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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카푸어의 가치관과 소비심리- 하봉준(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3-09-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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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는 차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좋은 차를 몰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비즈니스를 하려면 고급차가 필수적이고, 좋은 차를 몰지 않고는 연애도 결혼도 하기 힘들다고도 한다. 작거나 낡은 차를 몰다가 봉변을 당한 주변의 경험담들이 이러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지난해 외제차의 신차 등록 비율이 10%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외제차가 주택가나 길거리에서 급속히 늘어난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국산차도 길거리를 달리는 차 대부분이 연식이 오래 되지 않은 고가의 차인 것 같다. 경제는 침체라고 하고, 중산층은 줄어들고, 서민들 생활은 어렵다고 하는데 이 무슨 상반된 현상인가.

    아니나 다를까. 최근 할부금을 내지 못해 경매에 넘어가는 외제차들이 지난해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전부터 주차시설도 없는 좁은 골목길, 허름한 주택가에 고급차들이 즐비한 것을 봐 왔다. 월세를 수십만 원씩 지불하면서 보증금의 몇 배가 되는 비싼 차를 모는 서민들의 얘기도 들었다. 이것도 모자라 이제는 본인의 소득으로 유지가 불가능한 고가의 차를 할부로 구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과는 얼마간의 호사 뒤에 가계를 텅 비게 만들고 부채까지 짊어지게 만들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하우스푸어(house poor)는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을 예상하고 무리하게 대출받아 주택을 샀는데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금리마저 오르면서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경우이다. 주택 가격이 하락할 것을 예상하면서 주택을 무리하게 구입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카푸어(car poor)는 차의 가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함에도 자신의 능력으로 유지가 어려운 고가의 차를 구입한다. 이러한 소비 행태의 발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현재의 여건도, 미래의 대비도 모두 외면한 채 맹목적으로 고급차를 사게끔 이끄는 소비 행태는 물신주의(物神主義)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개인의 모든 가치가 자신이 소유한 차에 달려 있고, 이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가치관은 물신주의 바로 그 자체이다. 카푸어의 근본 원인이 가치관에서 발생한다면 그 해결책도 당연히 차를 최우선으로 하는 물신주의의 극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봉준(영산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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