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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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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1) 시인 이광석과 도예가 성낙우

마산은 우리의 40년 인연이 시작된 곳
우리의 삶도 예술도 이곳에서 싹텄지

  • 기사입력 : 2013-08-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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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의 한 커피숍에서 이광석(오른쪽) 시인이 성낙우 도예가와의 첫 만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이광석 시인과 성낙우 도예가가 창동예술촌을 둘러보고 있다.


    예술인들의 대화는 어떤 풍경일까. 장르를 넘고 공간을 넘어선 예술인들의 만남을 지면에 옮긴다. 마음속에 묻어둔 얘기를 통해 예술에 대한 철학과 작품에 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자세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목영(木影) 이광석(79) 시인과 심곡(深谷) 성낙우(61) 도예가가 마산 창동 예술촌에서 만났다. 두 사람의 첫 인연도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했다.

    1971년 마산 창동 희다방, 신인 작가 성낙우의 첫 개인전에 신문사 편집국장인 이광석 시인이 찾았다. 그렇게 기자와 취재원에서, 동네 문화계의 선후배로 둘은 긴 시간 서로를 지켜보며 교우했다. 지나치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게 이어진 인연이 벌써 40여 년이다. 마산이 삶과 예술의 터전이라는 공통점 때문일까. 이날 만난 두 사람은 20년 터울의 나이 차에도 생각과 이야기가 닮아 있었다.

    ▲성낙우: 목영 선생님, 날씨가 많이 더운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요즘에는 자주 못 뵀습니다. 얼마 전 제가 예총(마산) 회장을 할 때만 해도 일주일에 2~3번은 만났는데 말이죠.

    ▲이광석: 심곡 선생, 잘 지내고 있나요. 이렇게 뜨거운 날씨에도 매일 100도가 넘는 불가마 앞에서 도예 빚어내는 어려운 작업하느라 고생이 많지요.

    ▲성: 안 그래도 다음 달 말에 기획 초대전을 앞두고 있는데 요즘 작품이 안 돼 걱정입니다. 신인 때보다 세월이 갈수록 만들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머리를 비워야 하는데 생각만 많아집니다. 선생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여전히 열정적으로 보내시지요.

    ▲이: 나는 요즘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하나는 일곱 번째 시집 준비고, 하나는 고운 최치원 선생 기념사업 준비 일이에요. 새 시집은 돝섬, 월영대, 마산 앞바다 등 마산과 관련된 시를 모아 보려고요. 70편쯤 준비됐고 내년 9월이나 10월쯤 낼 계획이에요. 또 고운 선생과 관련된 기념사업회도 준비 중입니다. 최근에 준비위원회를 발족했고, 창립총회는 가을쯤 할 계획이에요.

    ▲성: 언제 봐도 참 열정적이고 부지런하십니다. 선생님이 마산에 대해 시를 쓰신다고 하니, 선생님의 <바다 변주곡>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마산 해안에 관한 시였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공감가고 좋았던 작품입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참 편해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시를 잘 모르지만, 감히 말씀드리면 선생님 시는 많은 것을 포용하는 느낌이 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마산과 관련된 새 시집이 나오면 많은 이들에게 지역의 향수, 추억을 느끼게 해 줄 것 같습니다.

    ▲이: 심곡 선생도 바쁘기는 현역 단체장보다 더 바쁜 사람이잖아요.(웃음) 지역에서 가장 부지런한 작가 중에 한 사람인 것 같아요. 마산문인협회와 함께 시서화도 준비한다면서요. 기대가 됩니다.

    ▲성: 마산문인 100명의 시를 선정해서, 좋은 시구들을 도자기에 새기는 작업입니다. 10월에 3·15아트센터에서 전시됩니다. 일은 많아도 즐겁습니다. 사실 제가 시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거든요. 작고하신 삼촌이 성권영 시인이라고, 펜클럽 사무국장까지 했습니다. 삼촌 옆에서 시를 읽으며 자라서인지 저는 시도 좋고, 시인들도 남 같지 않더라고요.

    ▲이: 모든 예술은 통하는 부분이 있지요. 저도 도예는 잘 모르는데 심곡의 작품은 보기만 해도 좋아요. 작품과 사람이 같아요. 소박하고, 은은하고, 편안한 느낌이지요. 누군가 심곡의 작품을 흙, 물,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평한 걸 봤는데 공감이 갔어요. 특히 도자기 속에 내려앉은 산 그림을 보면 마음이 온화해져요. 거의 모든 작품에 산이 있더라고요. 나도 산을 소재로 한 시집도 냈고, 시화전을 할 때 산을 자주 넣어서 만들기도 하거든요.

