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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장애 딛고 KBS 앵커 된 홍서윤 씨

“장애인 수식어보다 전문 앵커로 기억되고 싶어요”

  • 기사입력 : 2013-05-2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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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앵커 공채시험에 합격해 KBS1-TV ‘정오뉴스 생활뉴스 코너’를 담당하고 있는 창원 출신 홍서윤 아나운서. 지난 18일 창원시 의창구 신월동 용지문화공원에서 그녀를 만났다.
    홍서윤 앵커가 KBS1-TV 정오뉴스 중 생활뉴스 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자신만만했다. 어떤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자신의 인생관, 세계관을 담은 답변을 주저 없이 쏟아냈다. 비장애인에 비해 다소 불편한 신체만 가졌을 뿐 자신감과 적극적 태도까지는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1급 지체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104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대한민국 대표 공영방송인 KBS의 얼굴이 된 창원 출신 여성앵커 홍서윤(26) 씨.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격언처럼 그녀의 첫인상은 ‘이립’(而立: 공자가 30세에 자립했다는 데서 나온 말로 30세를 일컫는 말)에 훨씬 못 미친 나이인 데도 의연했고,

    한편으론 밝고 활달했다. 지난 18일 휴일을 맞아 부모가 살고 있는 진주시 대곡면 본가를 찾은 그녀를 자신의 유년시절 추억이 서려 있는 창원 용지문화공원으로 초대했다.

    과잉보호 속에 성장해 쉽게 지치고 패배감에 사로잡히는 경향성이 큰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귀감으로 삼을 수 있도록 꼭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날 만남에서 그녀가 10살 때 바이러스성 척수염이 발병해 하반신을 쓸 수 없는 후천성 장애를 갖게 됐다는 아픈 사연과, 이후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잘 극복해

    끝내 ‘공영방송 앵커’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장애를 갖게 되었나요.

    ▲초등학교 3학년, 10살 때 여름방학을 맞아 수영장에 갔습니다. 수영 교습을 받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물 속에서 연습을 하던 중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내려 연습을 중단했습니다. 다리저림 현상까지 오더라고요. 그래서 강사에게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해 응급처치를 받았는데도 계속 호전되지 않는 거예요.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돼 부모님께 연락해 병원으로 달려 갔습니다. 치료 시기를 놓쳤는지 증상이 악화돼 마비가 왔습니다. 제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엄마가 제 다리를 흔들어 깨우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요. 저도 저지만 엄마와 아빠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을 겁니다. 처음에는 원인불명의 척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발병한 지 3년 정도 지난 후에 ‘바이러스성 척수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충격이 너무 컸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날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육관은 어땠나요.

    ▲장애를 입고 난 이후부터 제가 나들이나 여행을 다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제가 집에서만 지내기보다는 밖에 더 많이 다니기를 권유하셨고, 그것을 항상 지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데리고 바다며 산이며 항상 함께 여행을 하셨습니다. 계곡에 돌무더기가 있으면 아버지는 어린 저를 업고 가셨고, 어머니는 휠체어를 들고 가서라도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런 두 분의 노력이 저로 하여금 적극적인 인성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보통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후천장애를 갖게 되면 좌절하고 포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홍 앵커가 긍정 마인드를 갖게 된 계기라도 있나요.

    ▲제가 고등학교를 필리핀에서 다녔는데요. 당시 은사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Disabled is not abnormal, it is just uncomfortable.’ 우리말로 풀이하면 ‘장애는 비정상이 아니다, 단지 불편함일뿐이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제가 살아오는 동안 ‘장애인’으로서 겪은 시련이 있을 때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말이 됐습니다.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초등학교는 창원 토월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중·고등학교는 아버지께서 사업차 필리핀에 왕래하시던 터라 필리핀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급성 척수염이 발병하기 전 초등학교 시절의 저는 야무지고 새침한 학생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 학예회나 반 장기자랑에서 늘 선생님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서로의 주장이 달랐던 때문이지요. 그 당시만 해도 방송댄스가 유명하지 않았는데 초등학교 2학년 어린 나이에 친구들과 함께 반 장기자랑으로 당시 유행하던 가수의 춤을 추겠다고 했는데도 제 뜻과는 무관하게 선생님께선 전통 부채춤을 추라고 강요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부채춤을 추지 않겠다며 고집스럽게 굴어서 결국 선생님을 포기하게 만든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앵커가 되기로 결심한 배경은.

