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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22) 하동포구 팔십리길의 섬진강

반짝이는 금빛 모래, 굽이치는 은빛 물결, 싱그러운 초록 송림
소곤소곤, 자연이 써내려가는 대하소설

  • 기사입력 : 2013-06-2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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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광양시 다압면 무등암에서 바라본 섬진강. 왼편으로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잇는 섬진교가 보이고 강 건너 모래밭 뒤로 하동 송림과 하동 읍내가 펼쳐져 있다./김승권 기자/


    “당신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표현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보면 하동포구 팔십리길에 다다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은 세월을 거슬러 가는 듯 느릿느릿 흘러간다. 포구 사이로 아늑하게 펼쳐진 금당 모래밭은 그 어떤 포구에서도 볼 수 없는 절경이다.

    하동 아낙네들은 포구에 물이 들어올세라 한 바구니 재첩을 딴다. 누구도 욕심 부리는 사람 없이 자연이 준 선물 앞에 묵묵히 자신의 몫만큼 재첩을 훑는다. 팔십리 하동 땅을 적시며 남해에 몸을 푸는 강줄기 섬진강. 이제 막 하동포구 팔십리길에 들어섰을 뿐인데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은 섬진강 강물이 남해와 합류하는 하구에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 화개장터까지 이르는 길을 말한다. 실제 측량상의 거리가 아닌 정감의 거리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은 강변을 따라 수십 년 된 벚나무가 늘어서 있고 강기슭에는 갈대가 길을 이룬다. 물이 깨끗하고 바닥에 자갈과 바위, 수초가 많아 다양한 종류의 어패류가 서식한다. 특히 강폭이 넓어지는 지점에 축구장보다 넓은 백사장이 금빛처럼 펼쳐져 하동을 찾아온 관광객들의 눈길을 끈다. 또 일교차가 큰 날에는 고요한 수면에서 짙은 물안개가 피어올라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때문에 하동포구 팔십리길은 국토해양부가 주최하는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최우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동포구의 섬진강 가는 길은 금모래밭과 따사로운 햇살이 머물고 강물은 은빛으로 부서진다. 섬진강은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팔공산에서 발원해 남해 광양만까지 약 212㎞를 흐르며 수많은 지류 및 하천과 물길을 섞는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에 해당되는 구역에선 강의 중간 지점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선을 이룬다. 섬진강은 역사적으로 수운의 주요한 뱃길이기도 하다.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용이와 월선이의 사랑도 하동에서 거룻배가 평사리까지 오갔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의 19번 국도 벚나무길은 섬진강과 어우러져 사랑하는 이와 걷기에 좋은 길이다. 해질 무렵 멀리 포구로 돌아오는 돛배의 모습과 떨어지는 낙조, 평사리의 백사 위에 내려앉은 기러기, 봄이면 무르익은 섬진강변의 매화와 벚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벚꽃 터널이 이어진다. 여기에 푸릇푸릇 새싹이 움트는 악양 들판의 보리밭. 하늘에선 꽃향기가 흘러내리고 차밭에선 그윽한 다향이 풍긴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임을 의심치 않게 한다.

    하동은 전남 보성, 구례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차 생산지이자 첫 재배지다. 하동 쌍계사에 이르는 골짜기마다 야생차밭이 빼곡하다. 악양과 화개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진 차밭만 836㏊에 이르고 70여 개의 다원이 있다. 이곳의 녹차는 돌 틈에서 야생 그대로 자란 차나무에서 딴 잎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덖어 색과 맛, 향이 독특하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을 따라 다시 한 번 굽어 오르면 경전선 섬진강 철교와 하동을 대표하는 노송 숲 ‘하동 송림’이 보인다. 하동읍 광평리 섬진강변에 조성된 송림으로 천연기념물 제445호이다. 300년생 소나무 800여 그루가 빽빽하게 숲을 이뤄 섬진강과 어우러진 모습은 언제 봐도 싱그럽다. 옛 시인들은 이 숲을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 부르며 아꼈다고 한다. 조선조 영조 21년(1745년) 도호부사 전천상이 해풍과 섬진강 모래바람을 막아 하동을 보호하려고 조성한 소나무 숲이 그 시초라고 전해진다. 수령 200~300년의 아름드리 노송과 섬진강 물결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시킨다. 지금은 송림 안에 운동기구와 놀이시설도 설치돼 있어 가족 나들이 장소로 주목받는다. 송림 서편은 자연휴식년제로 내년 2월까지는 출입할 수 없다.

