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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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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16년째 해외 의료봉사하는 박윤규 치과의원 원장

“아픔 보듬는 의술 베풀 수 있어 행복합니다”

  • 기사입력 : 2013-07-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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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년째 해외의료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박윤규 치과원장이 마산 회성동 자신의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박윤규 원장이 스리랑카에서 해외의료봉사를 하고 있다./박윤규 치과의원 제공/


    지금요…무척 행복합니다

    그는 항상 웃는 낯이다. 특히 요즘은 더 그렇다. 환자를 볼 때도 그냥 일 없이 쉴 때도 둥그런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최근 개원한 지 딱 17년 만에 번듯한 자가 건물 병원을 가졌기 때문일까. 다소 통속적이긴 하지만 틀린 얘기는 아니다.

    단지 나아진 시설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환자들이 보다 편하게 병원을 찾을 수 있는 게 즐겁다.

    박 원장은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아프다. 그들이 보다 편하고 행복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 그것이 행복하다”며 “이전 병원에서 좁고 가파른 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리는 어르신들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행복은 보다 왕성하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데 있다.

    박 원장의 봉사활동은 ‘오지랖 넓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다양하다.

    가깝게는 동네 어르신들 위안잔치에서, 지역 대학 출강, 생활체육단체 지원 등 몸사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특히 16년째 이어오는 해외의료봉사는 빠뜨릴 수 없는, 그에게는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 됐다.

    그의 미소 뒤에는 든든한 가족이 있다. 아내와 아들 셋, 모두가 바쁜 그를 이해하고 자랑스러워 한다.

    박 원장은 “행복의 요소들을 두루 갖춘 것 같다. 지금 무척 행복하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시리고도 혹독한 사고

    사연 없는 인생은 없다. 박 원장의 사연은 특히 시리고 아프다.

    그는 전북 남원시 출신이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특수학교인 철도고로 진학을 했다. 당시 형편으로 서울로 진출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였다.

    꿈이 많은 나이, 그도 꿈이 많았다. 철도고 진학을 기반으로 꼭 대학 진학을 하리라.

    8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기관차 사무소에 배치됐다. 앞서 대학 진학을 위한 학원등록을 마치고,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청천벽력. 그해 여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사고를 당했다. 열차에 치인 것이다. 마음도 몸도 크게 다쳤다.

    하지만 주저앉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꼭 100일 만에 병원을 나선 그는 이전보다 더욱 혹독하게 자신을 다그치며 재기에 나섰다. 전국을 자전거로 돌며 스스로를 시험했다.

    이를 악물고 마친 긴 여정에서 얻은 것을 스스로 기록에 남겼다.

    “살려고 하는 노력과 진지한 태도는 위대하고 존귀하다. 몸은 비록 불편하더라도 마음과 정신이 살아 있으면 몸도 정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몸이 주인이 아니라, 마음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가 앞날에 발전적이고 진취적인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을 결심한다’고.



    3년의 입시공부…치과의사가 되다

    이내 직장으로 되돌아 왔다. 조금은 무료하게 1년을 보내고 사직서를 던졌다.

    대학 진학을 더 늦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철도고에서 일반 교과과목을 배우지 않았던 터라 꼬박 3년을 공부에만 매달렸다.

    박 원장은 수학(數學)에 관심도 있었고 또 소질도 있었다. 관련학과 진학을 원했지만 가족의 권유로 치의예과를 택했다.

    1996년 졸업장을 받아들고, 그해 7월 마산 회성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병원을 열었다.

    박 원장은 “치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면 충실하고 즐겁게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며 “당시 회성동은 사람들도 많았고, 주변에 병원도 많은 꽤 번잡한 곳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때부터 그는 ‘마산 사람’으로 살아간다.