    ▲예전만 해도 장애인에게 앵커가 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기 때문에 꿈을 꿔 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 KBS에서 장애인 앵커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이제 우리나라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생각을 해 그때부터 앵커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1기 모집에는 건강이 좋지 못해 응시하지 못하고 2013년에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쟁을 뚫고 입사하게 됐나요.

    ▲104대 1의 경쟁률이라고 했습니다. 언론에서 보도되기 전까지만 해도 경쟁률이 얼마인지 몰랐고, 합격 이후 알게 됐는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서류심사 합격 이후 두 번의 면접을 더 거쳤습니다. 모두 카메라 테스트와 앵커 진행을 해보는 모의 면접이었습니다. 너무나 쟁쟁한 면접자들이 많아서 첫 면접은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긴장도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담없이 임했던 탓인지 덜컥 1차 면접에 합격을 했고, 2차 면접은 마지막 면접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조금 더 긴장됐습니다만,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가감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던 것이 합격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앵커 생활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입니다. 신나면서도 긴장됨의 연속입니다. 뉴스 진행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차분하게 오늘의 뉴스를 기대하며 준비합니다. 그렇지만 스튜디오에서 스탠바이(Stand by: 대기)할 때, 뉴스 시작 10초 전, 3초 전…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는 심장이 콩닥콩닥거리면서 무척 긴장됩니다.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10여 분 동안 뉴스를 진행하고 나면 그날 그날의 느낌은 매우 다릅니다. 실수가 없었던 날은 정말 기분 좋고 신나고 행복합니다만, 실수가 많았던 날은 긴장의 여운이 오래 가 하루 종일 속상하고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마 생방송이라 그런 묘미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앵커시험 준비는 어떻게 했나요.

    ▲2013년 KBS 장애인 앵커 모집 공고를 늦게 알게 되어서 사실 준비 기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사설 아카데미에서 준비하지도 못했고, 당시 대학원 과정에서 한창 학업에 매진 중이라 이렇다 할 앵커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응시 이후 방송 3사의 뉴스란 뉴스는 다 챙겨보면서 여자 아나운서들을 모방하고 따라 하면서 혼자 연구하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공부를 계속 중인 것으로 아는데,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있나요. 장래에 어떤 인물이 되고 싶은가요.

    ▲제가 학부 과정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고, 이 분야에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석사과정 중입니다. 저로 인해 누군가가 좋은 영향을 받는다면 좋겠습니다. 따라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지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도전해 보면 좋겠습니다. 비도덕적인 행위와 범법행위만 제외하고, 하다가 안 되면 그때 포기할지라도, 시도도 하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남는 시간은 주로 어떻게 보내나요?

    ▲제가 커피광(狂)이라서 주로 카페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게 남는 시간의 일과입니다. 커피 마시러 가서 못다한 전공 공부도 하고, 책도 읽습니다. 또한 혼자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쇼핑을 하다가 서점에 가곤 합니다. 서점에 가서 장르를 불문하고 새로 나온 책들, 유명한 책들을 다 살펴봅니다.


    -지금 맡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은.

    ▲현재 KBS1-TV 12시(정오) 뉴스에서 생활뉴스 코너를 맡고 있습니다.


    -앞으로 맡아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을텐데요.

    ▲사랑의 가족 같은 스튜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해 보고 싶고,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해 보고 싶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바뀔 것이라 생각하며, 한편으로 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지만요. 하하하.


    -나중에 어떤 삶을 산 인물로 기억되고 싶나요.

    ▲구구절절하고 애잔한 이미지는 거부합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측은함’, ‘불쌍함’, ‘동정’,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데요, 그런 이미지를 저는 거부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누군가 ‘홍서윤’이라는 사람을 떠올리면, 장애인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떠오르기보다는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훌륭한 여성으로 기억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글·사진= 이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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