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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66) 김참 시인이 찾은 양산 홍룡폭포와 홍룡사

천성산이 품은 두 가지 보물

  • 기사입력 : 2013-10-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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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룡폭포
    홍룡사 대웅전
    홍룡사
    홍룡사 숲에 걸린 석양


    지하철 남양산역에 내려 양산타워를 본다. 양산은 참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높이 솟은 양산타워 뒤로 산이 보이고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들이 보인다. 눈앞엔 샛강이 느릿느릿 흘러가고 풀들이 초록빛으로 흔들리고 있다. 샛강의 산책로를 따라 가을 햇살을 즐기며 걷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높은 건물들과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 가운데 있는 샛강 산책로에 가만히 서서 불어지나가는 바람을 맞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번잡한 양산 시내를 벗어나 천성산으로 향한다. 천성산은 희귀한 꽃과 식물, 곤충들이 자생 서식하고 있고 화엄늪과 밑밭늪은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가을이면 억새가 울창하게 우거지는 곳. 뛰어난 경치로 인해 소금강산이라고 불렀던 천성산. 양산팔경의 하나라는 천성산 홍룡폭포 찾아가는 길. 홍룡폭포는 평소에는 물이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으나 비가 오고 나면 그 모습이 장관이라고 들었다. 며칠 전에 비도 왔으니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물소리 들으러 폭포를 찾아 올라간다.

    계곡 옆을 지나며 숲속에 빼곡하게 자라는 나무들을 본다. 단풍이 북쪽에서부터 내려오고 있는지 노란색으로 잎을 물들이는 나무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홍룡폭포를 향해 올라가는 길에 산문(山門)을 만난다. 산문을 지나 폭포로 올라가는 길에 정자 하나가 있다. 이름은 가홍정. 원래 있던 건물은 없어지고 몇 년 전에 다시 복원한 건물이라 옛날의 정취는 느끼기 어려웠지만 정자의 유래를 알리는 안내문을 보니 처음 정자를 세운 석은(石隱) 이재영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재영은 맑고 한가한 구역 하나를 얻어 자취를 끊고 이름을 숨기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골짜기가 깊어 수십 굽이가 되는 홍동(虹洞) 계곡과 홍룡폭포 주변을 은거지로 삼았다. 폭포를 향해 올라가며 은은한 하늘색과 공중을 향해 팔을 뻗고 있는 무수한 숲의 나무들과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계곡의 지형을 보니 이곳이 은거지사의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느낌이 절로 들었다. 폭포의 모습을 옮긴 그의 글을 보니 홍룡폭포는 상·중·하벽의 세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위의 절벽은 높이가 이십 길 정도이고, 가운데와 아래 절벽은 위의 절벽의 반 정도라고 한다.

    가홍정을 지나 폭포로 올라가는 길옆에 바위가 있고 바위 위에는 작은 돌탑들이 세워져 있다. 한 뼘 정도 될 법한 작은 돌탑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길 옆의 돌을 주워 세웠으리라. 홍룡사는 천천히 보기로 하고 홍룡폭포로 향했지만 물이 콸콸 쏟아지리라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폭포에서 내려오는 물이 많지 않고 경사도 완만하다.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서려는데 홍룡폭포는 세 절벽으로 되어 있다는 가홍정의 글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곳은 아랫폭포일 것이다. 돌다리를 건너 산신각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간다. 조금 올라가니 폭포가 보인다. 하지만 천 길 푸른 절벽이 폭포 좌우를 둘러싸고, 수많은 수목들이 절벽 위아래를 둘러 푸르게 에워싸고 있으며, 산에 햇빛이 막 비치고 무지개 그림자가 번뜩거리며, 골짜기의 바람이 한바탕 뒤흔들면, 우레소리가 펑펑 울리니 참으로 절경이라고 했던 이재영의 글과는 사뭇 다르다.

    요 며칠 비가 내리기도 해서 콸콸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기대했는데 오래 이어진 가뭄 때문인지 떨어지는 물의 양은 무척 적다. 그렇지만 폭포 주변의 암벽과 바위 틈에서 자라는 나무들과 폭포 옆에 자리 잡은 관음전은 제법 운치가 있다. 홍룡폭포 아래의 물웅덩이에는 하늘의 사자인 천룡이 살았는데 무지개를 타고 승천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폭포에 무지개가 걸릴 때면 폭포의 모습이 용처럼 보인다고 한다. 폭포를 보고 있으니 떨어져 내리는 긴 물줄기가 용의 모습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폭포 옆에는 관음전이 있다. 작고 아담하다. 관음전은 원효와 의상이 이곳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고, 그것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온다.



    천성산 그림 같고 골짜기는 푸른데

    한 물결 무지개 폭포 신령한 구역을 깎아냈네

    특별한 곳 우레 울리니 맑은 낮에 비가 오고

    위태한 바위에 꽃이 피니 저녁 구름이 가리네

    몇 칸 엉성한 건물 누가 될 법하지만

    반세상 찌든 근심 일깨워 줄 만하다

    고마워라 동남지방 지나가는 과객들

    올라오는 패옥소리 모두가 난초향기로다.

    - 이재영의 칠언시



    이재영이 남긴 칠언시에는 자연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했던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홍룡폭포와 주변의 절벽을 바라보니 잡념과 근심이 사라지는 듯하다. 비가 내릴 때 폭포를 다시 찾아와 보기로 하고 나무 계단을 밟고 산신각을 지나 홍룡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홍룡사는 신라 문무왕 13년에 원효 스님이 창건한 절로 창건 당시엔 낙수사라고 불렸다고 한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흘러가는 계곡 옆에 자리한 자그마한 절. 키 큰 대나무들이 절 입구에 서서 바람에 몸을 조금씩 흔들고 있다. 홍룡사 대웅전 현판 아래에 긴 수염을 자랑하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이채롭다. 홍룡사에는 재미있는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송고승전’에 따르면 원효 스님이 중국 당나라 태화사의 승려들이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예견하고 ‘해동원효 척판구중’이라고 쓴 현판을 날려 보내 그들을 구했다고 한다. 그 인연으로 천 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로 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고 원효는 그들을 위해 천성산에 89개의 암자를 지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온 천 명의 제자들은 천성산 상봉에서 원효의 화엄경 설법을 들고 모두 득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원적산이었던 원래의 산 이름이 바뀌었다. 천 명의 제자가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되었다고 하여 천성산(千聖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홍룡사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910년에 다시 세워졌지만 조선 선조 때까지 영남 제일 선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절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큰 종이 걸려 있는 종루의 화려한 단청을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절 이곳저곳을 둘라보니 다른 절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이곳에서 원효가 제자들에게 설법했다는 화엄경은 “우주의 모든 사물은 어느 하나라도 홀로 있거나 일어나는 일이 없이 모두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며, 대립을 초월하여 하나로 융합하고 있다”는 점을 요체로 한다. 떨어지는 해가 나무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그렇다. 나무 사이에서 반짝이는 해가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손택수의 시 한 편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 구례 화엄사에 가서 보았다// 절집 기둥기둥마다/ 처마 처마마다/ 얼음 송송/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그 속에 누가 혈거시대를 보내고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개미와 벌과/ 또 그들의 이웃 무리가/ 내통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환하게 뚫려있구나/ 그날 밤 누군가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잠을 털고 일어나 문을 열어 젖혔다// 창문 앞 물오른 나무들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 첫날밤을 염탐하듯 하늘에/ 뚫어놓은 구멍,/ 별들이 환한 박하향을 내고 있었다

    - 손택수 <화엄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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