    베풀고 또 베풀고…봉사의 길을 걷다

    박 원장은 사고 이후의 삶을 ‘덤’이라고 여긴다. 그의 일과 생활에는 늘 헌신과 봉사가 함께한다. 환자를 마주할 때도, 또 제2의 고향이 된 지역사회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헌신은 재능기부로 시작됐다. 개원 초기부터 마산대학 치위생과 외래교수를 맡았다.

    지역에 치의예과 대학이 없어 교수진 구하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듣고 선뜻 응했다.

    박 원장은 “돈이나 교단에 욕심이 나서가 아니다. 누군가는 가르쳐야 하고 다행히 재능이 있으니 나눈 것뿐이다. 많은 학생들이 나의 도움으로 번듯한 직장인이 된 것에서 충분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진료를 통한 봉사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베풀 수 있는 여력이 있으면 베풀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는 환자릍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법이 없다.

    때문에 박 원장은 항상 환자 편에 선다. 치료비가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또 형편이 되면 되는 대로 기쁜 마음으로 환자를 맞고 있다.



    캄보디아 소년…잊을 수 없는 절망의 눈빛

    박 원장이 해외의료봉사 활동을 한 지도 16년이 지났다. 첫 의료봉사는 1997년 한 교회의 의료선교팀에 합류하면서다.

    캄보디아에서 생긴 일이다. 하루에 두 개 지역에서 진료를 하기로 계획돼 오전 진료를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좀체 환자들이 줄어들지 않았다. 한 환자라도 더 보려고 열심히 했건만, 줄을 끊어야 했다.

    줄은 10살 한 소년 앞에서 멈췄다. 치료를 받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렸을 소년의 눈에는 절망과 눈물이 가득 고였다.

    그는 “앞니가 몽땅 썩은 소년의 실망하는 눈빛을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조금만 시간이 주어졌다면 친구들에게 놀림받지 않는 환한 웃음을 선물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박 원장에게 캄보디아 소년의 기억은 단독 의료봉사활동의 계기가 됐다. 매년 5~6월 중 봉사단을 이끌고 베트남과 스리랑카 등지를 방문한다. 장비와 약품을 구입하고, 5명 정도의 의료진을 구성하면 최소 1000만 원 이상의 경비가 소요된다.

    또 현지에 가서는 한 사람의 환자도 놓치지 않기 위해 꼬박 치료에만 매달린다.

    힘들고도 어려운 일, 하지만 자신의 희생이 누군가에게 기쁨이기에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봉사…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

    박 원장은 봉사에 크고 작음이 있는 게 아니다고 말한다. 자신의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베푸는 것이면 모두가 봉사라고 여긴다. 재물이든, 재능이든, 또 몸을 움직이든 남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모두가 가치 있는 일이다는 것이다.

    그는 상황이 나아지면 보다 많은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해외의료봉사 활동도 더 확대하고, 병원을 찾는 환자뿐 아니라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기쁜 마음으로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그의 봉사에는 철칙이 있다. ‘준 것은 잊어라’, 뭔가를 되돌려 받으려고 한다면 진정한 봉사가 아니다는 주장이다.

    박 원장은 “봉사는 ‘주고받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쾌히 비울 수 있어야 마음이 가볍다”며 ”비록 작은 빛이라도 모이면 세상을 밝히는 큰 빛이 된다. 바로 그게 봉사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2011년 국세청이 주관한 ‘아름다운 납세자상’을 받았다. 투명하고 성실하게 병원살림을 꾸려 나간 데 따른 것이다.

    그는 “한눈팔지 않고 성실하게 일해도 대가는 꼭 돌아온다. 그 대가로 남을 도울 수 있어 정말 기쁘다”며 “좀 더 열심히 해 병원 경영이 안정되면 지금보다 많은 시간과 재물을 봉사 쪽에 할애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고, 그 힘으로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그래서 기쁘고 즐거운 사람. 박 원장은 강하고도 행복해 보였다.

    글= 이문재 기자 mjlee@knnews.co.kr

    사진= 전강용 기자 j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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