라는 개념은 유교보다는 법가적인 개념이라는 것.

    “일본 식민지 36년은 중요한 체험입니다. 일본이 한자문화권은 맞지만, 유교문화권이 아닙니다. 일본은 사무라이 나라, 심하게는 ‘조폭 국가’입니다.”

    파격적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는 논어와 맹자를 보면 인(仁)과 의(義)가 유교국가의 핵심인데, 상명하복(上命下服), 멸사봉공(滅私奉公)이 담긴 일본은 군국주의 국가라는 것이다.

    충효는 집안에서 아버지에게 복종을 배워 나라에 충성한다는 개념으로 쓰였다. 현재도 유효한 개념이다. 그러나 배 교수는 유교의 효는 복종이 아니라고 말한다. 잘못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효라고 한다. 하여 역성혁명(易姓革命)이 정당화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곧 조선조 기틀을 세운 조광조가 내세운 논리이기도 하다.

    일제를 겪으면서 유교에 일본의 이념을 덧씌운 것이라는 게 배 교수의 주장이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다. 일제 때 도덕 교과서의 제목이 ‘수신’이다. 배 교수는 유교에서 단어를 차용했지만, 유교적 윤리는 담겨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자신의 몸을 닦아 천황에게 충성하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뿐 유교에는 없는 개념이라는 것.

    “일제 36년과 한자문화가 뒤섞여 이런 현상이 벌어졌죠. 우리에게 익숙한 유교라는 개념에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군국주의를 덧씌워 왜곡시킨 겁니다.”

    충(忠)에 대한 해석도 새롭다. 유교에는 지배·복종의 논리가 없고,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가치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서구의 ‘민주적 가치’가 이미 논어·맹자에 표방돼 있다고 설명했다.

    ◆실천하는 학자=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배병삼 교수. 그러나 그는 흔히 말하는 폴리페서(polifessor)가 아니다.

    폴리페서는 학문적 성취를 기반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든 ‘정치지향 교수’를 일컫는다. 배 교수는 현실 정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조언을 아끼지 않지만 ‘정치판’에 뛰어들지 않는다.

    조선시대 유명한 학자이기도 한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다산 정약용, 정암 조광조 등은 뛰어난 사상가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실천하고자 했던 행동가였다.

    그는 강의가 있는 날을 빼고는 나머지 요일에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을 다닌다. 그가 다양한 저서를 펴낸 것처럼 다양한 대상과 계층을 상대로 강연을 한다. 주부, 청소년, 대학생, CEO 등 대상에 따라 맞춤식 강의를 한다.

    어려운 고전을 쉽게 풀어주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현실에 견줘 설명해주니 강연 때마다 인기가 높다.

    “강연에 가 보면 참으로 다양한 계층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문학 붐이죠. 제가 다양한 책을 쓰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학자로서 연구도 중요한 일이지만, 못지않게 대중과 소통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이라 생각하고, 강연 요청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도올 김용옥 선생이 떠오른다. 도올은 동양 고전을 알리는 문을 연 학자다. 실제로 그는 도올연구소 연구원으로 3년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갈 길이 멀다”= 배 교수의 가방 속에는 낡은 수첩이 몇 권 있다. 자가용이 아니라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는 그는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시간 차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그것을 수첩에 빠짐없이 메모하고, 정리한다.

    그가 있는 영산대 중앙도서관 교수 연구실 한쪽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기독교 서적,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스로마 신화, 마키아벨리 평전, 이슬람 관련 서적, 프랑스혁명, 카오스이론 등 동서양 철학과 종교 관련 책, 과학 전문서적까지 다양하다. 그의 관심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방증이리라.

    현재 그는 경제학자와 동양사상가 등과 함께 안동 국학연구원이 발간 준비 중인 ‘유교와 경영’이라는 책의 공동저자로 집필 작업을 하고 있다.

    조만간 ‘맹자’를 재해석한 책을 내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그가 조선조 유학자 중 최고로 꼽는 ‘퇴계’에 대한 연구도 계획 중이다. 참 할 일이 많다.

    “앞으로의 길을 서양사상이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동양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죠. 지금 우리는 우리 것을 서양에서 다시 배우는 형국입니다. 자본주의와 서구화에 ‘피로’를 느끼고 ‘힐링’이 필요한 시대, 그 답을 찾기 위해 저는 다시 동양 고전을 공부하고, 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글= 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 배병삼 교수는 = 영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 저서- ‘공자, 경영을 논하다’, ‘우리에게 유교란 없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한글세대가 본 논어’, ‘율곡의 사상과 그 현대적 의미’ 등. 논문- ‘한국정치사상 연구의 동향과 전망’, ‘정치가 세종의 한 면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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