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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도예가 안홍관

“김해 찻사발 다시 빛을 발할 때까지 물레 돌려야죠”

  • 기사입력 : 2013-09-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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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 김해 찻사발을 재현하고 있는 안홍관 작가가 작업실에서 물레를 돌리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안홍관 작가가 찻사발을 보고 있다.


    김해는 예로부터 도자기를 빚기에 좋은 흙, 깨끗한 물, 땔감이 풍부해 철기시대부터 도자기 문화를 꽃피운 곳이다.

    가야토기는 4세기 이후 새로운 도자기 제작기술에 의해 1000도 이상의 온도에 구워낸 단단한 재질의 경질토기를 말한다. 따라서 도기에 해당하지만 학계의 일반명칭에 따라 ‘가야토기’로 불리고 있다.

    가야토기의 전통을 계승한 김해의 도자문화는 조선시대 분청사기 김해 찻사발에서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조선 초기 ‘김해 장흥고’란 이름으로 분청사기를 궁중에 납품했던 김해는 지방백자의 생산지로 유명했으며 일본에서도 찻사발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일본인들은 김해에서 구워진 찻잔의 소박하면서도 넉넉하고 우아한 기품에 반해 ‘킨카이다완’이라고 이름 지었으며 조선시대에 수출된 ‘킨카이다완’을 문화재로 지정할 정도로 귀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 등 여러 차례의 전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쇠락하기 시작한 김해 찻사발은 명맥이 거의 끊겨버렸다.

    지금은 국내에서는 실물은 물론 문헌에서도 자취를 찾을 수 없어 일본의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김해 찻사발이 김해가 고향인 한 도공의 집념과 노력으로 부활하고 있다.

    조선 사기장의 맥을 찾아 이어 보겠다는 일념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전통 김해 찻사발을 재현하고 있는 지암 안홍관(56) 작가가 그 도공이다.

    안홍관 작가가 도자기 제작에 입문한 것은 그의 뜻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손재주와 예술적 감각을 가진 그를 눈여겨본 큰아버지가 기술을 배우라며 정해준 것이 도자기였다.

    20살 때 큰아버지에게 이끌려 간 장유 가락요에서 4년간 흙과 나무를 준비하는 허드렛일을 하다가 기장에서 상주요를 운영하던 도봉 김윤태 선생을 알게 됐다.

    지난해 작고한 도봉 선생은 조부로부터 3대를 이어오는 문경산 도공의 후예이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당곡리의 당곡요에서 가마일을 하다가 1975년 기장읍으로 이주해 상주요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조선 후기의 전통적 생산양식에 따른 모든 자기 제작과정을 전수한 도봉 선생은 생활자기 분야 사발류 등에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보가 된 이도다완(井戶茶碗) 등 현재 문헌으로 남아 있는 다완 30여 종을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도봉 선생은 찻사발과 백자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찻사발보다는 다양한 그림이 그려진 백자 항아리에 매료돼 중간에 사람을 넣어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부탁해 1대 제자가 됐다.

    도봉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상주요에서 4년간 숙식을 하면서 도자기 제작과정을 체계적으로 전수받았다.

    그 덕분에 적당한 흙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불순물을 제거하는 ‘톳물받기’, 흙을 반죽하고 기포를 없애는 ‘꼬박밀기’, 물레에 올려놓고 모양을 만드는 ‘성형’, 성형과정에서 생긴 흠을 제거하는 ‘물메질’, 유약을 만들어 바르는 일,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불 때기와 가마를 만드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도자기와 관련된 전 과정을 혼자 다 해낼 수 있는 국내에서 흔치 않은 도공이 됐다.

    이어 조선시대 관요에 일하던 마지막 도공의 자손인 이홍규 선생으로부터 분청을 확실히 배웠고, 임진왜란 이후 500여 년 만에 황도사발(黃陶沙鉢)을 재현해 한국과 일본에서 주목받은 신정희 선생의 조령요에 잠시 머물다가 1985년 가락요를 인수해 독자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해 찻사발 재현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현재의 생림면 봉림리에 지암요를 지은 이듬해인 2000년부터다.

    김해 찻사발은 사발 밑받침에 해당하는 굽이 상대적으로 높고 찻잔 표면에 ‘김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기도 한 특징이 있다. 투박스러우면서도 질감이 좋고 수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특히 소성(불에 구워서 만듦) 과정에서 아름다운 요변(窯變·붉은색 얼룩)이 찻잔 표면에 나타난다. 이를 두고 ‘오디가 피었다’고 하는데 일본사람들은 ‘단풍이 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찻사발이 제작됐고 그중에서도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추앙 받은 찻사발 가운데 김해 찻사발이 많았는데도 지금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국내에는 한 점도 남아있지 않은 전통 김해 찻사발을 직접 보기 위해 수차례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선도자기를 기증받아 국보급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과 조선 찻사발을 1000여 점 소장하고 있는 교토 노무라미술관 등에서 김해 찻사발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는 수장고에서 조선 찻사발을 보니 열이 났어요. 우리나라에 있어야 할 찻사발이 일본에 있으니 마음이 안좋았죠. 김해 찻사발을 재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됐죠.”

    일본의 고서점을 뒤져 김해 찻사발이 기록된 몇 안되는 문헌을 번역해 읽고, 동상동 북문과 상동 가마터, 분성산 가마터에서 주운 김해 찻사발 파편을 분석했다. 이어 김해 찻사발을 만드는 데 적합한 태토를 찾아 헤매고 여러 가지 유약을 실험한 끝에 마침내 김해 찻사발을 재현해 2004년 장유문화센터 갤러리에서 ‘김해 찻사발 발표전’을 가졌다.

    그 후 김해 찻사발 재현 논문을 발표했으며 마산·서울·대구·일본 등 각지에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지며 잊혀진 김해 찻사발을 알리는 데 노력했다.

    2008년 대한민국 찻사발 전통명장에 선정되면서 국내에서 유일하게 김해 찻사발을 재현한 도예가로 인정받게 됐으며, 지암요는 2007년 경남도 찻사발 공모전에서 최고점으로 으뜸상을 수상해 김해 찻사발 재현사업체로 선정됐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안 작가는 공개되지 않는 개인소장품까지 합해 30여 종으로 추정되는 김해 찻사발 중 9가지를 재현해냈다.

    그는 오늘도 김해 찻사발을 더욱 완벽하게 재현하고자 물레를 돌려 흙을 빚고 가마에 불을 때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한 번에 기물 200~300점을 가마 속에 넣고 구우면 10~15%만 작품이 됩니다. 그만큼 완성된 작품 한 점 한 점이 제게는 소중하죠. 그런 힘든 작업을 일년에 3~4번 정도 하면서 김해 찻사발을 명품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죠.”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흙의 성질과 불의 조화를 익히고 체득하고 조선시대 일본으로 수출된 다완의 한 거점이었던 김해의 흙으로 김해 찻사발의 맥을 잇고 재현의 기틀을 마련한 그의 노력 덕분에 김해 찻사발의 수려한 아름다움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글= 양영석 기자 yys@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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