    ▲성: 선생님이 시화에 산을 그린 것을 몇 번 봤습니다. 선생님은 시뿐만 아니라 그림과 글씨에도 재주가 뛰어나신 것 같습니다. 대동제 할 때 선생님이 직접 만드신 시화를 보면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이: 대동제 이야기를 하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심곡을 비롯해 김미윤, 강신율, 이정호 등 젊은 친구들이 대동제를 만들었지요. 대동제가 생겨서 예술인들의 유대, 선후배 간의 정이 더 돈독해졌는데 말이죠. 80년대 고모령에 모여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많이 했지요. 심곡 선생이 술을 잘했잖아요.(웃음) 당시엔 마산에 문인이 20명, 미술인이 40명 남짓했고, 장르를 벗어나서 선후배가 어울렸지요. 특히 미협과 문협은 배구친선대회를 할 정도로 사이가 각별했죠.

    ▲성: 제가 사무국장을 하면서 선생님을 대회장으로 모셨지요. 선생님이 정진업, 김춘수 선생님을 모시고 고모령을 찾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당시에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높아 보였는지요. 특히 선생님이 선후배를 잘 챙기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사실 대동제의 시작도 선후배 간의 정으로 시작된 것 아닙니까. 명절 후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드리기 힘드니, 고모령에서 함께 인사 모임을 가지자는 취지였지요. 예술인들 모임이니까 각자 작품 한 점씩 내서 전시까지 하자며 ‘일호전’이란 이름도 지었지요. 참여비 1만 원만 내면, 술도 마시고 작품도 즐기고, 춤도 추고, 참 재미있었어요. 게다가 대동제라는 이름 때문에 민중저항운동의 일환인 줄 알고 경찰 정보과 형사들도 얼마나 따라다니면서 괴롭혔는지요.(웃음) 그래도 그때가 좋았습니다.

    ▲이: 그때만 해도 원로가 있던 시절이었지요. 원로와 노인은 다릅니다. 원로는 후배를 챙기고 활동하는 사람, 나이만 많은 사람은 그냥 노인이잖아요. 우리가 활동할 때는 원로 선배는 하늘이었어요. 존경하고 챙겼지요. 그런데 지금은 원로에 대해 관심이 없을 뿐더러 거추장스러워 해요. 요즘 풍토가 그런 것 같아요. 우리도 자리에 가면 껄끄럽고 불편해요.

    ▲성: 선생님은 50년 넘게 시를 쓰고 계시고, 마산 문단의 산증인이시잖아요. 많은 후배들도 이끄셨고, 정도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후배들이 원로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물론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지요. 대동제도 많이 변한 것 같아요. 97년 고모령이 없어지면서 장소가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행사의 형식과 의미도 변했지요. 대동제가 변질되지 않고 예술인들이 소통하는 장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100~200년 이어가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좋겠어요.

    ▲이: 그러고 보니 옛날 창동도 많이 변했습니다. 창동은 마산 문화예술계의 텃밭이라 할 수 있죠. 구석구석이 마산 문화예술계의 태동이 된 곳입니다. 이제 사라졌지만 한성다방, 비원찻집 등 문화사랑방이자 창작의 산실이었죠. 그런데 지금 창동예술촌에서는 70~80년대 문화 부흥기 시절의 마산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요.

    ▲성: 비원에 안윤봉 선생의 LP·SP판이 1500점이나 있었는데 기억나십니까. 그 자료들이 지금 마산음악관 창고에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참 아쉽지요.

    ▲이: 마산은 기록문화에 대한 보존이 취약합니다. 마산의 문화 유산이 될 만한 것들을 만들고, 창동예술촌 같은 곳에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관심이 필요합니다.

    ▲성: 저는 창동예술촌이 마산 예술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술촌이 만들어질 때 마산 예술인들과 상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한 번 온 사람이 다시 찾는 공간이 되면 좋을텐데, 그런 공간들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금보다 더 대중적인 작가들을 모셔오고, 마산의 문화유산 자료를 보존하고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 더 좋을 텐데요.

    ▲이: 심곡 선생 말처럼 입맛을 당기는 곳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문학 공간도 전혀 없습니다. 시작 단계니까, 지역 예술인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지역문화유산을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잘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네요.

    ▲성: 이제 겨우 1년 반이 지났으니까요. 아마 앞으로 열린 공간으로 잘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예술촌에 선생님 문학관도 하나 생기면 좋겠네요. 아무쪼록 더운 여름, 목영 선생님을 모시고 예향적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건강하셔야 합니다. 우리 지역의 산증인으로 후배들을 계속 챙겨 주십시오.

    ▲이: 나도 즐거웠습니다. 그 시절 또래 미술가들은 대부분 떠나고 없는데, 심곡과 모처럼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마산시민들이 도예를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글=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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