    하동포구 팔십리길에 우뚝하게 서 있는 섬진교는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을 이어준다. 섬진교를 지나면 오룡정 옛터가 적막하고, 그 언덕 위로 섬호정이 나타난다. 바로 ‘하동포구 팔십리’ 노랫말의 현장이다. 이곳에서 봄이면 두견새 울음 속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떨어져 휘날리고 강 건너 대숲이 바람에 일렁이면 누구나 옛 추억에 젖어든다. 이어서 두꺼비 전설의 섬진(蟾津)나루를 지나면 배꽃 향기 물씬한 배 과수 단지가 있고, 뒷산에는 밤나무로 가득한 백리 밤골이 보인다. 다앞나루를 지나고 입석나루를 지나면 광활한 악양 평사리 들판이 눈앞에 가득하고, 지리산 형제봉·신선봉이 섬진강에 잠겨 드는 끝머리에 천년 고성 고소성이 섬진강 물길을 지킨다.

    하동포구 팔십리 동쪽으로는 금오산이 멀리 아련하고 서북쪽으로는 백운산이 보인다. 강가로는 갈대숲이 일렁이고 신방촌 포구가 다가선다. 몇 척의 작은 배가 강물에 한가롭고 봄철이면 재첩을 캐는 아낙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갓 채취한 재첩을 바구니에 이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낙네는 하동에서만 볼 수 있는 정감 어린 모습이다. 파를 숭숭 썰어 넣어 뽀얀 국물을 우려낸 재첩국은 피로를 풀어주고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재첩만을 건져내 초고추장과 갖가지 채소로 버무린 재첩회는 새콤달콤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다시 백사장 사이로 좁은 물길을 오르면 이제 하동포구 팔십리길의 마지막인 화개장터가 나타난다. 화개장터는 추억 속 예닐곱 살 소년이 되어 이곳저곳 장터를 기웃거리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장터국밥집이 늘어선 골목에 이르자 구수한 음식냄새가 자꾸 허기를 불러온다. 장터 왼편에 자리잡은 대장간에 발길이 오래 머문다. 초로의 대장장이 아저씨는 쉼 없이 괭이며 호미, 낫 같은 연장을 만들어낸다.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망치로 두드려 펴서는 물에 식히고, 다시 불에 달궈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다 어느새 뚝딱 농기구 하나를 만들어낸다.

    또 화개장터 옆에 있는 쌍계십리 벚꽃길은 연인이 함께 걸으면 결혼이 이뤄진다고 해서 ‘혼인길’로 널리 알려졌다. 십리벚꽃길이 조성된 것은 1930년대 이 지역 주민이 벚나무 1200그루와 복숭아나무 200그루를 심으면서 시작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가 자라 숲은 더욱 우거졌다. 4월 초순 봄이 무르익을 즈음 벚꽃이 일제히 꽃잎을 피울 때면 아름다운 벚꽃터널이 만들어져 전국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여름 정취로 자연이 녹색으로 출렁대는 지금, 하동포구 팔십리길을 찾으면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가득 채워 올 수 있다. 언제나 흐름을 멈추지 않는 섬진강을 따라 포구 팔십리길을 걸어 보자. 난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자연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하동포구 팔십리길. 이번 여름휴가는 하동으로 떠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배영진 기자 byj@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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